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감독은 극한직업이다. 극도의 긴장과 몰입이 임계에 이르렀을 때, 마치 허공 중의 연줄이 툭 끊어지는 것 같은, 뜻밖의 일이 간혹 발생할 수 있다. 백인천과 김인식 등 예전에 예기치 못한 신체의 부자유스러움을 겪은 지도자들에게서 그런 징후를 찾아볼 수 있다.
드문 사례이지만 염경엽(52) SK 와이번스 감독이 경기 도중 쓰러져 주위를 놀라게 했던 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던 조치훈 프로기사는 과거 ‘목숨을 걸고 둔다’고 했지만, 프로야구 감독도 이쯤 되면 목숨을 걸고 승부를 한다고 해야겠다.
염경엽 감독이 덕 아웃을 떠난 것이 지난 6월 25일이었다. 그로부터 40일 남짓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선장을 잃은 SK는 좀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전히 바닥권에서 헤매고 있다. 구심점이 없는 팀의 지리멸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라운드를 떠난 뒤 염경엽 감독은 인천 길병원과 중앙대병원에서 3주 정도 입원 치료를 거쳐 현재 나름대로 복귀를 위한 재활에 열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의 근황에 대해 손차훈 SK 구단 단장은 “주중에는 절이나 이런 데 가서 산도 타고 재활을 하신다. 주말에는 집에 머무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염경엽 감독은 원래 절에 자주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퇴원 뒤 인연이 있는 스님들이 있는 절에 며칠씩 머물면서 심신을 추스르고 있다는 전언이다. 애초에 염 감독이 입원했을 때 병원 측에선 두 달가량 안정을 취하도록 권유했다. 이제 그 시한이 돼가고 있다.
자연스레 염 감독의 거취가 주목된다. 과연 그라운드에 언제쯤 복귀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간다. 그와 관련, 손차훈 단장은 “현재로선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안정이 되면 당연히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원론적인 언급을 하면서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 병원 진료 결과를 지켜보고 염 감독을 만나 (복귀) 의지 등 얘기를 들어보고 판단할 것이다.”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염 감독이 제대로 회복을 하고 병원 진단도 긍정적이면 다시 현장에 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염 감독은 아주 예민하고 세심한 성격이다. 식사량도 너무 적다는 게 그를 지켜본 주변의 얘기다. 넥센 히어로즈 감독 시절에도 그랬다. 이번 현장 이탈도 전력이 약화된 팀을 이끄느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주원인이었다.
염경엽 감독의 별명은 ‘염갈량’이다. 옛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 제갈공명의 지혜를 빗대 주변에서 붙여준 것이다.
『삼국지연의』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중원 회복의 염원을 품고 후출사표를 던진 제갈량이 오장원 결전을 앞두고 수비에 치중하는 위나라 사마의 진영에 맞대결을 촉구하는 사자를 보냈다. 그 사자에게 사마의가 넌지시 물었다. “공명(제갈량)께서는 요사이 침식이 어떠하시며, 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신가?”
그 사자가 곧이곧대로 이르되, “승상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시고 밤에 늦게 주무시며, 곤장 20대 이상의 형벌은 모두 친히 처결하시며, 잡수시는 음식은 하루에 몇 홉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마의가 그 말을 듣고는 “공명이 먹는 것은 적고 하는 일이 많으니, 이러고서야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느냐?”고 수하 장수들에게 말했다. (『황석영 삼국지』에서 부분 인용)
염경염 감독은 김성근 감독처럼 치밀하고 모든 일을 직접 일일이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자신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염 감독이 현장에 복귀한다면, 삼국시대 ‘제갈량의 고사(古事)’를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입원 뒤에 염 감독에게 안부를 전하자 그가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항상 따뜻한 관심 감사드립니다. 야구가 정말 어렵습니다. 몸 추스르고 뵙겠습니다.”
그의 현장 복귀 의지는 의심할 나위 없이 강하다고 봐야겠다. 염경엽 감독이 순조로운 재활을 거쳐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 건강한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다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