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시간' 정진영, 33년차 배우➝감독 도전이 특별한 이유(종합)[현장의 재구성]
OSEN 선미경 기자
발행 2020.06.09 19: 12

“생각하는 도구가 됐으면 좋겠다.”
연기 인생 33년차의 배우 정진영이 영화 감독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오랜 꿈이던 영화 연출 데뷔작 ‘사라진 시간’을 완성하며 감독으로서의 꿈을 이뤘다.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 자유롭게 해석할 권리를 주는 새로운 문법의 작품이라 정진영의 감독 도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9일 오후 2시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사라진 시간’(감독 정진영)의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나선 정진영은 이번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이 작품이 갖는 의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배우 조진웅, 감독 정진영, 배우 배수빈, 정해균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cej@osen.co.kr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배우 조진웅과 배수빈, 정해균, 그리고 차수연 등이 출연한다. 
감독 정진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cej@osen.co.kr
먼저 정진영은 영화 감독으로 나선 이유에 대해서 “어렸을 때 꿈이 영화 연출이었는데 계속 배우를 했다. 성인 삶의 대부분을 배우로 진했다. 영화 연출로 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지 의문을 지니면서 그 꿈을 접고 살았다. 4년 전 쯤에 50살이 넘은 후에 내가 능력이 되든 안 되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박하게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동안 영화 만들었다가 망신 당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족쇄로 나를 묶었다. 하고 싶은 것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정진영 감독이 ‘사라진 시간’의 시나리오를 쓴 건 2017년 가을, 2018년 한 달 동안 영화 촬영을 하고 지난해 후반 작업까지 완료해놓았다. 이후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개봉을 앞두고 이날 처음으로 영화를 공개했다. 정진영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정말 궁금하고 떨린다”라고 전했다.
‘사라진 시간’은 출연 배우들이 입을 모아서 “모호한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새로운 문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스터리라는 한 장르로 설명되는 작품도 아니고, 정해진 답이나 결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정진영 감독 역시 이 작품이 다양하게 해석되길 바랐다. 
9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사라진 시간(감독 정진영)’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8일 개봉.배우 조진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cej@osen.co.kr
정진영 감독은 “사실 내 인생에 원래 감독이 아니었으니까 이 이후로도 다시 연출을 하게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단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정진영 감독은 “어릴 때부터 나이 먹어서도 하는 고민인 것 같다. ‘나는 누구지? 내가 생각하는 내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규정하는 나와 충돌할까?’라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시놉시스는 어느 날 갑자기 바로 썼다. 계기가 있었는데 말씀드리기 힘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진영 감독은 “예상하지 않았던 이야기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이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힘들었을 것 같다. 홍보 팀에서 ‘이 영화 장르를 뭐라고 할까요?’라고 물어보길래 ‘하나의 장르로 설명될 수 있는 영화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홍보팀에서 그렇게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하더라”라며, “이 영화는 굉장히 다양한, 하나의 장르로 해석할 수 없는 이야기로 했다. 선문답을 마지막에 던져서 그 부분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하다. 그 선문답을 던지기 위해서 앞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재미있게 가져가려고 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장르에 대해서 묻는다면, 가장 가까운 것은 슬픈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연약한 인간의 외로움, 그 슬픔을 그린 작품이다. 하나의 장르로 이야기하면 오해가 있을 것 같다”라며, “배우들이 모르고 시작했다고 하는데 나는 배우들을 믿는다. 이성적으로 알기 전에 그 인물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훌륭하게 잘해줬다”라며 고마워했다.
9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사라진 시간(감독 정진영)’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8일 개봉.배우 배수빈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cej@osen.co.kr
조진웅과 배수빈, 그리고 정해균은 이날 ‘사라진 시간’에 대해서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다”는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조진웅은 “감독님만 믿고 만들어가고 완성된 것을 보니까 하나의 명제를 두고 설명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가슴 속으로 진하게 밀려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냥 흐름을 쫓아간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조진웅은 “영화에 미묘한 지점이 정말 많은데 이 세상에 말이 되는 게 없는 것 같다. 코로나19도 말이 되나. 지금도 마스크를 쓰며 영화를 본다는 게 말이 되나. 코로나19 상황에 관객들에게 극장에 오라는 게 말이 되나. 이렇게 아이러니를 느끼며 산다. 휑한 길을 걸어가는 극 중 모습을 보며 상당히 미묘했다. 이런 부분들이 제게는 좋게 다가온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배수빈도 “모호한 작품”이라며, “구체화돼서 스크린에 나온 것 자체가 신기하다. 느낌은 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구체화되고, 이것이 이 영화릐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그러면서 순간 순간 재미이씩도 하고 어이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부분이 이 영화릐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고 밝혔다.
