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에 김호중과 류지광이 진솔한 인생이야기를 털어놨다. 두 사람은 '미스터 트롯'을 만나기 전까지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두 사람은 가수로서 행복한 삶을 살게됐다.
4일 오후 방송된 SBS플러스 '밥은 먹고 다니냐'에 '미스터 트롯'의 류지광과 김호중이 출연했다.
김호중은 등장과 함께 진성의 '태클걸지마'를 열창했다. 김호중은 폭발적인 성량과 함께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자랑했다. 류지광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선곡했다. 류지광은 명품 동굴 보이스로 국밥집을 촉촉한 분위기로 적셨다.
김호중은 '미스터 트롯' 출연 이후 반응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호중은 "시장을 걸으면 점포에서 사장님들이 다 뛰어나와서 건강식품을 준다"라며 "이건 다른 손님이 주문한 것인데 넣어두라고 할 정도 였다"라고 말했다. 류지광은 "올해 부모님이 일하지 않게 만들어드렸다"라고 변화를 설명했다.
'미스터트롯'에서 준결승에서 류지광과 김호중은 함께 무대를 꾸몄다. 두 사람은 국밥집에서 즉석으로 설운도의 '다시 한 번만'을 부르기도 했다. 김호중은 "미션이 진행 될 수록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미션을 잘해내고 최고의 무대를 보여줘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으니까. 하면서 모든 출연자들이 형제처럼 친해졌다"라고 말했다.
'미스터트롯' 예선전을 걸치면서 김호중은 다른 참가자들의 외모와 노래 실력 때문에 주눅이 들었다고 했다. 류지광 역시 김호중의 노래 실력에 감탄했다.
김호중의 깜짝 폭로도 이어졌다. 김호중은 "안무연습을 하고 나면 땀이 나는데 씻으라고 했더니 정동원이 1분만에 나왔더니 손만 씻고 나왔다"라며 "일주일 뒤에 만났는데 똑같은 내복이 있었다. 정동원도 이 옷을 입어야지만 된다. 갈아 입으면 복이 나간다"라고 사연을 털어놨다.
김호중은 성악을 하다가 트로트로 전향했다. 김호중은 '스타킹'을 계기로 독일과 이탈리아 등을 유학하면서 큰 무대에서 성악을 배웠다. 김호중은 "유학을 하면서 대중과 통할 수 있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라며 "그래서 미스터 트롯에 도전을 했다"라고 털어놨다.
류지광은 학창시절 배우를 꿈꿨다. 류지광은 배우 기획사에 들어갔지만 소속사 사장이 세상을 뜨면서 가수 기획사로 들어갔다.
김호중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방황하기도 했다. 김호중은 "초등학교 3학년에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라며 "외동아들이고 혼자라서 다른 친구들이 부러웠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노래였지만 레슨비가 비싸서 노래를 포기했다. 그래서 방황을 더 많이 했다"라고 고백했다.
'미스터 트롯' 이후 김호중의 이혼한 부모님과 잘 지낸다. 김호중은 "나이를 먹으니까 다 이해하게 됐다"라며 "지금은 부모님과 잘 지낸다. 공연할 때 많이 응원도 해주신다"라고 말했다.
김호중은 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김호중은 고등학교 2학년 당시 돌아가셨던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김호중은 "지금도 제일 무서운게 이별이라는 단어다"라며 "어린 시절 저는 찬밥을 좋아했다. 그래서 찬밥을 달라고 하면 할머니는 저에게 따듯한 밥을 주고 찬밥에 물을 말아먹었다"라고 했다.
김호중의 할머니는 고등학교 시절에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김호중은 할머니에게 따스한 말을 전하지 못했다. 김호중은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울산에 있는 병원으로 할머니를 보러 갔다"라며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사람이 되고 폐 끼치지말고 살라고 하셨다. 하늘에서도 지켜 볼테니까 단디 하라고 말 한 다음에 이틀 뒤에 떠나셨다"라고 털어놨다.
김호중은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를 표현했다. 김호중은 "할머니에게 노래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했다"라며 "입관식도 못봤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길을 봤으면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미스터 트롯' 경연을 할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꿈에서 봤는데 마음이 편했다"라고 설명했다.
김호중은 대구에서 행사를 하고 올라오면서 갑자기 할머니의 산소를 들렀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김호중은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를 당했지만 단 한명도 다치지 않았다.
류지광 역시도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류지광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어머니의 빚보증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20년전에 4억 가량의 빚을 진 상황이었다. 당시 류지광의 아버지는 이혼을 해야겠다고 아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류지광은 반대했다. 류지광은 목동 변두리 월세방에서 살았다.
하지만 류지광 집안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류지광의 아버지는 6년만에 빚을 갚았지만 개업한 고깃집이 폐업을 하면서 계속해서 생활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류지광은 어려워진 형편에 시비거는 아이들을 이기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오기로 버텼다.
류지광은 중학교 3학년 시절 길거리 캐스팅을 당해서 배우 기획사로 들어갔다. 하지만 배우 기획사가 아닌 가수 기획사로 다시 들어가게 됐다. 당시 소속사에는 더블에스501과 카라 등이 있었다. 류지광은 "기획사 사장님이 노래를 하라고 해서 노래를 했는데, 기초가 없어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김호중은 영화 '파바로티'의 실제 주인공이었다. 김호중은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야간업소에 다니던 생활을 했다. 그리고 서수용 선생님을 만나면서 성악의 꿈을 키웠다. 김호중은 "서수용 선생님이 유학했던 칼스루에라는 곳에 퍼스트클래스로 모시고 가고 싶다"라며 "제가 유학했던 하이델부르크도 가보고 싶다"라고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김호중은 도움을 받아서 독일 유학을 떠나게 됐다. 하지만 유학 생활 역시도 쉽지는 않았다. 김호중은 "말이 안통해서 정말 고생했다"라며 "주로 바게트와 파스타를 먹었다. 바게트 하나면 일주일을 버텼다. 오일하나만 있어도 같이 먹으면 더 맛이 있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호중은 혹독한 현실을 마주했다. 김호중은 "생활을 해야되니까 돌잔치, 결혼식 축가를 불렀다"라며 "제가 노래를 불러준 커플이 몇천 커플은 될 것 같다. 사람들이 유학도 다녀오고 유명해서 힘든 것 없다고 말하는 것이 속상했다"라고 진솔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김호중은 '미스터 트롯'에 출연하기 전까지 축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 류지광 역시도 식당과 PC방과 카페 등등을 전전하면서 지냈다.
류지광은 오디션을 통해서 모델로 데뷔를 해서 가요 기획사에 캐스팅 됐다. 류지광은 "타고난 음역대가 있는데, 기획사 사장님이 무리한 음역대를 요구했다. 그래서 성대결절이 왔는데 계약을 파기하라고 했다. 그때 당시에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소속사에서 위약금을 한 달안에 반환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돈을 줬다"라고 전했다.
이후 류지광은 '슈퍼스타K3'에 또 다시 도전을 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류지광은 "그때 탈락하고 나서는 술을 못마시지만 술을 엄청 마셨다"라며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옥상에 올라갔는데, 부모님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때 당시 여자친구가 잡아줬다"라고 말했다.
류지광은 이후 SBS '슈퍼모델', '팬텀싱어'까지 11년간 7번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류지광은 "36년동안 백수였다"라며 "부모님이 그만두라는 이야기는 안하셨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깃발을 꼽아야한다라고 말을 하셨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류지광은 '미스터 트롯'을 정말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다./pps2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