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조연, 극본, 연출이 모두 완벽한 대회였다. 코로나19의 여파로 7개 대회가 취소되고 7월 첫 주에야 개막전을 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이지만 5일 끝난 첫 대회에서 ‘희망’이라고 하는 성대한 수확을 거뒀다.
해외 투어가 열리지 못해 올스타전을 방불케 하는 좋은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고, 어렵게 열린 대회이니만큼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이름 있는 선수들은 이름값을 했고, 코리안투어의 미래를 짊어질 선수들은 마지막 날 뜨겁게 우승컵을 두고 다투었다.
2020시즌 KPGA 코리안투어 개막전으로 열린 ‘우성종합건설 아라미르CC 부산경남오픈(총상금 5억원, 우승상금 1억원)’의 초반라운드는 베테랑들이 이끌었다.
경남 창원 아라미르 골프 앤 리조트 미르코스(파72. 7,245야드)에서 열린 대회 1, 2라운드는 올 시즌 선수회 대표 홍순상(39)과 낚시꾼 스윙의 최호성(46)의 투맨쇼였다. 1, 2라운드야 성적도 성적이지만 이슈 메이커가 부상하는 게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더 효과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홍순상과 최호성의 활약은 골프팬들의 이목을 끄는 소재로 충분했다. 둘은 1, 2위권에 머무르며 대회 열기를 올리는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3라운드에서는 한국 남자 프로골프를 이끌어 갈 재목이 등장해 대회장을 긴장시켰다. KPGA 코리안투어에 첫 출전한 아시안투어 신성 김주형(18, CJ대한통운)이었다. 지난해 아시안투어 ‘파나소닉 오픈 인디아’에서 아시안투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우승을 기록한 김주형은 지난 3월 KPGA 투어프로 자격을 얻었다. 지난 1월 ‘SMBC 싱가포르오픈’에서 단독 4위에 오르며 세계랭킹을 끌어올린 김주형은 현재 세계랭킹 127위로 이번 대회 참가 선수 중 세계랭킹이 가장 높다.
김주형은 3라운드 경기에서만 9타를 줄이며 중간합계 17언더파, 단독 선두로 급부상했다. 그 뒤로 쟁쟁한 코리안투어 선수들이 줄을 섰다. ‘KEB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 챔피언이자 ‘BTR 장타상’을 수상한 서요섭(24)이 16언더파 2위, 지난해 제네시스 대상 수상자 문경준(38, 휴셈)이 15언더파 3위로 최종라운드 챔피언조에 묶였다. 누가 우승을 하더라도 짱짱한 스토리가 쏟아질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복명까지 있었다. 3라운드 중간합계 12언더파로 공동 14위에 올랐던 이지훈(34)이었다. 이지훈은 2017년 카이도시리즈 제주오픈에서 KPGA 투어 1승을 올린 기록을 갖고 있다. 이지훈에게 부산경남오픈 최종라운드는 말 그대로 ‘신 들린 날’이었다. 부산이 고향이라 아라미르CC에서 여러 차례 연습라운드 경험이 있다는 이지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2~5번홀 4연속 버디, 10~14번홀 5연속 버디는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스코어카드다.
챔피언조보다 5조나 앞서 경기를 마쳤을 때 이지훈의 최종 스코어는 21언더파가 돼 있었다. 이제 후속 주자들 중에서 신들린 선수만 나오지 않으면 된다. 2타차의 간극도 있었다.
그런데 이지훈의 이런 기대를 ‘젊은 피’ 김주형이 깨뜨렸다. 무서운 10대인 김주형은 파5 18번홀에서 3번 우드로 있는 힘껏 세컨드샷을 휘둘렀다. 공은 핀 2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멈췄고 김주형은 이 공을 침착하게 굴려 이글을 성공시켰다. 이 무시무시한 샷으로 김주형은 할 일을 다했다. 얼마나 전도유망한 재목인지 다 보여주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우승컵은 더 절실한 이지훈에게 돌아갔다. 18번홀에서 펼쳐진 연장 첫 접전에서 이지훈은 2미터 남짓한 버디 퍼트에 성공한 반면 김주형은 1.5미터 거리의 버디 퍼트에서 힘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공이 홀컵 끝을 맞고 튀어 나왔다.
3년만에 2번째 우승을 만든 이지훈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힘들게 대회가 개최됐고, 그 대회에서 3년만에 우승을 하니 얼떨떨하다. 첫 우승은 파이널 라운드가 취소되면서 얻어 아쉬웠는데, 오늘은 기대 안하고 마지막 라운드를 편안하게 쳤다. 즐기면서 경기를 하다보니 버디를 9개 잡은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