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도 헬멧을 써야하는 시대가 올까.
롯데 자이언츠 이승헌은 지난 16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나섰다가 위험한 사고를 당했다. 3회말 1사 1, 2루에서 정진호가 친 타구가 머리를 직격한 것이다.
타구에 맞은 이승헌은 마운드에서 쓰러졌고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다. 검사 결과 두부 미세 골절과 출혈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수술은 필요하지 않을 전망이다.
야구에서 가장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포지션은 역시 포수다. 기본적으로 투구의 모든 공을 받아내야하는 역할이고 타자와도 가까워 파울타구에 맞을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포수는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가장 많은 보호장구를 입고 있다. 포수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심판도 마찬가지다.
타자들 역시 기본적으로 헬멧을 착용하고 타자에 따라 무릎, 팔꿈치 보호대를 착용한다. 투수들이 던지는 공은 최고 시속 150km가 넘고 부위에 따라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머리는 헬멧을 쓰더라도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이 때문에 KBO리그는 직구를 던졌다가 타자의 머리를 맞출 경우 곧바로 투수를 퇴장조치 함으로써 투수들이 최대한 조심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반면 투수는 포수 다음으로 타자와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도 별다른 보호장구 없이 마운드에 오른다. 어떻게 보면 모든 포지션 중에서 가장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포수를 제외한 다른 야수들도 보호장구 없이 그라운드에 나선다. 하지만 야수들은 기본적으로 타자와 거리가 있어 타구에 대응할 시간이 충분하고, 타구가 자신에게 온다는 생각으로 타구에 집중한다. 하지만 투수는 현실적으로 투구를 한 뒤에 곧바로 수비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투수 출신인 키움 히어로즈 손혁 감독은 지난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 전 인터뷰에서 “투수들도 수비 연습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투구 후에 곧바로 수비를 하는 훈련은 현실적으로 하기 힘들다. 탁구공이나 테니스공으로 반사신경을 늘리는 정도”라고 말했다.
손혁 감독은 “탁구공이나 테니스공은 맞아도 별로 아프지 않으니까 가끔은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공을 던지기도 한다. 이렇게 반사신경을 늘리려고 하지만 이 외에 특별한 훈련은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나는 투수들에게 공을 잡기 보다는 글러브로 막으라고 주문한다. 날아오는 타구를 잡겠다고 생각하면서 투구를 할 수는 없다. 투구에 전력을 다해야한다”고 덧붙였다.
투수 보호장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미 투수용 헬멧이 개발됐다. 실제로 알렉스 토레스가 투수 헬멧을 쓰고 마운드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투수 헬멧은 보편화되지 않았다.
손혁 감독은 “헬멧을 쓰면 투구할 때 힘들고 밸런스도 흔들린다. 움직임도 불편해진다. 내가 투수 출신이긴 하지만 사소한 것까지 민감한게 투수다. 헬멧을 쓰고 투구하려면 캐치볼부터 단계별로 올라가며 익숙해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투수 보호장구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손혁 감독은 “모두가 조금씩 고민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타구가 오면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머리는 정말 위험한 부위니까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야구 초창기에는 선수들이 어떤 보호장비도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글러브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공을 던지고 받았다. 그렇지만 이제 야수의 글러브와 타자의 헬멧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언젠가는 투수들도 헬멧을 쓰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올게 될까. /fpdlsl72556@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