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기합 소리가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린다. 덕아웃에서 보내는 야유 소리도 귀에 쏙쏙 박힌다. 마이크를 찬 심판의 말은 정확하게 다 들린다. 무관중 경기가 KBO리그에 뜻하지 않는 논란들을 낳고 있다.
지난 17일 대전 롯데-한화전. 8회초 한화 투수 박상원이 전준우를 상대로 투구할 때 허문회 롯데 감독이 주심에게 뭔가 어필했다. 박상원이 지른 기합 소리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난 2017년 프로 데뷔 후 박상원은 줄곧 기합을 넣으며 공을 던졌다. 기합 소리로 어필을 받은 것은 이날이 처음.
몇몇 투수들이 갖고 있는 루틴으로 그동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날 박상원의 기합 소리는 유독 크게 들렸다. 허문회 감독이 어필하고 돌아갈 때도 기합 소리를 낸 박상원은 이닝을 마친 뒤 롯데 덕아웃을 향해 허리 숙여 사과했다.
같은 날 대전 경기에선 또 다른 순간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계속된 8회초 롯데 공격에서 전준우가 홈런을 치고 온 뒤 박상원이 흔들리자 롯데 덕아웃에서 “울어, 울어”라는 말이 나왔다. 9회초 롯데 한동희가 한화 김진영에게 동점 홈런을 치고 난 뒤 “에이스 공 좋네, 공 좋아”라는 누군가의 음성이 전파를 탔다. 투수를 조롱하는 뉘앙스였다.
덕아웃에선 같은 팀 동료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상대팀을 겨냥한 “투수 흔들린다”, “타자 못 친다” 수준의 야유가 나온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논란이 된 송성문(상무)처럼 심한 막말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용인되는 일종의 기싸움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년 같았다면 볼 수 없는 장면이거나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관중 소음에 싹 다 묻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딛고 지난 5일 무관중으로 시즌을 개막한 KBO리그는 2주 동안 관중 없이 야구하고 있다. 홈팀 응원단이 노래를 틀고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하지만 경기장은 적막하기 짝이 없다.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의 소리가 어느 때보다 잘 들린다. 올해부터 방송사들이 주심과 주루코치들에게 무선 마이크를 착용하면서 경기 중 음성이 안방의 팬들에게도 생생히 전달되고 있다. 지난 14일 사직 두산-롯데전에서 포수에게 바운드 여부를 물은 오훈규 심판의 실언이 그대로 노출됐다. 오 심판은 이튿날 퓨처스로 강등 조치됐다.
선수들도 무관중 경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한 선수는 “너무 조용하다 보니 사소한 대화가 경기 중 그라운드에 다 들린다. 조금만 집중력이 떨어지면 흔들릴 수 있다. 계속 경기에 몰입하려 노력한다”며 “다른 선수들도 그렇겠지만 경기할 때 흥이 나지 않는다. 재미가 떨어진다. 요즘 팬들의 소중함을 정말 크게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지난주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 감염 여파로 KBO는 관중 입장 시기를 미루고 있다. 당분간 그라운드 내 ‘소리’ 관련 논란이 또 발생할 수 있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그라운드의 내밀한 소리가 무관중 시대에 진풍경을 낳고 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