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주셔서 감사했습니다"
‘TV는 사랑을 싣고’ 김창옥 교수가 가난했던 시절 자신을 후원해준 은인을 만나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19일 방송된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의뢰인으로 나온 김창옥은 “얼굴에 메이크업을 하지만 전 학력에 대한 메이크업을 했다. 아버지가 청각 장애가 있어서 학교를 나온 적 없다. 엄마도. 큰 누나는 초등학교만, 큰형은 중학교만, 다른 누나 셋은 여상을 나왔다. 그게 열등감이었다. 막내인 저는 학교에 가길 바라셨지만 삼수했다. 그러다가 해병대에 갔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24살에 제대했다. 영화 ‘미션’을 보고 오보에에 빠져서 음악쪽을 꿈꿨지만 힘들었다. 그러다가 서울 신촌에 상경했다. 백팩에 자기 학교 로고를 박는 게 유행이었다. 저는 해병대 로고를 박았다. 열등감이 대단했다. 5개월을 신촌에 살다가 경희대 음대에 합격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학력에서 독립했는데 해방되진 못했다. 동기들은 예고 출신인데 나는 공고 출신이었다. 열등감이 심해지니 마음이 표정을 바꾸더라. 항상 군복 입고 다녔다. 모든 노래를 힘줘 불렀다. 학력에 대한 열등감에서 지금은 자유로워졌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하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김창옥은 6남매 중 막둥이로 서울에 올라와 돈이 없어서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그는 “작은 교회에서 지휘를 했는데 그때 관리인들이 있었다. 집사님 부부 댁 창고를 빼고 제가 살게 됐다. 매달 3만 원씩 2년을 아무 이유없이 후원해주셨다. 사찰 집사님이라고만 불러서 성함을 모르겠다. 키다리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라며 은인을 찾아 달라고 했다.
그는 김용만, 윤정수와 함께 동대문구 이문동에 갔다. 김창옥은 “아는 형의 아르바이트 제안으로 교회 성가대에서 솔리스트가 됐다. 13만 원을 매달 받았다. 한 분은 제게 지휘 공부도 하라며 지휘 클래스 1년 반 등록금을 대주셨다. 백창길 장로님이다”라며 또 다른 은인을 얘기했다.
그러다가 20년 전 교인을 만났다. 이 교인은 “김창옥 기억난다. 그때 뽀얗고 눈이 동그랗고 말랐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며 “백창길 장로님은 돌아가셨다. 3년 정도 됐다. 김창옥 교수 잘 될 거라고 희망 있다고 얘기한 것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말에 김창옥은 “강연자가 된 다음 장로님 찾아 뵙고 ‘그때 그래주셔서 덕분에 제가 지금 이 일을 하게 됐다’고 감사의 말씀 드리고 제 강연에 꼭 초대하고 싶었는데”라며 아쉬움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가 찾는 집사 부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교인은 김창옥에게 오준봉, 승복임 부부라고 이름을 알려줬고 “노인 무료 급식 봉사를 했는데 오 집사 부부는 꼭 밥을 챙겨서 김창옥 교수에게 줬다더라. 아주 검소하게 살았다. 창고 방 청년이 몸이 약하다며 기도해 달라고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본격적인 추적 전 김창옥은 “강연에 아버지를 초대했는데 장애 때문에 못 들으셨다. 엄마는 저를 안 보시더라. 끝나고 물어보니 ‘우리 막둥이가 강연하면 사람들은 웃는데 엄마는 눈물이 나. 우리 막둥이가 엄마 아빠 없이 서울 와서 저 말을 하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하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그는 “친구들은 퇴근길 아빠를 반기는데 저는 숨었다. 무섭기도 하고 어색했다. 장애가 있는 게 근본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가족의 대처방식이 문제다. 가족들은 아빠가 청각 장애인지 몰랐다. 어렸을 때 친구를 집에 데려왔는데 아버지가 친구 인사를 못 받으셨다. 그날 알았다. 아빠가 귀가 안 들린다는 걸”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그는 “허한 건 있다. 어릴 적 아빠랑 교감이 없었으니까. 아버지와의 불통은 아들에게도 가더라. 딸한테는 한없이 자상한데 아들 쌍둥이한테는 안 그랬다. 저한테 아빠가 아니라 ‘은혜 아빠’ 이렇게 부르더라. 사람은 자기 부모한테 당한 걸 자기 자식에게 하는 걸 당연시 한다더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현재 그의 아버지는 수술을 받아 귀가 들리는 상황. 김창옥은 “아버지랑 소통하려고 왜 귀가 안 들리는지 알고 싶어서 병원에 갔는데 수술하면 된다더라. 이미 20년 전쯤에 인공 와우가 있었다. 돈도 없고 세상도 몰랐던. 지금은 수술하셔서 듣는다. 현재 언어 재활 중”이라고 알렸다.
이어 그는 버스터미널로 가 은인을 만났다. 경북 봉화에 내려가 교회를 이끌고 있다는 부부. 하지만 오준봉 목사는 오지 못했고 승복임 씨만 등장했다. 김창옥은 단박에 그를 알아보며 반가움에 손을 덥석 잡았고 연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승복임 씨는 “해 준 것도 별로 없는데 찾아 주니 감격이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더라. 교인들이 말해줘서 김창옥 교수를 알게 됐다. 교회에 있을 때랑 달리 웃기고 말 잘한다더라. 유명해질 줄 알았으면 더 잘해 줄 걸”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들은 다 같이 식사를 즐겼고 승복임 씨는 “김창옥 교수 강연을 들으며 많이 울었다. 제가 살아왔던 가정사라 비슷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 당시 김창옥은 초라했다. 사람들이 너무 관심 없었고 교회에서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왔을 뿐 자랑할 만한 건 아니었다. 큰 애는 김창옥 교수를 옆 방에 살았던 형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오지 못한 오준봉 씨는 영상통화로 대신했다. 그는 “얼굴이 너무 좋아져서 너무 좋다. 그때 고생 너무 많이 했는데 교수님이 잘 돼서 더 좋다”고 덕담했고 김창옥은 “두 분이 소리없이 사랑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꼭 찾아 뵙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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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