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희’라는 이름 세 글자가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됐다. ‘부부의 세계’에서 김희애에 밀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며 화제를 모은 한소희는 이제는 확실한 ‘대세 배우’로 자리를 잡았고, 백상예술대상 TV여자신인상 후보에도 올랐다. ‘부부의 세계’로 ‘한소희의 세계’가 활짝 열렸다.
배우 한소희가 ‘부부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품을 통해 성장했고, 앞으로 더 성장할 한소희가 기대된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극본 주현, 연출 모완일)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연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소용돌이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영국 BBC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원작으로 한 ‘부부의 세계’는 지난 3월 27일 첫 방송된 뒤 지난 16일 종영했다.
‘부부의 세계’는 신드롬급 인기를 자랑했다. JTBC 역대 드라마 첫 방송 최고 시청률(전국 6.3%, 수도권 6.8%, 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한 뒤 매회 상승세를 탔고, 화제성까지 잡았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전국 28.4%, 수도권 31.7%를 나타내며 ‘SKY 캐슬’이 가지고 있던 비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23.8%)을 갈아 치웠다.
‘부부의 세계’가 이렇게 신드롬급 인기를 달릴 수 있었던 건 스피디한 전개와 섬세한 심리 묘사, 김희애, 박해준, 한소희, 박선영, 김영민 등의 열연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한소희를 빼놓을 수 없다. 여다경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것. 화려한 비주얼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희재, 박해준, 박선영, 김영민 등 대선배들 사이에서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여다경은 겉으로는 도도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의심과 질투, 불안 등 수많은 감정들이 휘몰아 치고 있던 인물로, 순간 울컥하고 쏟아지는 감정들을 표현해내는 한소희의 디테일한 연기력이 몰입도를 높였다.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한 뒤 ‘돈꽃’, ‘백일의 낭군님’ 등을 통해 보여준 ‘가능성’은 ‘부부의 세계’에서 ‘확신’으로 다가왔다.
▲ “불륜 캐릭터 이미지로 굳어질 수 있지만, 바꿀 수 있다고 믿었죠.”
‘부부의 세계’ 여다경은 한소희가 존재감을 드러낸 ‘돈꽃’ 윤서원과 비슷한 결을 가졌다. 때문에 한소희가 ‘불륜 캐릭터’ 이미지로 굳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소희는 “불륜이라는 키워드가 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지만 나는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작했다. 나는 극 전체도 보지만 배역을 중심으로 본다. 지금까지 한 작품들이 큰 결은 같지만 그 안에 감정은 다르다. 그래서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전에 한 번 해봤으니 접근하기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소희는 “‘부부의 세계’ 여다경은 ‘돈꽃’ 윤서원과 닮아 있다. 큰 차이는 부모님과 금수저라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다경은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윤서원은 아이를 빌미 삼아 욕구를 채우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결이 다르긴 했다”고 덧붙였다.
한소희는 ‘여다경’으로 분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희애가 출연했던 ‘내 남자의 여자’를 보기도 했고, 원작 드라마 ‘닥터 포스터’도 참고했다. 그는 “김희애 선배님이 이 역할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정도로 고려하면서 봤다. 되게 매력 있었다”며 “원작을 보기만 했고, 그걸 끌어오면 여다경이 망가질 것 같았다. 내용이 다른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고만 했는데, 원작에서 내 역할을 한 배우와 내가 많이 닮았더라. 그래서 어떻게 표정을 쓰는지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소희는 “여다경이 지켜야 할 게 무엇인지, 잃으면 무너지는 게 무엇인지 봤다. 이태오(박해준)를 잃으면 어떻게 무너지는지, 제니를 잃으면 어떻게 무너지는지, 가정이 없어지면 어떻게 무너지는지 초점을 맞췄다. 이준영(전진서)이 집을 나가는 장면에서도 가정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며 촬영했다. 실제 내 입장에서는 이준영을 데려온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대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모완일 감독의 연출과 조언도 한소희가 ‘여다경’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 한소희는 “미팅할 때마다 캐릭터에 대해 2~3시간씩 이야기하면서도 개인적인 이야기는 묻지 않으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나를 온전히 여다경으로 생각하시려고 한 것 같다. 연기 디렉팅에 있어서도 내 의견을 먼저 물어봐주셨다. 여다경이 20대 초반의 여성이니, 내가 제일 잘 알 것 같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고, 내 생각을 공유하면 극의 흐름상 필요한 감정을 공유하며 한땀한땀 ‘여다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 “김희애 선배님은 지선우 그 자체!”
