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N=연휘선 기자] 다사다난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가수 겸 배우 이은하가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굴곡진 인생사를 밝혔다.
1일 저녁 방송된 KBS 1TV 예능 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에서는 이은하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은하는 1973년 13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특유의 허스키한 음성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가수다. 이후 그는 '밤차', '아리송해',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등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79년에는 KBS '최고 가수왕'을 수상하며 당시 고급 세단 차량을 부상으로 받기도 했다.
그러나 '원조 디바'로 사랑받는 과정이 모두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과정부터 험난했다고. 데뷔 당시에도 너무 원숙한 음색으로 인해 17세로 속였다는 그다.
특히 이은하는 "아버지가 이미자 선생님 아코디언 연주자셨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음악을 그만 뒀다. 그러다 집에서 아이들한테 이것 저것 시켜보시다가 저 노래부르는 걸 보시고 너무 엄하게 시키셨다. 학교 갔다 오고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노래를 시키셨다. 맞는 건 기본이고 아버지가 치시던 기타가 부서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릴 땐 너무 싫었다. 보다 못한 동네 어르신이 그렇게 하지 말고 전문가를 찾아가라고 하셨다"며 "그래서 찾아간 게 김준규 작곡가 선생님이었다"고 이날 방송에서 보고 싶은 은사 김준규 작곡가를 찾는 이유를 밝혔다.
데뷔곡 '님 마중'을 만들어준 김준규 작곡가를 만난 뒤 이은하는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다. 다양한 곡들로 MBC '10대 가수상'을 9년 연속 석권했다. 10년 연속 석권에 실패한 곡마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곡이었다.
그러나 히트곡이 많았던 이은하도 한동안 자취를 감춘 때가 있었다. 부친의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이은하는 "사람이 다사다난한 정도가 아니라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아버지가 사업에 손을 대시면서 빚이 생겼다. 그때 당시 7~8억 원 정도였는데 제가 갚을 무렵엔 30억 원 정도였다. 아버지가 '나는 못한다. 내게 네 것이니 책임지고 갚아라’라고 하셨다"며 당시 막막했던 심정을 털어놨다.
이은하는 "그때 인천에서 시작해서 동두천까지 갔다. 인천에서 초저녁 6시부터 찍고, 찍고 동두천에서 끝나면 새벽 3시까지 갔다. 무리한 스케줄로 건강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망가졌더라"라며 "그런데 응급차를 부르면 병원에 가는데 주사 한 방이면 멀쩡해졌다. 결국 진통제를 맞으면서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게 갱년기 때 호르몬 변화가 생기면서 쿠싱증후군이 온 거다"라고 설명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다행히 현재 이은하는 쿠싱증후군까지 자연 치유된 상태였다. 그는 "척추측만증, 척추분리증에 쿠싱증후군까지 10년을 고생하다가 기적적으로 다행히 수술을 안 하고 자연 치유가 됐다"며 "이제 살만 빼면 된다"고 웃기도 했다.
다만 그는 "저는 창피해서 아직까지 제 방송을 못 본다. 제 모습이 보기 싫어서"라며 멋쩍어 했다. 그는 "그런데 저를 끝까지 응원하는 팬 분들이 계시다. 그래서 저는 온 국민들한테 좋아하셔도, 싫어하셔도 감사하다. 좋은 노래로 갚겠다"며 울컥,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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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