정해균도 “뭔지도 모르고 하겠다고 했다”라며, “이런 게 말려드는 건가 했다. 사실 책도 제대로 읽지 않고 하겠다고 했다가 후회 많이 했다. 찍으면서도 끝까지 배우들이 ‘뭐지? 무슨 내용이냐’하면서 했다. 감독님께서 꼼꼼하게 잘 챙겨주셨다. 배우에게 심하게 몰입해주셨다”라고 전했다.
이에 정진영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서 “관객들이 느끼는 초점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시는 분들이 해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의도를 굳이 말씀드리면, 나는 두 개의 차원이 같이 존재하고 그 차원이 하나로 합쳐질 때 발생하는 것이 이 영화에서 이뤄진다.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이야기다. 더구나 마지막에 답도 안 준다. 처음부터 답을 드릴 생각을 안 하고 만들었다. 선문답이다. 선문답의 함정은 이야기에 대한 정서적, 여러 가지 감정적 교감이 있는 상태에서는 훌륭하지만 전달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런 위험성이 존재한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각각의 작품은 다 태어난 이유가 있고 다른 것 같다.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 영화는 다 해석이 돼서 없어지는 영화가 되지 않길 바랐다. 생각하는 도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형구가 걷고 검은 화면이 나올 때 관객들은 ‘내가 뭘 본거지?’라는 고민을 집에까지 가져가길 바랐다. 그런 질문을 하다가 ‘그러면 나의 정체는 뭐지?’라는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9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사라진 시간(감독 정진영)’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8일 개봉.배우 정해균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cej@osen.co.kr
정진영 감독은 주인공 형구부터 수혁, 해균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조진웅과 배수빈, 정해균의 모습을 녹여낸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는 배우들의 캐스팅에 대해서 “내가 작품에서 같이 했던 조진웅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 인물인 것 같다 생각하고 조진웅을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조진웅 씨의 여리고 순한 모습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굉장히 키도 크고 덩치도 커다랗고 허세도 클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굉장히 여린 사람이다. 형구는 고난을 이겨내는 영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동의하고 살 수밖에 없는 여린 사람이다. 연기는 너무 잘하고, 따뜻한 여린 모습의 조진웅을 이 영화 속의 형구로 모시고 싶었다. 감사히 책 보내자마자 하루 만에 읽고 하겠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배수빈 씨는 같이 작품을 했던 친구다. 수혁은 한없이 착하다. 연기할 때 악역도 잘하지만 배수빈 씨 내면에 있는 따스함을 안다. 그 눈빛을 이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시나리오 보고 역시 보자마자 하겠다고 했다”라며, “정해균 씨는 너무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이름을 그대로 쓴 이유는 처음에는 다른 인물로 썼었는데 잘 안 맞더라. 다른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해균 씨가 보이는 선과 악이 겹치는 이중적인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그 자체로 해균이다했다”라고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정진영 감독은 출연해준 다른 배우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이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참여해줬는데 너무나 흔쾌히 참여해줬다. 배우 출신이다 보니까 후배, 선배, 동료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것이 망설일 때가 있다. 억지로 하는 부분이 두려웠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많은 동료들이 지나가는 것으로도 한 장면하겠다고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유명한 배우들이 곳곳에 나오면 이상하지 않나. 낯선 배우들을 모시려고 했다. 다들 흔쾌히 참가해줘서 고맙다. 큰 빚을 졌다”라며 고마워했다.
9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사라진 시간(감독 정진영)’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8일 개봉.감독 정진영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cej@osen.co.kr
데뷔 33년차 경력의 배우에서 신인 감독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정진영은 “참 행복했다”라고 영화 작업에 대해서 회상했다. 
정진영 감독은 “(감독으로) 좋은 점은 행복했다. 몸은 힘들고, 한 달 안에 찍은 영화라 내 몸은 힘들었지만 굉장히 행복했다. 미약을 먹은 것처럼 힘이 나고 싱글벙글 웃음이 나고 행복했다. 어려웠던 점은 후반 작업을 하면서 어려웠다. 현장에서 내가 제한된 시간을 가지고 촬영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난 변수는 구멍이 난 부분이 있다. 후반 작업에 대해서 확실한 작업의 상을 갖고 있지 않고 촬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뭘 알고 시작한 게 아니다. 알았으면 시작 안 했을 것 같다. 이렇게 언론시사회 자리가, 관객을 만나는 자리가 참으로 무서운 자리라는 것을 알면서 여전히 겁먹은 채 시작을 안 했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용기를 냈던 나에게 ‘잘한 결정이다’라고 칭찬해주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나선 정진영의 새로운 도전이라 더 특별한 작품, ‘사라진 시간’이 관객들에게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주목된다. 오는 18일 개봉된다. /seo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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