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재미있어요. 제가 여자라 그럴까요?". '보건교사 안은영'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이 작품 속 디테일을 언급하며 '여성 히어로' 서사에 대한 도전을 밝혔다.
5일 오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극본 정세랑 이경미, 연출 이경미) 이경미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 자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준비됐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 분)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남주혁 분)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명랑 판타지 시리즈 드라마다. 지난달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편이 공개돼 호평받고 있다.
드라마는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드라마로 각색됐다. 이경미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맡은 가운데 정세랑 작가가 대본 집필에 동참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이에 제작진은 원작의 색깔과 드라마의 매력을 살려 시리즈물을 표방하는 작품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번 시즌은 총 6부작으로 제작돼 안은영과 홍인표, 메켄지(유태오 분) 등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낸다.
이경미 감독은 넷플릭스와 '보건교사 안은영'을 통해 처음으로 작업했다. 그는 "이전에 넷플릭스와 다른 작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비밀은 없다' 개봉 이후에 줄곧 넷플릭스를 경험하고 싶어서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역으로 제안을 받았다"며 "넷플릭스와 협업은 무척 즐거웠다. 극장용 상업영화라면 절대로 시도하지 못했을 지점이 굉장히 많았다. 설사 받아들여졌더라도 마케팅을 적게 가져가거나 극장 수가 줄었을 것이다. 그런데 표현하고 싶은 걸 다채롭게 표현하면서도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싶게 채널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유일하고 독보적인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원작 소설을 영화한다는 점에서 부담도 있었을 터. 이경미 감독은 "소설을 읽어봤는데 영상적으로 재미있는 시도를 해볼만한 게 많다고 느꼈다. 이 소설이 에피소드 식의 옴니버스 구성인데 장차 여성 히어로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재료들이 이 소설에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여성 히어로물의 프리퀄 의미로 1시즌을 나아가보면 어떨까 제안했다. 그렇게 접근하니 본인의 운명과 능력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비로소 능력을 받아들이고 소명의식을 생각하게 되는 성장드라마로 생각하게 돼 제안했다"고 작업 비화를 풀어냈다.
그는 "소설의 영상화와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제가 소설을 읽었을 때 재미있다고 느낀 에피소드들을 새로운 이야기 구조 안에 어떻게 녹여낼지 제일 고민했다. 제일 욕심낸 건 소설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 새로운 시선을 즐겁게 봐주길 바랐다"며 "극 중 오리는 책에서 한아름 선생 에피소드를 굉장히 좋아했다. 제가 투입됐을 때는 어떤 에피소드를 시리즈에 넣을지 결정된 상태라 제가 넣을 수 없었다. 그러면 소설을 읽고 PD님을 만나서 처음 한 얘기가 두 가지였다. 소설에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녹이고 싶었고, 한아름 얘기를 쓸 수 없다면 오리만이라도 등장시키고 싶었다. 오리가 아무 이유 없이 학교를 돌아다니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학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경미 감독은 "정세랑 작가가 최대한 많은 걸 할 수 있도록 열어주셨다"며 "그 안에서 디테일한 부분을 의견을 주셨다. 목이 긴 크리쳐를 쓰려고 했는데 왜색이 짙어서 어려울 수 있다거나 하는 의견을 주시기도 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이 작품은 제 상상력 만으로 된 게 아니라 정세랑 작가 덕분에 제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 제가 혼자 했다면 죽을 때까지 이런 이야기를 못 썼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드라마가 완성되고 나니까 머리에서 '그걸 포기하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것들이 맴돈다. 고래가 학교 위에 젤리로 떠다니는데 어느 순간 거대한 옴이 학교에 뜨는 걸 썼는데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옴이 뜰 때 '옴' 이러면서 뜨는 걸 해보고 싶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며 웃기도 했다.
소설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살린 에피소드에 대해 그는 "하나만 꼽기 너무 어렵다. 혜민 에피소드를 책 읽으면서도 좋아했고, 찍으면서도 공을 많이 들였다. 유치원 에피소드가 촬영을 못할 뻔 했다. 제가 '비밀은 없다’를 찍었을 때보다 세배~네배 정도 빨리 찍었어야 했다. 회차 안에 소화하기 버거웠는데 유치원 에피소드가 이야기에서 없어져도 스토리 진행에 전혀 문제가 없는 시퀀스다. 제가 회차를 소화를 못하면 뭘 빼야 하나 늘 고민했는데 항상 1순위였다. 게다가 비가 와서 못 찍는 날도 많아서 없어질 뻔한 에피소드여서 애착이 간다"며 웃었다.
