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악역으로 선한 캐릭터에 대한 전환점을 그린다. '그 남자의 기억법'에서 편의점 스토커 일명 '편토커'로 열연한 배우 주석태 이야기다.
주석태는 14일 오후 OSEN과 만나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남자의 기억법'은 과잉기억 증후군으로 1년 365일 8760시간을 모조리 기억하는 앵커 이정훈(김동욱 분)과 열정을 다해 사는 라이징 스타 여하진(문가영 분)의 상처 극복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지난 13일 밤 방송된 32회(마지막 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주석태는 "눈 올 때 시작해서 반 팔 입을 때 끝났다"며 촬영 기간을 회상했다. 그는 "종영 전까지는 아쉽다고 못 느꼈다. 그런데 종영하고 나니까 모든 게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마치 초등학교 졸업하고 남자 중학교 가는 느낌이랄까. 그만큼 '그 남자의 기억법' 촬영 현장은 열려 있었고 편한 분위기에서 찍었다"고 밝혔다.
막상 주석태가 연기한 캐릭터는 결코 편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극 중 이정훈의 첫사랑이자 여하진의 친구였던 정서연(이주빈 분) 스토커 문성호 역을 맡았다. 문성호는 극 중 정서연을 죽인 스토커다. 편의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정서연을 보고 반해 자신과 사랑한다는 망상에 빠져 스토킹 범죄까지 저질렀다. 급기야 문성호는 정서연이 뜻대로 되지 않자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으려다 실패한 인물이다.
로맨스 드라마인 '그 남자의 기억법'에서 문성호는 긴장감을 자아내는 악역으로 시선을 모았다. 편의점에서 스토킹이 촉발됐다는 특성상 애청자들 사이에서 '편토커(편의점 스토커)'로 불리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정작 주석태는 "저는 멜로 찍으러 갔다"며 웃었다. 그는 "저는 서연이와 멜로를 찍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옆에서 방해하니까 슬픔과 원통함이 있었다. 그 것들이 저와 서연이의 사랑에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며 "문성호가 스토커라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장면도 있었다. 가령 문성호가 정서연을 살해하고, 시간이 지나 납골당을 찾아가 유골함까지 꺼내가는 모습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
주석태는 "멜로를 찍는다 생각하고 중, 후반을 달려왔는데 대본을 받고 실제 납골당에서 약간의 세트로만 깨는 걸 연기하려니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그는 "실제 많은 고인들이 잠들어 계신 곳 아닌가. 그런 곳에서 그런 장면을 찍으려니 괜히 죄스러운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악역이라는 특성상 캐릭터의 감정선이 일방적이기도 했다. 문성호가 다른 인물들과 쌍방으로 감정을 주고받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표현, 상대방은 그의 감정을 맞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석태는 함께 호흡한 김동욱, 이주빈, 문가영 등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는 "다들 굉장히 유연한 배우들이었다. 제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무엇을 하던 잘 받아줬다"며 "보통 빌런들이 일방적으로 뭔가를 행할 때 사전에 없던 액션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마가 뜨거나, 촬영이 지연되기도 하는데 세 배우 모두 다 경력이 오래된 포수처럼 너무 잘 받아줬다"고 했다.
가령 극 중 문성호가 이정훈에게 유리를 휘두르며 위협하는 장면도 의도치 않은 호흡으로 완성된 순간이었다. 대본에는 문성호가 유리로 이정훈의 목을 겨누는 것까지 나왔는데 실제 주석태와 감독이 해석한 문성호는 감정의 한계가 없는 인물이었다. 이에 주석태가 유리를 사전 얘기한 것보다 크게 휘두르며 연기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욱이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줘 격정적인 장면이 완성됐다는 후문이다.
주석태의 경우 극 중 보도국장 최희상을 연기한 장영남을 제외하면 모두 처음 보는 배우들이었던 터. 그 사이를 중재하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전환시켜준 오현종 감독의 역할도 컸단다. 주석태는 "처음 만난 배우들끼리 분위기를 풀어야 하는데 감독님이 그 역할을 다 해줬다. 현장 가면 정확하게 아웃라인을 그려줘서 배우가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오 감독님의 매력이었다"며 "편하게 찍고 오기만 하면 되는 현장이었고 유쾌하고 화기애애한 반면 빠르게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다양한 노력과 도움을 통해 '편토커'로 존재감을 새긴 주석태이지만, 실제 그에게 악역이 익숙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염 반장 캐릭터로 주목받기 전까지는 오히려 선한 인물을 주로 소화했기 때문. 실제 주석태 또한 부드러운 음색과 분위기가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주석태는 "문성호가 이렇게까지 악역인 줄 몰랐다. 어느 정도 빌런 파트를 맡을 줄 알았지 이렇게까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인 줄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계속해서 감정도 쌓이고 향후 2년 간 악역을 안해도 될 만큼 마음 껏 했다. 속에 없던 찌꺼기까지 뱉어버렸다"며 웃기도 했다.
그는 "정확하게는 '슬기로운 감빵생활' 염 반장 이후 그런 부류의 캐릭터를 믿고 맡겨주시는 것 같다"며 "실제 현실과 괴리감이 들기도 하는데 캐릭터를 분석할 때 그 편에 서서 생각을 하려는 편이라 나름의 이유를 찾아간다. 그래서 오히려 연기를 할 때는 편하다. 고민할 땐 힘들지만 캐릭터를 이해하고 나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런 주석태가 배우로서 활동하는 원동력은 '연기' 그 자체였다. 주석태는 "연기를 하면서 에너지가 충족이 되면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한 작품을 마쳐서 인정도 받고 필모를 쌓았다고 느껴지면 가족도 돌보고 고장난 차도 돌보고 그런 삶의 에너지가 연기에 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이 동력"이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연기를 계속 하고 싶고 무대 욕심도 많다. 무대는 이루지 못한 꿈이다. 무대에서 연기를 계속 하려고 하다가 매체로 왔다. 어느 정도 안정세가 되면 절반 정도 나눠서 1년에 반은 공연에, 1년에 반은 매체 연기에 투자하고 싶다"며 무대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주석태는 "지금은 어떤 역할을 잘 소화한다고 봐주시는 것 같다. 악역도 잘 소화한다고 해주셔서 감사하다. 쉽게 말하면 선역,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고 거기서도 믿음을 드릴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올해를 과도기로 삼아서 선역, 악역 가리지 않지만 선역 제의도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진짜로 듣고 싶은 건 '선역을 더 잘하네?' 이런 말"이라며 "돌이켜 보면 지난 연기가 그때는 만족했지만 지금 보면 아쉬운 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내년, 내후년이 기대된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저를 다시 돌아봤을 때 더 발전한 순간이 기다려진다"고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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