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좋은 감독 만나면 웰메이드 나오겠지란 생각 경계해"[인터뷰 종합]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0.10.13 17: 50

 배우 유아인(35)은 항상 심지가 굳다. 혹자는 그에게 ‘허세’ ‘예술병’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하지만, 가만히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순진무구하고 고민의 흔적이 깊다. 작품 활동을 통해 그동안 쌓아온 신념과 가치관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 있다고 할까. 들여다 보면 유아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솔함을 알고 있다.
감히 확신하건대 그가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에서 보여준 태인이라는 캐릭터는 전작 ‘#살아있다’(감독 조일형)에서 보여준 이상의 기회가 될 것이다. 유아인이 관객들의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하게 만들 만큼 깜짝 놀라게 할 표정과 행동을 보여준다.
유아인은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홍의정 감독의 의지 자체가 안팎으로 전해지면서 새로운 영화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저만의 과잉해석일지라도 그 안에서 무언가 새로움을 찾고 싶었다. 물론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이 가득했다”라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유아인 주연의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 제공배급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작 루이스픽쳐스・BROEDMACHINE・브로콜리픽쳐스)는 유괴된 아이를 의도치 않게 맡게 된 두 남자가 그 소녀(문승아 분)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범죄 스릴러 드라마. 유아인은 말 못 하는 남자 태인을 연기했다. 
대사가 없던 유아인은 “실험적이고 불안할 수 있지만 한 번 해보자 싶었다. 현장에선 감독님이 레퍼런스로 고릴라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셨다”고 캐릭터를 함께 그려나간 과정을 회상했다.
“자신만의 주장이 강인한 배우”라는 많은 사람들의 평가와 달리, 그는 의외의 순한 매력을 갖춘 사람이다.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도 봤던 심드렁하고 의욕 없는 순간을 ‘소리도 없이’에서 만날 수 있다.
유아인은 말 못 하는, 혹은 안 하는 태인 캐릭터에 대해 “지루하던 참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 나를 다 집어 던져서 ‘날 네게 줄 거야’, '모든 걸 던질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다. 근데 홍의정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면서 반가웠고 저 스스로도 나름의 의미 부여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여러 가지 여건 속에서 홍의정 감독님이 자신이 나갈 방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응원을 많이 줘야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매질을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더 좋은 마음을 가져 가셨으면 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시간을 더 좋게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러나 유아인은 “(사실 영화의 완성본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도발, 패기가 느껴지는 기획이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관객들에게 제대로 도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이 부족할 수 있지만 영화적 성취, 더 큰 나아감을 기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동참하고 싶었다. 저는 '좋은 감독 만나면 웰메이드 나오겠지'란 생각을 경계한다. 출연을 결정한 또 다른 이유는 홍의정 감독님을 일단 내가 선점하기 위해서였다.(웃음)”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소리도 없이’는 홍 감독의 첫 번째 상업 장편작이다.
캐릭터를 위해 15kg이나 찌운 그는 “여러 작품을 하면서 체형을 불리거나 줄인 적은 있지만 극단적으로 변신한 건 처음이다. 극단적인 변화가 제 자신에게 필요했었다”며 “영화는 시각적인 놀이니까 변신을 해야했다. 영화에 나온 것보다 감독님은 더 살을 찌우기를 바라셨다. 살 찌우는 게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았다”고 했다.
체중 증량에 대해 그는 “쉴 때는 보통 4~5끼씩 먹으며 찌울 수 있는데 촬영할 땐 예민해지고 식사 시간을 못 지킬 때도 있으니 힘들더라. 치킨과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으며 제딴에는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다”면서 “근데 많은 분들이 ‘유아인의 변신이 너무 당연하다’는 것처럼 받아들이셔서 ‘이건 또 내가 어떻게 감당해야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 작품에선 진짜 평범한 표준형 인간을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유아인이 그린 태인은 억척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어린 여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낸다. 말로 표현하진 않아도 행동을 통해 그의 착한 심성이 느껴진다.
거친 삶이 얼마나 고된지, 버티는 과정에서 태인이 어떻게 무뎌졌는지, 유아인은 태인의 전사들까지 모두 엮어 말 못하는 남자 태인이라는 인물을 완성했다. 이날 그는 “그 어떤 것도 단편적일 수밖에 없는데 배우가 그런 걸 감당해야한다는 게 삶에 딜레마가 있지만 한 작품씩 나아가면서, 어떤 하나가 내 대표작이 되는 게 아니라, 입체적인 인물이 만들어지는 거라는 생각이다. 아직 노출되지 않은 퍼즐 조각을 가져가면서, 내 길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가고 싶은 의지가 있다”는 생각을 덧붙였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잇따라 호평받으며 신뢰도를 쌓아온 유아인은 현재 넷플릭스 ‘지옥’(감독 연상호)을 촬영 중이다.
“‘소리도 없이’를 하면서 잃은 게 있다면 대사 암기력이다. (웃음) 대사가 없어서 편했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캐릭터는 종교에 관련된 인물이라 말이 많다. 진짜로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웃음) 교주 같은 캐릭터니 오죽이나 말이 많겠나.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표현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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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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