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2017)에서 남한 외교안보수석과 북한 최정예요원, 두 철우의 버디물을 담았던 양우석 감독이 이번엔 현실에 가깝지만 판타지스러운 ‘강철비2 : 정상회담’으로 3년 만에 돌아왔다.
현실에 가깝지만 판타지스럽다고 표현한 이유가 비핵화를 비롯해 북한의 개방에 대해 논의하는 남한, 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6개국의 외교적 구도를 실제적으로 그리면서도 양 감독이 자신의 관점에서 고심한 한반도 평화 및 통일체제의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달 29일 개봉하는 ‘강철비2’(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와이웍스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스튜디오게니우스우정)는 남북미 정상회담 중 북한의 쿠데타로 세 정상이 북의 핵잠수함에 납치된 후 벌어지는 전쟁 직전의 상황을 그렸다. 1편보다 좀 더 한반도를 둘러싼 4국의 국제 정세를 담았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높다.
양우석 감독은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우리가 북한에 관심없이, 무시하고 살다보니 어느 순간 북한을 대할 때 표정을 잃은 거 같았다. 정우성에게 한국 대통령 역을 제안하면서 ‘잃어버린 표정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양우석은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질서가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도돌이표 하고 있다. 이 패턴은 30년째 돌고 있다. 당장이라도 남한과 북한이 뭐라도 할 것처럼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경색된다. 항상 이런 일을 겪었다. 저는 (반복된 30년을)압축해서 통사적으로 보여 드리려고 했다. 시국에 맞춰 영화에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전편과 세계관을 이어오지만 완전히 다른 속편을 만든 감독들을 만나면 그가 풀어놓은 제작기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강철비1’을 제작할 때는 사람들이 너무 남북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우리에게 ‘북한 문제를 해결할 주도권이 주어지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을 갖고 풀어갈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나온 게 식물인간 상태의 북한 1호였다. 남한이 그를 확보하고 나서 주변국의 눈치를 보며 시작하는 게 1편이었다. 1편이 판타지로 시작했다면, 2편은 처음부터 돌직구로 나갔다. 저는 1~2편을 통해 남북한의 4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것이다.”
이어 그는 “‘강철비2’는 아픈 리얼리티다. 초반에 (정치적 설명을 담았는데) 저는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지켜야하는 게 신뢰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까지 깔아놔야 중후반부에 들어서 (감독과 관객사이에)신뢰가 구축될 수 있다고 여겼다. 사실 어려운 정치적 상황을 길게 풀어놔 어렵게 생각하실까 저도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우석 감독은 “제가 무슨 메시지를 담으려고 한 것은 아니고 ‘강철비1’, ‘강철비2’를 통해 시뮬레이션을 보여준 거다. 상상력이란 말에는 힘을 뜻하는 ‘력’이 붙지 않나. 상상은 힘이다. 다양한 영역의 시뮬레이션을 도전해봐야 한다. 저의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건 내부검열로, 우리 스스로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는 교육, 외교, 안보는 정치적 시선으로 봐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해 국익이 무엇인지 상상하며 시뮬레이션을 짰다”고 강조했다.
‘강철비1’이 판타지로 시작해 리얼리티로 끝났고, ‘강철비2’가 리얼리티로 시작해 판타지로 끝났다는 점에서 양가적이다. 양우석 감독은 “2편은 1편의 상호 보완적이다. 처음와 끝이 다르고, 배우들도 1편과 달리 2편에서 캐릭터를 바꿨다”고 했다.
2017년 선보인 ‘강철비’의 속편격인 ‘강철비2: 정상회담’은 연출자와 배우 정우성, 곽도원의 출연 빼고 모든 게 싹 바뀌었다. 일단 전편에서 정우성이 북 최정예요원 엄철우 역을, 곽도원이 남한 외교안보수석 곽철우 역을 맡았었는데 이번에는 정우성이 남한 대통령 한경재, 곽도원이 북한의 호위총국장 박진우를 연기했다.
양우석 감독은 정우성과 곽도원을 재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충무로 격언이 연출의 반은 캐스팅이다.(웃음) 그만큼 중요하다”며 “마케팅에 수십 억원을 쓰는데 가장 중요한 건 개봉 날짜이기도 하다. 저도 연출의 반에 해당하는 캐스팅에 많은 공을 들이고 싶었다. 사실 다른 배우가 하는 것보다 이 배우들이 그대로 나와 진영을 바꾸는 게 나을 거 같았다”고 밝혔다.
정우성이 맡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해 양 감독은 “정우성이 ‘이렇게 잘생긴 대통령이 어디있냐’고 먼저 말하더라.(웃음)”며 “정우성에게 진영을 바꿨을 때 가장 중요하게 부탁 드렸던 것은 ‘표정을 보여달라’고 했다. 10여 년동안 주연배우들이 액션을 중심으로 갔다. 하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잃어버린 표정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우성도 오랜 고심 끝에 저의 이 말로 출연을 결정했다. 무력감 없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한경재 캐릭터에 집중한 것을 전했다.
유연석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사로 변신해 역대급 변신을 꾀했다. 그가 그동안 보여준 스위트한 훈남의 모습은 잠시 잊어도 좋다. “유연석은 (실제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과) 정반대 이미지인데 일부러 싱크로율을 안 맞췄다”며 “다만 배우가 가져오고 싶은 메소드적 이미지는 있었다. 가령 헤어스타일, 안경을 통해 자신이 생각한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은 표현하고자 했다”고 캐릭터를 함께 구축한 과정을 밝혔다.
‘강철비2: 정상회담’은 남한과 북한, 미국을 대표하는 세 정상이 핵잠수함이라는 비좁은 공간에서 협의를 하는데 국제 정세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과 비밀을 공유하다가 갈등을 빚는다. 하지만 결국엔 항구적 평화 정착의 실질적 진전을 이끌어낸다. 양 감독의 연출적 의도가 들어간 상상이긴 하나, 충분히 일어날 법한 시나리오로 현실감을 높였다.
“감독인 제가 작품을 하며 ‘마지노선으로 이건 꼭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변호인’을 할 때는 관객에게 웰메이드 법정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강철비2’는 기본적으로 분단물인데, 잠수함 액션이 큰 축을 차지한다. 그동안 국내에 없던 잠수함 액션이기 때문에 장르적으로 제가 최대치를 뽑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촬영부터 CG, 후반 작업에 최선을 다했다. 2편은 잠수함 액션 영화로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반드시 그 이상은 가야겠다 싶었다.”
개봉은 이달 29일.
/ purplish@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