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오늘, 연예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2018년 오늘, 한국영화계의 큰 별이 져 많은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배우 신성일이 향년 81세의 나이로 눈을 감은 것이다.
♦︎ 2018년 11월 4일
고(故) 신성일이 이날 폐암 투병 중 생을 마감했다. 향년 81세.
고 신성일은 전날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끝내 이날 새벽 타계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고인은 지난 2017년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후 치료에 전념했던 바다. 그러면서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걷는 등 사망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근황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TV조선 ‘인생다큐-마이웨이’에서도 신성일은 김수미를 포함한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 등장하며 건강이 호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 지 3일 만에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이 이어졌다. 고인의 장지는 경북 영천이다.
신성일은 1937년생으로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후 ‘맨발의 청춘’, ‘동백 아가씨’, ‘5인의 건달’, ‘춘향’, ‘눈물 젖은 부산항’, ‘별들의 고향’ 등 1960~80년대 수많은 청춘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국민스타가 됐다. 1964년 엄앵란과 결혼한 후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그런가하면 다음해 1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300회 특집 기자시사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자를 묻는 질문에 오상광 CP는 고 신성일을 언급해 시선을 모으기도.
그는 "고 신성일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촬영 전에는 조금 비호감이었다. 지난해 3월에 살아계실 때 나갔고, 11월에 추모 형식으로 나갔다. 그 방송 안에도 비호감적인 요소들이 담겨 있었는데, 그냥 진실된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카메라 앞에서도 자기를 꾸미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철없는 할아버지 같고, 멋진 남자 같기도 했다. 그런 자유인 같은 모습들이 잘 표현돼서 나중에 호감으로 바뀌었다. 그게 마음에 남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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