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수꾼’으로 묵직한 울림을 주며 주요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었던 윤성현 감독이 이번엔 장르 영화로 돌아왔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사냥의 시간’을 통해서 확연히 달라진 색채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통해 분명 의미 있는 작품을 완성해냈다.
윤성현 감독은 27일 오전 온라인으로 진행된 국내 매체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사냥의 시간’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지난 23일 넷플릭스를 통해서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된 이후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는 그는 인터뷰를 통해서 관객들이 궁금해 할 만한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영화가 다소 낯설고 난해하게 느껴졌던 관람자라면 윤성현 감독의 설명을 듣고 다시 한 번 관람해보길 추천한다.)
‘사냥의 시간’은 ‘파수꾼’ 윤성현 감독의 9년만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지난 2월에는 개봉을 앞두고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이 미뤄지면서 두 달의 기다림 끝에 결국 넷플릭스 행을 결정하게 됐다.
윤성현 감독은 이에 대해서 “당연히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모든 사람이 안타까운 상황이고 개봉이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조급해 하거나 불만을 갖거나 하기 보다는 조용히 기다리면서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차분하게 기다렸고, 이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이 상황 안에서 공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고, 그 기회를 통해서 보여줬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 기회에 있어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들과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이들의 숨 막히는 사냥의 시간을 담아낸 추격 스릴러다. 11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윤성현 감독의 전작인 독립영화 ’파수꾼’에서 몇 배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윤성현 감독은 오히려 환경적으로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환경 자체가 ‘파수꾼’보다 좋았냐고 하면 예산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파수꾼’ 때는 저예산 독립영화지만 촬영하면서 그렇지 않았는데, ‘사냥의 시간’은 찍으면서 순간 순간 아이디어로 극복해 나갔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 감독은 “개인적으로 ‘파수꾼’보다 10배는 힘들었다”라며,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만든 영화는 거의 다 드라마고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이 주가 되는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이야기와 시나리오를 많이 써오다 보니까 반대 급부로 이런 좀 더 대사에 기대지 않은, 시청각적인 요소를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고 이번에 만들려고 노력해본 거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당연히 내가 해오던 게 아니다 보니까 예산을 떠나서 어려운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 부분들이 개인적으로는 ‘파수꾼’보다 훨씬 스트레스 많고 고생스러웠지만, ‘파수꾼’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얻었다. 해보지 않는 장르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하다 보니까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많은 것을 얻고 즐거웠다. 돌이켜 보면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윤성현 감독은 ‘파수꾼’에 이어 ‘사냥의 시간’으로 다시 한 번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춰냈다. ‘파수꾼’에서는 드라마와 정서 위주로 그려냈다면, ‘사냥의 시간’에서는 장르적으로 큰 변화를 줬다. 화려한 사운드와 비주얼,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은 장르 영화로서 ‘사냥의 시간’을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윤성현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내 개인적인 취향이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느 정도 녹아 있는 작품들이다. 꼭 그게 녹아들어 있지 않아도 좋은 작품이 많지만 개인적인 연출자, 작가의 시선이 있으면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풍성해질 수 있기 때문에 해보려고 한다. 개인적인 취향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냥의 시간’은 장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들어가 있다. 기획부터 현실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서 장르적으로 푼 거다”라며, “나는 은유가 있는 거지 고뇌와 고통을 진지하게 다방면의 시선으로 잡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냥의 시간’은 서스펜스고 추격, 장르 영화다. 장르에서 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파수꾼’처럼 개인화시키기도, ‘사냥의 시간처럼’ 장르화시키기도 하는 차이인 것 같다. 하지만 시작점은 같았다”라고 말했다.
‘사냥의 시간’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안에는 과거 IMF 당시의 분위기도 녹아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윤성현 감독이 직접 겪었던 IMF 시대의 분위기와 남미 여행 중의 상황을 디테일하게 녹이기도 했다.
윤성현 감독은 영화의 배경에 대해서 “’사냥의 시간’은 장르 영화이기 때문에 거창한 포장은 하고 싶지 않다. 이야기를 기획한 근본 자체는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민에서 시작된 것은 맞다”라며, “IFM적인 고민이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보면, 한국 사회를 지옥에 빗댄 표현이 많고, 젊은이들이 느끼는 한국 사회가 지옥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다 보니까 그걸 형상화하자, 시각화하는 세계를 만들어보자는 게 컸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윤 감독은 “나는 IMF를 겪은 세대이다 보니까 그 시대가 가진 좌절과 애환을 겪었었다. 전면으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지만 그 저변에 가져가고 싶었다. 또 남미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남미 화폐 가치가 완전 휴지조각이 됐다. 길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여행을 하면서 그런 경험들을 가져가다 보니까 개인적인 IFM 때 기억과 이런 지옥도 같은 세상을 형상화해보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사냥의 시간’은 공개 후 ‘열린 결말로 속편을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다 담기지 않아 회수되지 않은 ‘떡밥’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 윤성현 감독은 속편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말하면서, 떡밥은 회수를 위해서 설정한 것이 아니라고 의도를 밝혔다.