또한 "소설 속 은영이가 조금 더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시리즈 속 은영이는 조금 더 '츤데레' 같다. 제 개인적인 취향도 있고, 이런 사람이 장차 어떻게 변하는지 성장드라마로 가져갈 때 조금 더 성장의 폭을 보여줄 때 이 사람 안에 어떤 모습이 있는지 전개를 보여주는 데에 유용할 거라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목적을 행하는 것은 소설과 같다"고 했다.
극 중 은영이 무찌르는 악당 '젤리'들의 구현도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다. 소재 자체도 신선하거니와 시각적으로 볼거리를 선사한 덕분이다. 이에 이경미 감독은 "젤리들도 주인공으로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은영이 싸워야 할 적수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가진 말랑하고 명랑한 톤을 젤리로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 에피소드마다 은영이 무찔러야 할 장애물로 젤리들이 하나씩 소개되는 구조로 가면 좋을 것 같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젤리 모양을 어떻게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무찔러야 하니 조금 경계심을 가질 존재로 보여져야 하고, 소설에 '젤리’라고 표현돼 귀엽고 말랑한 느낌과 적수의 느낌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도록 고민했다. 어떻게 보면 귀엽지만 기괴하고 징그러운 모양과 색깔로 양극단의 느낌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도록 생각했다. 보시는 분들 중에 젤리들의 모양을 어려워하시는 분들은 젤리들이 제가 의도한 기괴하면서도 불편한 듯한 부분을 캐치하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더불어 레퍼런스로 삼은 생물체에 대해 "문어 젤리는 실제 그렇게 생긴 문어가 있어서 문어를 데려와 눈을 키우고 모양을 참고했다. 지하실에 있는 젤리들을 해산물 젤리라고 불렀다. 심해에 있는 각종 해산물을 모델링해서 이용했다. 실제 자연을 보면서 감탄하는 게 어쩌면 이렇게 조화롭고 아름다운 색깔들로 구성되는지 감탄한다. 인위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이미 완성된 자연의 색깔을 이용하려고 했다. '옴' 같은 경우는 조금 변형했다. 실제 벌레들을 너무 징그러운데 귀여워서 난감한 느낌이 들게 발전 시켰다. 젤리들의 소리 같은 경우도 문어, 고래, 말 소리를 변형시켰다. 두꺼비 젤리도 실제 두꺼비 소리를 변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우들을 고르는 과정도 심사숙고했단다. 이경미 감독은 "주요 인물을 제외한 은영이 못지않게 여러가지 학교의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들은 전부 오디션을 봤다. 경쟁률을 확인해봐야겠지만 지독하게 오디션을 봤다"며 "촬영 사흘 전에 확정된 배우도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그래서 신인을 많이 보여준다. 넷플릭스 특성상 한국에서만 소개되는 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된다. 한국, 동양에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일반 한국 드라마에서 생각보다 보기 힘들었던 얼굴도 보여주고 싶었다. 신인들의 얼굴도 캐리커쳐로 그렸을 때 그리기 쉬울 정도로 개성이 강하길 바랐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타이틀 롤 안은영 역할의 정유미는 촬영 과정에서 캐릭터가 완성됐다. 이경미 감독은 "정유미는 촬영을 하면서 안은영의 얼굴을 만들었다"며 "옥상 철조망에서 인표와 처음으로 충전하는 시퀀스를 먼저 찍었는데 '씩' 웃는 장면이 있었다. 프리 프로덕션 때 정유미가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는데 그 얼굴이 너무 좋아서 충전할 때 그 얼굴을 시리즈 내내 가져가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전작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등의 작품을 비롯해 유독 여성 캐릭터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여자가 재미있다"고 답했다. 이어 "제가 여자이다 보니까 그런걸까. 조금 더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을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여자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워낙 많이 없으니까 '내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밖에도 이경미 감독은 홍인표의 매력을 살린 남주혁의 애드리브가 많았고, 유태오가 메켄지를 위해 직접 '뽀글머리'를 제안한 점, 오경화 배우가 오디션부터 너무 마음에 들어 원작에 없던 캐릭터를 실제 배우 이름으로 살려 추가한 점도 힘주어 말했다.
이경미 감독은 작품의 디테일도 신경 썼다. 그는 "은영이 목티를 주로 입고 나오는 것은 은영이 젤리로부터 공격받는 사람이라 젤리와 싸우는 과정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터틀넥은 자기 상처를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었다"고 말했다. 또 "인표도 자기 상처를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두 사람이 만나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보건교사 가운도 언뜻 보면 그냥 보건 선생님 가운 같지만 젤리와 맞서 싸우기 위해 특수화된 설정이라 비닐로 했다. 젤리로부터 보호도 하고 조명을 받아 광이 나면 힘이 날 것 같았다. 지하실에선 어둠 속 모습이 많아서 반짝거리면 좋겠다 생각했고, 운동화도 늘 싸우고 움직이는 사람이라 생각해 착용했다"고.
