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명배우들의 열전이었다. '연기 구멍'이 단 한 명도 없었던 '부부의 세계'의 성공은 이미 예견됐다.
지난 16일 종영된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극본 주현, 연출 모완일)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연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소용돌이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부부의 세계' 16회는 28.371%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는 JTBC 역대 드라마 중 최고 성적을 거둔 'SKY캐슬'을 뛰어넘은 수치다.
이와 같은 대기록은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치밀하고 탄탄한 서사, 속도감 있는 전개에 더해진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력은 몰입도를 높여 끝까지 시청자들의 이탈을 막는 것에 기여했다.
특히 '부부의 세계'는 '신 스틸러 맛집'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박해준, 한소희, 김영민, 채국희, 이무생, 이학주, 심은우 등은 '부부의 세계'를 통해 재발견됐다는 평을 얻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펼쳤다.
박해준은 역대급 불륜남 이태오를 연기했다. 여다경(한소희)와 불륜을 저질러 모든 일을 자초한 장본인이면서, 마지막에는 가족을 운운하며 지선우(김희애)에게 매달린다. 이에 질린 아들 이준영(전진서)은 가출까지 한다.
"내가 미치겠는 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거야",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등 유행어도 만들어냈다. 워딩만으로도 충분히 황당하지만, 박해준의 연기를 덧입은 대사는 '지질' 그 자체다. 앞서 강렬한 악역으로 주목받아온 박해준은 '부부의 세계'를 통해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하며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이태오의 후처 여다경으로 분한 한소희는 '부부의 세계'의 최대 수혜자로 손꼽힌다. 한소희는 이태오와 결혼 전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여다경이 결혼 후 불신에서 비롯된 불안감으로 무너져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한소희의 연기는 면면에서 빛났다. 분노한 여다경이 입을 벌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모습은 그의 시그니처 표정이 됐고, 이태오의 인성을 폭로하는 지선우 앞에서 절규하는 모습은 그간 그의 잘못을 잊게 할 만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대선배 김희애와 훌륭한 합을 보여주며, 착실히 쌓아온 연기 포텐을 터트렸다.
김영민은 외도가 취미인 고예림(박선영)의 남편 손제혁 역을 맡아, 방송 내내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손제혁은 이태오의 회계 정보를 빌미로 지선우와 관계를 갖고, 이 사실이 발각된 후에도 재차 불륜을 저지른다. 김영민은 욕망으로 점철된 눈빛으로 '손제혁 그 자체'라는 평을 받으며, 전작 '사랑의 불시착'의 귀때기를 깔끔히 지워냈다.
채국희는 입체적인 캐릭터 설명숙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설명숙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부원장 자리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후 지선우, 고예림과 우정을 쌓고 연대한다. 채국희는 설명숙의 변화 과정을 매력적으로 표현하며 극 초반의 비호감 이미지를 탈피했다.
이무생이 맡은 김윤기는 지선우에게 담백하고 차분하게 구애를 하다가도 여회장(이경영)과 접촉하는 등 의뭉스러운 면모를 보인 인물. 결국 지선우의 행복만을 바라는 해바라기로 판명 났지만, 한때 반전의 키를 쥐고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극의 재미를 더했다. 그는 명품 브랜드 이름을 딴 '이무생로랑'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학주와 심은우도 빼놓을 수 없는 신 스틸러다. 이학주는 '데폭남(데이트 폭력 남)' 빌런 박인규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이학주는 박인규가 고산역에서 추락사하기 전까지 극의 긴장감을 책임지며, 서사를 강렬하게 끌어갔다. 심은우는 지선우의 조력자이자 박인규의 데이트 폭력 피해자 민현서 역으로 열연했다. 그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과하지 않은 연기는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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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TBC '부부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