이번에는 미래가 없는 청춘이다. 윤성현 감독은 영화 ‘사냥의 시간’(2020)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또 하나 구축했다. ‘파수꾼’(2011)에서는 서로 다른 소통 방식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균열이 일어나 비극을 맞이한 고등학생을 그려냄으로써, 벌어질 법한 현실을 담았다. 차기작에선 논픽션의 세계를 넘어 부정적인 암흑 세계를 픽션으로 풀어낸 것이다.
도무지 희망이 없는 네 명의 청년들이 술과 담배에 찌들어 보내는 비생산적인 일상, 도박장 달러 강도 사건, 의문의 킬러에게 쫓기는 본격적인 사냥의 시간까지 회색-빨간색-검정색 등 공포심을 자극하는 톤 앤 매너를 유지하며 긴박하게 펼쳐놨다.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 제작 싸이더스)은 디스토피아의 세계에서도 잘 살고 싶었던 청년 준석(이제훈 분), 장호(안재홍 분), 기훈(최우식 분), 상수(박정민 분) 등 4인방의 꿈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윤 감독이 구축한 디스토피아는 나이, 성별, 계급,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차별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 길거리엔 갱스터가 넘치고 집이 없어 옥상 건물에 사는 청년들이 있는가 하면, 한쪽 눈을 잃어 힘 없이 떠도는 노인들도 있다. 이처럼 우울한 나라에서 착실하게 살아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도박장의 달러를 훔친다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세워 하와이처럼 따뜻한 나라로 떠나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천국 같은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네 남자는 무자비한 남자 한(박해수 분)이 생존 게임을 시작하자, 탈출을 위해 거대한 통로를 이리저리 내달린다. 한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도피하는 과정이 보는 내내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귀신 같은 한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새빨갛고, 푸르스름한 조명이 무서운 무드를 잡는 데 주효했다. 건물부터 병원 복도까지 청년들과 한의 대치 상황이 한치의 양보없는 움직임으로 스피드하게 그려졌다.
마지막 16분에 달하는 후반부 스토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서사를 위해 장르를 활용했다기보다 장르적 쾌감을 위해 시간의 흐름에 청년의 이야기를 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장감을 높이는 사운드와 조명, 음향효과가 완성도를 높여줬다.
어디까지가 실제 장소이고, CG인지 호기심을 유발하는 흥미진진한 오프닝부터 스펙터클한 총기 액션이 펼쳐지는 중반까지 킬링타임 무비로 손색이 없다. 장소 헌팅 및 세트 구축과 더불어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에서 윤성현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준 것과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볼 만하다.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가 ‘충무로 젊은 피’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맡은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디테일까지 선명하게 표현해서다. 연기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자신만의 필모그래피 안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이들의 열연은 실망스럽지 않다.
넷플릭스 공개. 러닝타임 1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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