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계약 1만 3,000여대. 지난 2월 기아자동차가 4세대 쏘렌토 사전계약을 시작했을 때, 첫 날에 몰려든 ‘하이브리드’ 계약 물량이다. 물론 바로 이튿날,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환경친화적 자동차’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더 이상 추가 계약을 받지 못했다.
아주 일반적인 의문 하나. 사람들은 어떤 기대감으로 생전 처음 보는 차에 사전 계약 표를 그토록 많이 던졌을까? 4세대 쏘렌토에는 첫날 1만 8,800여 대의 사전계약이 몰렸는데, 그 중 70%가 하이브리드였다.
한바탕 친환경차 혜택 논란의 홍역을 겪고, 사전계약 시점보다 5개월이 지나서야 ‘쏘렌토 하이브리드’를 접할 수 있었다. 1만 3,000명이 보낸 무한 신뢰의 실체를 확인할 때다.
차의 외관 디자인에서는 ‘하이브리트’ 티를 거의 찾을 수 없다. 크롬을 덧댄 흔적도 없고, 배지를 박은 데도 없다. 후면에 가야 간신히 배지 하나가 보인다. 트렁크 우측 하단에 ‘eco/hybrid’라는 문구가 자그맣게 붙었다. 한 때 디젤 모델에도 붙어 있던 ‘eco’ 배지가 이제야 제대로 된 번지를 찾은 듯하다.
하이브리드가 친환경적이고 조용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하이브리드의 미덕이 이게 다는 아니다. 출력도 내연기관 전용차 못지않다.
일단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파워트레인을 보자. 내연기관으로는 최고출력 180PS(마력), 최대토크 27.0kgf·m을 내는 1.6리터 스마트스트림 터보 하이브리드 엔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에 최고출력 44.2kW, 최대토크 264Nm의 구동 모터가 조합된다. 변속기는 자동 6단이다.
두 에너지원이 한꺼번에 가동됐을 때 낼 수 있는 시스템 최고출력은 230PS, 시스템 최대토크는 35.7kgf·m에 이른다.
디젤 모델과 비교해 보자. 디젤은 2.2리터 단일 트림으로 최고출력은 202마력, 최대토크는 45.0kgf·m이다. 최고출력은 하이브리드가 높고, 최대토크는 디젤이 높다. 공기를 압축한 상태에서 연료를 폭발시키는 디젤엔진의 특성상 토크는 아무래도 디젤모델이 유리하다.
그런데 토크 측면에서는 전기차도 강점이 있다. 전기에너지는 구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최대토크를 낼 수 있다. 이런 장단점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최대토크 35.7kgf·m은 꽤나 야생적이다. 디젤의 토크 못지않게 스스로 꿈틀대는 힘이 뻑뻑하다.
여기에 출력을 230마력까지 뽑아낼 수 있는 잠재력은 고속도로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다. 가볍게 촐싹대지 않고, 묵직하게 툭툭 치는 맛이 고속 주행 중에도 느껴진다. 시속 100km 부근을 지날 때는 다운시프트가 강하게 들어가면서 추가 동력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몸으로 전해진다. RPM 게이지의 바늘이 추가동력을 얻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충전(charge)과 친환경(eco) 단계를 넘어 가속(power) 단계까지 바늘이 급속도로 넘어간다. 이 때부터 쏟아져 나오는 출력에는 디젤 엔진이 흉내낼 수 없는 탱탱한 맛이 있다.
계기반의 연료 게이지와 연비를 보는 순간은 뿌듯하다. 카드 결제일이 지나도 월급 통장에 잔고가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을 때 드는 기분과 비슷하다. 67리터가 들어가는 연료통의 수준을 보여주는 게이지의 바늘은 좀처럼 떨어질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공인연비는 15.3km/ℓ(5인승, 17인치 휠, 2WD 기준)를 받았지만 기자가 시승차를 타고 300km를 넘게 달렸을 때 얻은 연비는 18.5 km/ℓ였다. 연료게이지는 1/4도 채 쓰지 못했다.
300km를 달리는데 휘발유 17리터면 충분하다는 산술적인 계산이 나온다. 최근 휘발유가를 리터당 1,400원으로 잡았을 때, 2만 3,800원이면 300km를 달릴 수 있다.
평소 운전 스타일이 점잖은 편이라면 하이브리드+자율주행 모드로 최대치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다.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자율주행 모드는 자신만의 운전 스타일을 즐기는 이들에겐 성가실 정도다. 차선을 유지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혼자서 핸들을 지배하려는 고집이 만만찮다. 차선 유지를 지원하는 일부 기능을 꺼 놓고 달리고 싶을 때가 종종 생긴다.
반대로 조용히 교통 흐름을 따라가는 운전에는 이만한 조합이 없다. 정차 상태에서 앞차가 이동하는 것을 감지하기 때문에 주행 속도만 맞춰 놓으면 차가 알아서 대부분의 일을 다 한다.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차가 주도적으로 조절한다. 사람이 개입해 EV 모드로 달리게 하는 선택이 없다. 이미 니로 하이브리드에서 겪었던 시스템이다. 배터리 잔량과 회생제동, 주행 환경 등을 감안해 충전과 전지에너지 전환을 차량이 총괄 제어한다.
차체 중량을 감안한 이상적인 에너지 효율을 찾다보니 배터리 용량은 쏘렌토 하이브리드가 니로 하이브리드 보다 작아졌다. 니로가 1.56kWh 배터리를 장착한 반면, 쏘렌토는 1.49kWh의 배터리를 실었다. 어떤 용량의 배터리가 최적의 효율을 내는 지에 대한 판단은 대단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결정된다.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사전계약 때만 해도 우리나라 중형 SUV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가 했다. ‘SUV=디젤’이라는 오랜 공식을 깨부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연비 오차로 ‘친환경차’ 인증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소임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커다란 족적을 남긴 것만은 분명하다. 친환경차 인증 이슈만 차치하면 쏘렌토 하이브리드가 디젤 SUV의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는 한치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