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이후로 남편과 단 하루도 떨어져본 적이 없던 여자 감희(김민희 분)는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그동안 만남을 미뤄왔던 절친한 언니들을 만나러 떠난다.(*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감희는 먹을거리를 사들고 서울 인근에 사는 친구 같은 언니 영순(서영화 분)의 단독 주택에 찾아간다. 영순은 영화계 일을 하던 오랜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친동생 같은 영지(이은미 분)와 함께 지내고 있다. 이름에 ‘영’자가 들어가는 두 사람은 왠지 모르게 가치관도 잘 맞는다.
동식물을 대하고 가꾸는 태도, 삶의 방향성에 어긋남이 없어서인지 오순도순 즐겁게 지낸다. 영순은 감희를 만나 술을 마시고, 그간의 연애사를 털어놓으며 마음속에 담아둔 회포를 푼다. 소소한 일상 속 대화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된다.
영순의 집에서 하루를 보낸 감희는 이어 혼자 사는 수영(송선미 분)의 집에 놀러간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하진 않지만 할 이야기가 쌓여있다. 수영 역시 애인과 헤어지고 솔로로 지내는데, 새로운 아지트에서 만난 한 남자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감희에게 털어놓는다.
항상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호응을 보내는 감희는 그런 수영의 삶을 응원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끝으로 감희는 어느 극장에서 왕래가 없었던 친구 우진(김새벽 분)과 우연찮게 마주하게 된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은 그간의 오해를 풀고 결혼 후 서로의 일상을 묻는다.
홍상수 감독의 24번째 장편영화 ‘도망친 여자’는 감희와 친구들의 사소한 일상 대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혼자 살아가는 여자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등장하는 남자들마다 등을 지고 말하는데 홍상수표 ‘찌질한 남자’가 어김없이 드러나 웃음을 안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슈는 모든 인물들이 궁금해하는 감희와 남편의 사랑이다. “5년 동안 같이 살면서 단 하루도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다” “그 사람이 그래. 사랑하는 사람은 같이 붙어있는 게 자연스러운 거래”라는 감희의 말이 반복되며 변함없는 사랑을 과시한다.
자신이 세운 삶의 기준을 믿고, 긍정하는 여성들의 유쾌한 태도와 이집저집 다니며 친구들을 만나는 감희 덕분에 관객들도 함께 찾아가는 듯한 신선한 기운을 전한다.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평단의 이목이 집중됐다. 9월 17일 개봉. 러닝타임 7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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