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근으로서 아주 호사를 누리는 영화이지 않나 생각한다.”
이봉근은 2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 개봉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전했다. 영화 연기는 처음 도전하는 만큼 주연 배우로서 책임감이 컸고, 국악인으로서 무엇보다 우리 소리의 멋이 잘 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꾼’은 영조 10년 아내 간난(이유리 분)을 찾아 나선 재주 많은 소리꾼 학규(이봉근 분)가 장단잽이 대봉(박철민 분), 몰락한 양반(김동완 분)과 조선 팔도를 유랑하는 모습을 그린다. 인신매매로 정국이 어수선한 시기, 학규를 필두로 하나 둘 뭉친 광대패의 한과 흥이 뒤섞인 유랑을 통해서 피폐해진 조선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동안 판소리와 연극 무대에 올랐던 이봉근은 ‘소리꾼’을 통해 처음으로 영화 연기에 도전하게 됐다. 발성부터 달라 힘을 빼는 법부터 익히며 차분하게 제 역할에 몰입했다.
이봉근은 “스크린 연기와 무대에서 하는 연기는 너무 다르더라. 무대에서 하는 연기는 아무래도 무대와 관객이 있다 보니까 전달이 더 주가 되고 형식미가 있다. 형식미 안에서 연기하는 패턴이 있다 보니까 그렇게 연기를 했었다. 스크린 연기는 발성을 하지 않고 이야기하니까 힘을 빼는 작업이 너무 어려웠다. 아무래도 영화의 샷이 들어오는 방향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까 간극을 줄이는 게 힘들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오디션에 지원했었다. 아는 분들께 재작년 12월에 이런 영화의 오디션 공고가 뜨니까 지원해보라고 하더라.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판소리가 주가 되는 영화라고 해서 매력을 느꼈다. 연극을 하긴 했지만 내 매력을 더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배역을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였다. 오디션을 통해서 너무나 운이 좋게 발탁됐다”라고 밝혔다.
톱스타가 아닌 국악인을 영화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점은 매우 파격적이었지만 소리가 주인공인 영화다 보니까 조정래 감독의 생각이 확고했던 것. 오디션에 참여했던 심사위원들도 어느 순간 이봉근에게서 극 중 학규의 눈빛을 발견했다고.
극 중 이봉근은 민심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학규 역으로 열연했다. 소리꾼으로 생활하며 밥벌이를 이어가는 학규와 그의 가족, 행복하기만 했던 그는 어느 날 아내 간난이 사라지고 아내를 찾아 유일한 조력자 대봉, 딸 청이와 함께 조선 팔도를 유랑하기 시작한다.
주연 배우로서 극을 이끌고 가는 연기는 물론, 이봉근은 소리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영화에 쓰인 소리는 고속촬영으로 인한 극히 일부 장면 이외에 거의 100% 동시 녹음으로 진행됐을 만큼, 현장의 감정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이봉근은 “처음부터 현장에서 했던 음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후에 녹음한 게 있는데 고속촬영을 했기 때문에 쓸 수 없어서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소리를 했다. 박철민 선배님도 직접 북을 치셨다”라며, “소리를 많이 할수록 좋아하니까 괜찮았다. 좋았다. 소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 편했다”라고 털어놨다.
뿐만 아니라 이봉근은 배역을 위해 체중 10kg을 감량하기도 했다. 소리꾼의 계급이 천민이었던 만큼 배역에 더욱 몰입하기 위한 것. 이봉근은 “감독님 요청도 있었고, 제작사 분들도 ‘우리 영화가 소리꾼이고 소리꾼의 계급이 천민인데 너무 잘 먹은 것 같지 않냐’는 이야기를 많이 하셔서 감량했다”라며, “나만 아는 노력이 있는데, 영화에서 1년 전과 1년 후가 나온다. 1년 전은 통통하게 살이 붙어 있는 상태였고, 1년 후는 살을 많이 뺀 상태에서 했다. 어떨 때 1년 전과 후를 같이 촬영하는 날이 있으면 1년 전 내용을 촬영할 때는 뭘 먹어서 통통하게 보이려고 했고, 1년 후 모습은 2시간 정도 운동을 해서 살을 빼서 연기하긴 했다”라고 밝혔다.