그렇게 여다경을 만든 한소희는 완벽하게 ‘부부의 세계’에 녹아 들었다. 지선우(김희애)와 극한 대립 상황에서도 밀리지 않는 연기력과 감정을 보여주며 시청자들로부터 ‘한소희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소희는 “김희애 선배님은 너무 완벽하다. 내가 현장에서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며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그 선배님이 바로 김희애 선배님이다. 선배님의 경지에 이르려면 내가 무엇을 해야하나 끊임없이 고민했다”며 “지선우 그 자체였다. 기품도 있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웠다. 어떤 현장에서든 그 캐릭터를 흡수하는 능력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연기적으로 뭔가를 의논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미 단단하게 지선우를 구축해서 현장에 오시기 때문이다. 그 흐름을 내가 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소희는 “김희애 선배님이 마지막에 안아주셨는데, 울고 말았다. 대선배님과 호흡하면서 감히 선배님의 옆에서 작품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복잡한 감정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봐 처음부터 굉장한 부담감을 안고 시작했는데, 안아주시는 순간 그래도 내가 조금이라도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죄죠!”
‘부부의 세계’는 이태오(박해준)의 대사를 남겼다. 바로 ‘사랑한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다. 불륜을 미화하는 대사일 수도 있지만 이는 캐릭터들의 상황에 대입되면서 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소희는 이태오가 사랑에 빠진 게 ‘죄’라고 말했다.
한소희는 “여다경이 왜 아이가 있는 유부남을 좋아할까라는 걸 푸는 게 관건이었다. 여다경은 부모님의 권력에 등 떠밀려서 살았던 아이다. 꿈, 직업, 미래보다는 감정, 자극을 주는 것에 대한 결핍이 심했다고 본다. 반면 이태오는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예술 산업에 뛰어들었다. 여다경의 눈에는 모험하는 저 사람이 멋있어 보였을 것 같았다”며 “그리고 이태오가 잘생겼다. 드라마에서는 조금 찌질하게 나오지만 잘생겼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한소희는 “잘생겼다고 사랑에 빠진 게 죄가 아니지는 않다. 죄다. 하지만 여다경이 배울 점이 없는 남자에게 빠지고 만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한소희는 ‘이태오’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박해준 선배님이 인터뷰 중 ‘얕은 머리로 이 상황에 뛰어든 캐릭터’라고 하셨는데, 너무 공감된다. 정말 감정이 1차원적이다. 지선우와 키스도 이성은 배제된 채 100% 감정으로만 이뤄졌다. 때문에 2년 후 이태오와 호흡을 맞추면서 실제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16부를 보면 제니가 있는데도 이준영만 본다. 끝까지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되지 않았기에 여다경이 떠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소희는 여다경이 고산에 돌아온 것도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망신을 당하고, 부모님에게까지도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만들고 떠났다. 그래서 성공했고, 아이도 생겼고, 부모의 그늘도 벗어났으면 정착하고 잘 살면 됐는데 잘 살고 있다고 돌아와 과시하는 것부터가 지선우에게 졌다고 생각한다. 극의 흐름에 집중하려 했고, 2년 전과 2년 후가 나눠져 있기에 앞뒤의 차이만 명확하게 드러내도 돌아온 근거가 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 “과거 사진 화제? 그거 또한 나…많은 사랑과 관심에 감사”
이렇듯 여다경에 완전히 녹아든 한소희는 ‘대세 배우’로 자리를 잡게 됐다.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그의 과거 이력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모델컷으로 사용됐던 담배를 물고 있거나 타투를 한 사진도 시선을 집중시켰다.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한소희는 담담했다. 그는 “그때의 모습도 나고, 지금의 모습도 나다. 그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 이 일을 하게 되다보면 원래 본인의 생활에 제약이 생긴다. 그거에 맞춰가다보니 지금의 내가 완성된 것 뿐이다. 과거라고 표현하기도 웃기다. 불과 3~4년 전이다. 나는 괜찮았다. 그런 면들을 오히려 여성 팬분들이 되게 좋아해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도 한소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세’가 됐다는 점을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소희는 “악역으로 욕을 먹으면 칭찬이라고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여다경을 이해해야하는 입장이라서 욕을 먹는 게 크게 좋지도 않았다. 그런 것도 하나의 관심이고 내 캐릭터에 집중을 많이 해주신다고 생각했다. 시청자 분들보다는 친구, 가족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오히려 타격이 없었다. 친구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욕을 하더라. 준영이가 우리 집에 와서 내가 계모 역할을 하는 시점부터 욕을 많이 하더라. 어떻게 애한테 그럴 수 있느냐부터 해서. 아이가 있는 친구들도 있기에, 그런 반응도 재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연기적으로 아직 목이 마른 한소희다. “‘돈꽃’ 때도 그랬지만 대선배님들과 작품하면서 느끼는 건 정말 많이 노력해야겠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배우는 점도 많지만 나에 대한 실망감과 박탈감도 크다. 이번에도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연기에 임했다. 전환점이 된다. 앞으로 인생에 있어서 노력 없이 이뤄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온 피부로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한소희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더 다지고 다지고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작품과 어떤 캐릭터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보다 더 다듬어진 상태로 나오고 싶다.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드리는 게 부끄럽긴 하지만 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절대 서두르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했을 때 ‘부부의 세계’는 내가 잘해서 내가 이득을 본 게 아니다. 처음 마음가짐 그대로, 선배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나를 선택해준 감독님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그렇게 연기 생활을 앞으로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