윤성현 감독은 “떡밥이라고 이해를 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라며, “떡밥들을 회수하는 작품이 있고, 구체화시킬 수도 있는데 보여지지 않는 것은 굉장히 의도된 거다. 본질적인 것은 청년들이 가질 수 있는 관점의 제한이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 진실을 알 수 있을까?하는. 그 아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량이 굉장히 제한돼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시사하는 바가 있었는데 재조합해주길 바라는 것 같다”라고 의도를 전했다.
윤 감독은 “분명한 것은 던져져 있는 요소가 예측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형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부패의 세력과 결탁돼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지만 정형화된 장치들이다. 그것에 대한 요소들을 유추할 수 있는 장치를 넣은 거다. 회수될 떡밥으로 쓰이지 않았다. 상상을 잘할 수 있는 떡밥들로 한 것이지 속편을 생각하고 할 생각한 적은 없다. 2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완결된 영화로 생각하고 만들었다. 연출적인 의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성현 감독은 “우선 편집된 장면이 엄청 많다. 시나리오도 엄청 많이 잘렸다. 추격 장르를 담기에도 굉장히 벅찬 시간이라 나머지 요소들이 잘려 나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시나리오에서 많은 요소들이 담겨 있긴 하지만 영화라는 특성상, 장르의 특성상 드라마 같이 좀 더 심도 있게 감정적인 부분들을 아주 심도 있게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와 편집 과정에서 많이 잘렸다. 1차 편집 때는 3시간 넘었다. 1시간 넘는 장면들이 잘려 나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인물의 전사들이 많이 드러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장르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청춘들을 쫓는 추격자 한(박해수 분)에 대한 궁금증 역시 컸다. 한이 이들을 쫓는 명분이 잘 설득되지 않는다는 반응. 윤성현 감독은 한 캐릭터에 대해서 “박해수 배우 입장에서는 인터뷰하기가 굉장히 곤혹스러울 것 같다. 우리끼리 만들어놓은 영화상에서 한은 그냥 신적인 존재로 보여지길 바랐다. 은유적인 존재로 보여지길 바랬지 이해 가능하고 인간적으로 보여지길 바란 것은 아니다”라며, “영화에서 그렇게 보여지길 바랐기 때문에 구체화하는 게 어렵지만, 던져진 떡밥들로 그의 전사를 유출할 수 있다. 문신은 모두 부대마크이고 상처도 전투에서만 생길 수 있는 총기와 칼 상처들이다. 총기 파지법이나 걸음걸이 모두 용병단의 모습에서 가져왔다”라고 설명했다.
윤성현 감독은 ‘사냥의 시간’으로 이제훈, 박정민과는 ‘파수꾼’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윤 감독은 “우선은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제일 먼저 보여줬던 게 이제훈 배우였다. 그 다음에 캐스팅이 진행됐다. 이제훈과 박정민 배우는 가까운 사이다 보니까 꼭 같이 해보고 싶어서 같이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안재홍 배우는 내가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캐스팅을 마음 먹기 전에는 ‘응답하라 1988’이 나오기 전이었다. 이제훈 배우가 ‘족구왕’이라는 작품을 보라고 추천해줬다. 굉장히 놀랐고, 장호라는 인물에 딱 맞아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다”라고 캐스팅 과정을 밝혔다.
또 기훈 역의 최우식에 대해서는 “내가 2011년 영화제에서 우연히 단편영화를 봤는데 최우식 배우가 나와서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배우라고 느꼈고 계속 지켜봐왔다. 언젠가 꼭 하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하게 됐다. 이제훈과 박정민 배우 못지 않게 오랫동안 내가 일방적으로 지켜본 배우였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배우 박해수와의 작업에 대해서는 “어떤 영화에서 단역으로 나온 것을 보고 흥미로운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로에서 하는 연극을 보면서 꼭 같이 하고 싶어서 캐스팅하게 됐다”라고 이유를 전했다.
‘사냥의 시간’은 지난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됐다. /seon@osen.co.kr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