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8’이 한국판 ‘블랙 미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SF(science fiction film) 장르는 어렵다는 선입견, 미국 중심의 SF라는 벽을 허물고 우리만의 개성을 살린 공상 과학 드라마로써 인기를 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SF8’은 언뜻 보면 인기 아이돌 그룹명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름 그대로 SF 장르의 드라마 8편 모아놓았다는 의미다.
식물인간과 10년 동안 환자를 간호해온 간병인의 삶을 놓고 선택을 고민하는 로봇부터 AI형사와 함께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부모 잃은 형사, 지구 종말을 일주일 남겨놓고 나타난 초능력자, 가상 연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원하는 얼굴로 데이트하는 남녀의 로맨스 등 감독 8명의 다른 색깔이 담긴 8편의 SF가 오는 10일 OTT 플랫폼 웨이브를 통해 동시 공개된다. 미국 넷플릭스가 전 세계에서 붐을 일으킨 가운데, 국내산 OTT가 신성장 산업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8일 서울 이촌동 CGV아이파크몰에서 ‘SF8’(기획 DGK·MBC, 제공 wavve·MBC, 제작 DGK·수필름)의 제작보고회가 진행됐다. ‘SF8’은 한국영화감독조합(DGK), 영화제작사 수필름, 웨이브가 손잡고 SF 8편을 만든 작품이다. 국내 SF장르의 대중화라는 목표를 갖고 드라마,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이 자리에는 8편의 작품에서 각각 주인공을 맡은 배우 예수정-이유영, 이동휘-이연희, 이시영-하준, 김보라-최성은, 최시원-유이, 하니, 장유상 등의 배우들이 1부와 2부로 나뉘어 무대에 올랐다. 배우 문소리와 신소율은 참석하지 못 했다.
‘SF8’을 총괄 기획한 민규동 감독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염원이 컸다. 최승호 MBC 전 사장님이 영화감독조합에 오셔서 ‘(작품을)같이 해보면 어떨까?’라는 말씀을 하셔서 구상을 시작했다. 1년 반 정도 진행한 끝에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기획하게 된 과정을 전했다.
8편을 SF 장르로 택한 이유에 대해 “사실 SF는 외국의 독점적인 장르로 인식되곤 했다. 그래서 저희의 마음 속에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며 “이에 (감독조합 소속)8명의 감독들이 모여서 SF 장르를, 새로운 플랫폼에서, 원하는 배우들과 한 번 해보자는 마음에 시도를 했다”고 밝혔다.
민규동 감독은 이어 “요즘엔 SF 장르를 쓰지 않는 젊은 작가가 없을 정도다. 인간답게 사는 법, 한국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서 SF로 풀어내고자 한다.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지만 감독들마다 개성을 살려 차별화하는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같은 화두를 놓고도 다른 질문을 던져가며 볼 수 있을 거 같다”고 밝혔다. ‘간호중’은 요양병원에 10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환자와 지칠 대로 지친 보호자 연정인(이유영 분), 두 사람을 보살피던 간병 로봇(이유영 분)이 자신의 돌봄 대상 중 누구를 살려야 할지 고뇌에 빠진 과정을 그렸다.
‘만신’(감독 노덕)은 인공지능 운세 서비스 만신을 신격화하고 맹신하는 사회에서 각자의 아픔을 가진 토선호(이연희 분)와 정가람(이동휘 분)이 만신 개발자를 직접 찾아 나서고 실체를 목격하는 과정을 그렸다.
‘블링크’(감독 한가람)는 어린 시절 자율 주행차 사고로 부모를 잃은 형사 지우(이시영 분)가 자신의 뇌 속에 이식된 인공지능 형사 서낭(하준 분)과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담았다.
‘인간증명’(감독 김의석)은 인간의 뇌와 AI의 연결 및 결합이 가능해진 미래 사회에서 사고로 아들을 잃게 된 엄마 가혜라(문소리 분)가 아들(장유상 분)의 뇌 일부를 소생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우주인 조안’(감독 이윤정)은 미세먼지로 뒤덮인 세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고가의 항체 주사를 맞은 C들이 100세의 수명을 누리고, 그렇지 못한 N들은 30세에 끝나는 수명에 맞춰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감독 안국진)는 지구 종말까지 일주일이 남은 가운데 별별 취향의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하면서 시작한다. 초능력자들을 모아 종말을 막으려는 혜화(신은수 분), 망하는 순간에도 외로운 모태솔로 김남우(이다윗 분)가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 ‘증강 콩깍지’(감독 오기환)는 가상 연애 앱인 증강 콩깍지를 통해 만난 민준(최시원 분)과 한지원(유이 분)의 연애를 담았다. 민준과 지원은 증강콩깍지에서 각각 ‘레오나르도’, ‘지젤’이라는 가명을 쓴다.
‘하얀 까마귀’(감독 장철수)는 구독자 80만 명을 지닌 스타급 BJ 주노(하니 분)가 어느 날 나타난 동창생으로부터 조작 논란에 휩싸이면서 시작한다. 김의석, 노덕, 민규동, 안국진, 오기환, 이윤정, 장철수, 한가람(가나다순) 총 8명의 감독이 한 편씩 연출한 ‘SF8’은 VR, 게임, AI 등 최신 기술을 소재로 장르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올 초 중국에서부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시작되면서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 충격에 휩싸여있다. 올 가을엔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벌써부터 걱정을 안긴다. 이로 인한 극장 매출의 감소도 문제지만 현재 국내 영화계가 마주한 제작 중단 및 배급 일정 고민은 향후 몇 년 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영화 산업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안타까운데, 코로나19 이후에도 이같은 분위기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시기적절하게 나온 도전적인 ‘SF8’이 옴니버스 형식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 미러’와 비교 선상에 오른 것은 자명하다. 두 작품이 SF장르라는 공통분모를 지녀서다. 중간에 건너뛰거나 무작위로 봐도 무방하다. 기술의 발달에 대한 경각심, 인간에 대한 존엄성 등 생각할 거리를 담은 ‘SF8’이 한국판 ‘블랙미러’라는 평가를 받게 될지 주목된다.
‘SF8’은 오는 10일 오전 10시 웨이브를 통해 8편 동시 공개되며, 내달 17일부터 월화극으로 편성돼 4주동안 MBC를 통해 전파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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