이어 "인표는 다리 보조기가 생각보다 잘 드러나는데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이란 설정에 통 넓은 바지를 입도록 했고, 아이들 교복은 함연주 의상 실장이 다 새로 디자인 했다. 저희가 맨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 학교가 비밀이 많고, 언뜻 보면 행복해 보이지만 굉장히 엄격하고 통제된 제도 아래 묶인 아이들이라는 학교가 가진 특성을 보여주려고 아이들 교복을 수도원 수녀복이나 특별한 조직 안에 포함된 사람들이 입는 특수복 같은 레퍼런스를 갖고 왔다. 그걸 변형해서 가슴을 가린 것도 언뜻 보면 예뻐 보이지만 사실 막혀 있어서 답답한 구조로 설정했다. 의상 중에 화수는 언뜻 보면 간호사복 같은데 변형한 것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OST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이경미 감독은 "프리 프로덕션 때 한번은 의상, 분장 메이크업 스태프들과 회의하면서 텔레토비 얘기를 했다.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텔레토비 비결이 뭘지 궁금해서 가만히 몇 시간 동안 텔레토비를 봤다. 가만히 중독성과 눈길을 끄는 색감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음악감독님이 샘플링 한 음악 중에 '나는 보건교사다', '젤리젤리' 같은 게 있었다. 아예 넷플릭스 플랫폼이니까 음악도 키치하게 B무비 정서로 가면 어떨까 생각했다. 일단 신나고 중독성이 있으니까. 제가 텔레토비를 보며 느낀 게 딱 들어맞았다. 그리고 제가 음악 감독님께 처음 말씀 드린 게 '사람 목소리가 많이 이용됐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초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깔리는 음악들은 인간의 목소리가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세계 여러 나라에 한국어로 노래가 들렸으면 좋겠고, 6회에서는 합창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국어도 자막을 넣어서 영어 자막이 깔려도 한국어가 이렇게 생겼다는 걸 볼 수 있게 결정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세심한 연출 덕분일까. '보건교사 안은영'은 공개 직후 호평어린 반응 속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 같은 시청자 반응에 대해 이경미 감독은 "연휴 동안 리서치만 하느라 너무 즐거웠다"며 웃었다. 그는 "영화는 개봉하고 내려가면 싹 사라지니까 제게도 기한이 있다. 그런데 리서치에 매달리면서 이게 끝도없이 이어진다는 생각에 연휴동안 너무 즐거웠다. 이 시리즈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되게 좋았고, 아쉬운 점들은 제 의도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시리즈가 연장 된다면 어떤 부분을 보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영화와 달리 긴 호흡의 드라마가 어려웠다. 제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도 아니고 외국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도 아니었다.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하고 팔로잉을 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 시리즈물로 가져갈 수 있게 열린 결말을 주고,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갈 때 바로 넘어갈 수 있게 에피소드를 전개 시키는 것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제가 드라마를 많이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늘 보시던 분들에게는 이 화법이 낯설 것 같다는 걱정도 했다. 정보를 주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화면 안에 여러 가지 정보를 의미 있게 배치하고 한번 봤을 때 캐치하지 못하더라도 다음에 봤을 때 캐치하는 레이어를 가져가는 게 익숙한 사람이다 보니 낯설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동시에 특별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쉬움 섞인 반응에 대해서도 "인표가 왜 은영이가 이런 사람인 것을 쉽게 믿느냐 하는 질문이 많다. 저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 톤으로 생각했다. 2회에서 인표가 읽은 것과 은영이 본 게 일치한다는 설정 정도로 넣었는데 처음 볼 때는 캐치가 안 되니까 궁금증이 생긴 것 같더라. 그런 부분을 조금 더 씬을 할애하거나, 직접 대화하는 식으로 넣는다면 조금 더 친절하게 전달되진 않았을까 생각하긴 한다. 6회에서는 은영의 대화가 있었는데 제가 편집했다. 그건 실수한 것 같다"며 다음 시즌에서의 보완점을 기대하게 했다.
나아가 이경미 감독은 "시즌2 가능성은 제가 아니라 넷플릭스에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웃은 뒤 "그런데 저는 시즌2를 누가 하던 만들 수 있도록 밑밥을 잘 깔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monamie@osen.co.kr
[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