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20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갔다. 강산이 두 번 바뀐 셈이다.한국 e스포츠사에서 이지훈이라는 이름 석자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피파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감독, 단장을 거치면서 쉼없이 달려온 젠지 이지훈 단장은 한국 e스포츠의 산증인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전세계 스포츠 시장이 위축됐지만 여전히 그의 하루는 24시간이 부족하다. 글로벌 e스포츠 프로게임단 젠지의 단장답게 전세계 e스포츠 판의 흐름을 읽으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로 여념이 없다.
OSEN+는 따스한 햇살이 비춘 5월의 어느 날 이지훈 단장을 서울 강남에 위치한 젠지 프로게임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젠지 이지훈 단장입니다."라고 자기 소개를 한 이지훈 단장은 "벌써 젠지에 합류한지 3년차를 맞이했네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e스포츠 시장의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과 전통적인 스포츠팀들이 프로게임단 창단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 조사업체 뉴주(Newzoo)에 따르면 2020년 e스포츠 시장은 지난해 보다 15.7% 증가한 11억 달러(한화 1조 3500억 원)로 규모를 예측하면서 시청자 숫자는 11.7% 증가해 4억 9500만명, 5억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현 상황에서 이지훈 단장도 더 바빠질 수 밖에 없다. 이지훈 단장은 “하루가 24시간인데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해요. 돌아보면 금방 시간이 흘러 하루가 갔어요”라며 환한 웃음으로 최근 근황을 전했다.
“예전에도 e스포츠의 미래 가치는 인정받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더욱 더 온라인 기반의 장점이 극대화 됐죠. 물론 여파도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현장이 사라지고, 글로벌 대회들도 축소되거나 취소되면서 영향을 받았죠. 그럼에도 팬 분들이 e스포츠를 즐기시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에요. 전반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e스포츠의 관심을 보이고, 참가 의사를 보이는 건 e스포츠가 시장 잠재력을 인정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지훈 단장이 생각한 e스포츠 매력은 무엇일까. 이지훈 단장은 ‘가능성’을 꼽았다.
“이제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명확해 졌죠. 제가 선수로 있었던 20년전 만 해도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은 높지 않았잖아요. 다른 스포츠에 비해 학원 스포츠 같은 기반이 부족하지만, 노력한다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덧붙여 이지훈 단장은 “단장이 되고 나서, e스포츠를 산업적인 가치로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이제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밀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의 연봉이나, 처우, 환경이 전통적인 스포츠 종목과 비교해도 될 정도의 수준이 됐죠. 더 전반적인 환경을 끌어올리는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라며 각오를 다졌다.
2017년 오버워치팀인 서울 다이너스티로 시작한 젠지는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포트나이트, NBA 2K,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 발로란트 팀을 운영하면서 글로벌 프로게임단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런 행보에도 이지훈 단장은 ‘아직 갈길이 멀다’고 손을 내저으면서 당면한 과제 중 하나인 ‘LOL 프랜차이즈 입성’이라는 화두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20년 전의 e스포츠 팀들은 대부분 아파트 한 켠을 얻어 삼삼 오오 모여서 지냈어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이일을 시작했죠. 저역시 충분히 행복했고요. 지금 또한 e스포츠를 도전하는 친구들은 작은 기회라고 행복을 느끼리라고 생각해요. 20년 전이나 현재나 근본 자체가 크게 달라진건 아니지만, 프랜차이즈는 보다 더욱 안정적으로 많은 이들이 행복하게 e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발판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프랜차이즈라는 과제에 대해 이지훈 단장은 팬들의 궁금증에 대해 먼저 언급하면서 젠지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서 전했다.
“프랜차이즈라는 시장 자체를 많은 분들이 궁금하게 생각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100억 원 이상의 ‘큰 돈을 어디서 끌어 오고, 어떻게 유지를 하느냐’에 궁금증이 많이 있으실거에요. 예를 들어 한국의 대표 프렌차이즈 종목인 야구는 명확히 관중 수익이 존재하잖아요. e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수익원을 위해 프랜차이즈를 한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리그에서는 다른 팀들과 경쟁하지만, 시장 차원에서 동반자 관계로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도 있고요.
젠지의 경우 캐빈 추 회장님이 e스포츠의 종주국이라는 가치와 시장 경쟁력을 인정해 한국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팀의 방향성이 한국에 국한되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 같은 팀을 만들고 싶어요. 글로벌을 아우르는 슈퍼 팀을 목표로 세계 무대에서 각인되는 밸류를 추구하려고 합니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뛰고 있는 T1이라는 거대한 팀은 우리에게 좋은 자극제이고, 동반자라고 생각해요. 전세계에서 인정 받는 팀이 되는게 젠지가 추구하는 가치예요.”
젠지 단장 이지훈이 아닌 인간 이지훈의 앞으로의 계획도 물어봤다. 당장은 아니라도 그가 꿈꾸고 있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는 e스포츠의 산증인 답게 e스포츠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3년전 KT 감독 시절에 ‘마흔 살에는 뭘 하고 있을까’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3년 후에는 글로벌 e스포츠 팀의 단장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신기할 정도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 당시만 해도 e스포츠 팀들의 단장은 대기
업 임원 분들이 맡았던 시절이거든요. e스포츠는 지난 20년간 해온 일이지만 항상 모범이 되야 한다는 부담은 있어요. 5년, 10년 뒤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계획을 이야기 한다면 e스포츠 인력 양성에 더 힘을 쏟고 싶어요. 젠지에서 지금도 하고 있지만,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인재
풀을 늘리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팀의운영과 경영 보다는 이 자리는 은퇴하는 선수들의 성장과 감각있는 친구들에게 내어 주고 저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이지훈 단장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젠지는 팬 분들의 사랑으로 단시간 내에 성장한 팀입니다. 팬 분들의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면에서 팬 분들께서 아쉬워 하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팬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팀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글=고용준 기자 scrapper@osen.co.kr
/사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 이 콘텐츠는 ‘월간 OSEN+’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