이봉근은 ‘소리꾼’ 영화를 통해서 정극 연기를 하면서 이후에도 연기 도전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그는 “연기를 하면서 또 하나의 활로를 찾은 것 같다. 또 하나의 재미, 도전해 보고 싶은 영역이다. 판소리를 배제하고 정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연기로서는 밑천이 없다 보니까 잃을 것도 없다. 단역이나 보이지 않는 역할도 좋다. 드라마든 뭐든 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고스란히 나 스스로를 쌓아서 나중에 궁극적으로 판소리에 녹여내면 좋을 거고, 또는 스크린에서 많은 분들께 얼굴을 비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판소리를 오래 하다 보니까 약간의 절제된 감정선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고 배워왔다. 가장 직접적인 게 연기라고 생각이 든다. 감정선이 드러나서 연기를 한다고 본다.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희열감을 느꼈다. 혹은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연기를 하고 난 다음에 스크린으로 다시 봤을 때에 묘한 느낌도 너무 좋아써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아내 간난 역의 이유리 뿐만 아니라 대봉 역의 박철민 등 현장의 모든 배우, 스태프들이 이봉근에게 조언해주면서 함께 연기를 이끌어가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마워했다.
이봉근은 이유리와의 연기에 대해서 “호흡을 많이 맞췄다. 연습도 많이 하고 오히려 예능 연습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친하다”라며, “이유리 씨와는 대사 연습을 할 때 재미있게 연습을 했었다. 진짜가 아니면 뱉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영화 안에서 배우 분들끼리 되게 끈끈하다. 박철민 형하고는 말할 것도 없다. 존경한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으로서 가장 어른스러운 분이다. 어른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정말 어른스럽다, 존경스럽다는 마음이 있다”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소리꾼’ 현장에서는 극 중 학규와 간난의 딸 청이 역할로 출연한 아역배우 김하연의 재능에 모두 놀라기도 했다고. 이봉근은 김하연에 대해서 “소리 신동”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아역 오디션에 함께 들어갔는데 김하연이 연기에 들어가는데 너무 잘해서 놀랐다. 그리고 나서 판소리를 했는데 인당수 부분이었다. ‘판소리 전공인데 이렇게 연기를 잘해?’라고 놀랐다. 끝나고 나서 질의응답을 하는데 소리를 언제부터 배웠냐고 물어봤는데, 일주일 전에 녹음한 거 듣고 따라했다고 하더라. 그 장단이 엇모리 장단인데 엄청 어렵다. 너무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을 보고 3개월 연습했겠다 생각했었다”라고 오디션 당시 상활을 털어놨다.
이어 “그리고 잊고 나서 현장에 들어가서 소리를 하는데 준비했냐고 물어보고 따라 해보라고 하는데 바로 하더라. 너무 깜짝 놀라고 질투도 나고 그러더라.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기교적인 부분들은 어쩌면 소리를 오래하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정말 놀랐던 것은 소리를 하면서 연기가 되니까. 소리 연기를 하는 것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득음의 경지에 가야 드러난다. 소리를 하는데 내 가슴이 미어지더라”라며, “재미있게도 박철민 선배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연기 천재라고 하더라. 그러데 소리도 신동이더라”라고 칭찬했다.
결국 이봉근은 직접 김하연의 어머니에게 소리를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고. 이봉근은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사실 나는 제자를 쉽게 받지는 않는다. 하연이란 친구가 정말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소리를 가르치고 싶다고 하니까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 하연이도 배우고 싶냐고 하니까 그렇다고 하더라. 개봉 이후부터 배우기로 했다. 만나서 가르치는 것을 되게 기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소리꾼’은 이봉근에게 첫 번째 영화이기도 하고, 국악인으로서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김동완은 시사회 후에 ‘이봉근의 인생영화’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이봉근은 “‘소리꾼’으로서 삶을 사는데 학규가 그런 삶의 가장 끝을 달리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리꾼이 가져야 할 득음이라는 경지에 학규가 도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분에서 인생 영화일 수도 있고. 이봉근으로서의 삶에서도 어떻게 보면 호사다. 아주 호사를 누리는 영화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많은 경험과 많은 배움을 주어서 인생 영화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 좋은 형님, 누나를 만났다는 생각에서 인생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봉근은 소리를 하시는 분들 역시 이번 작품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봉근은 “(소리꾼으로서)우리가 상상했던 이야기들이 있다. 소리꾼들끼리 상상했던 이야기가 구현된 것이 있다. 많은 소리하는 분들, 전통 음악을 전공하는 분들께서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영화 자체가 12세 관람가다 보니까 많은 소리적인 부분도 상냥하게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한다. 상냥한 영화다. 귀엽고 예쁘다. 외국인 분들이 볼 때도 이해가 쉽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소리꾼’은 내달 1일 개봉된다. /seon@osen.co.kr
[사진]리틀빅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