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안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11일 오후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First In, Last Out(첫 번째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나온다)’ 특집으로 소방관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가장 먼저 재난 상황을 컨트롤하는 119 종합상황실 조진영 소방장이 등장했다. 조진영 소방장은 "상황실 근무는 4년, 소방관 생활은 10년째"라며 "하루 평균 신고 건수는 1,800건에서 2,000건 정도"라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는 종합상황실 근무에 대해 "인명대피 안내를 하고, 구조상황이 있는지 파악, 카메라로 현장을 보고 화재 규모를 알려주고 현장에 필요한 장비 및 인원 편성한다"고 설명했다. 장난 전화도 많이 있다며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시는 분도 있다. 허위 신고 과태료 200만원 조항이 있지만, 진짜 긴급한 곳에 출동을 못할 수도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재난 상황이 있었을 때도 있었냐고 묻자 그는 "충남에서는 작년에 호텔에서 화재가 난 적이 있다. 동일 신고가 100건 들어온 적이 있다 그런 사고가 생기면 상황실이 아비규환이 된다"고 답했다.
다음으로는 21년차 베테랑 구급대원 신미애 소방위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하루에 일곱 건에서 열 건, 주말엔 열다선 건까지 출동한다고 밝힌 그는 구급대원이 된 이유를 묻자 "95년도 전후로해서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무너지다보니까 구조나 응급처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시기에 응급구조과가 여러 군데 신설됐는데 제가 1기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최근 코로나19로 더욱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구급대원들은 "코로나 때문에 저희가 출동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제발 현장 갔을 때 열나지 마라. 요즘 병원에서는 37.5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열이 높으면 받아주는 병원을 찾느라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기도 한다"고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2001년도에 홍제동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저희 서 관할이었고 저는 비번날이라 쉬고 있었는데 새벽에 복귀하라고 연락이 왔다. 택시 타고 가고 있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하더라. 사무실 도착하니까 분위가 너무 쎄한 거다. 결국 그때 출동하신 6분이 다 돌아가셨다. 그때 너무 충격을 많이 받았다. 그분들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는 "붕괴현장에 저희가 내려갈 때도 있다. 밑에 심정지 환자가 있다는 생각만 하지 내가 내려갈 때 위험하다는 생각은 잘 안된다. 대부분의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가면 그 환자만 보게 된다"며 "제 손으로 심정지 환자를 살렸을 때. 그 뜨거운 감정을 더 느끼고 싶어서 현장을 못 떠날 것 같다"고 의연하게 답했다.
세 번째 자기님으로는 등산객을 구조하는 북한산 산악구조대 김진선이 출연했다. 15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 내리는 그는 "북악산 백운대를 보통 사람은 2시간이 걸리는데 저희는 현장까지 40분이 걸린다. 경사가 진 곳인데 저희는 쉬면 안된다. 빠른 걸음으로 계속 올라간다. 출동이 아니어도 매일 한 번씩 산에 간다. 훈련도 하고 운동도 하고 순찰도 한다. 저희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힘들지 않냐는 말에 "하다보니까 익숙해진 것 같다. 100kg 되시는 분을 두 명이서 들것에 들고 내려온 적도 있다. 힘든데 하게 되더라"며 "신고 건수는 봄 가을 제일 많다.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사람이 너무 많다. 저희가 출동하면 대부분 실족이다. 정상에서 사진 찍어줄게 하다가 추락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전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을 이야기하던 도중 그는 "벌에 사람들이 많이 쏘이는데 한 분이 벌에 쏘여 호흡곤란이 왔다고 하더라. 구급대원도 같이 가고 소방에서 처치할 수 있는 처치를 다해드렸다. 그런데 2~3주후에 벌에 쏘였던 사람인데 내 비싼 등산스틱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는 일화를 공개했고 이에 유재석은 크게 분노했다.
김진선 산악구조대는 마지막으로 "SNS에 저희 소방관들이 컵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왜 계속 나오는지 모르겠다. 저는 싫다 저희 불쌍하게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저희 예산 생각보다 많이 있다 장비도 있고. 그냥 알아만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다음으로는 속초소방서 박치우 산불 진압 구조대원이 최악의 화마로 손꼽히는 2019년 강원도 산불 당시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주간 근무가 끝나고 퇴근한 상황이었다. 저녁 먹으려던 참에 비상 소집 명령이 와서 바로 소방서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속초 톨게이트 가는 길 마저 바람이 너무 불었다. 가는 길 내내 도로 옆도 계속 타고 있었다. 방화복이 되게 두툼한데 뜨거운 열기가 전신으로 느껴진다. 터널을 통과하자 마자 온통 시뻘건 광경이 펼쳐져 있더라. 불지옥이 있다면 그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어떻게든 옮겨붙지 않도록 방어해야 했다. 대원들 모두가 방어에 필사적이었다"며 "전국에서 지원이 올거다 무전으로만 들었는데 나중에 그 행렬들을 뉴스로 접하고 정말 든든했다. 빨리 진압할 수 있겠구나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 일 이후에도 마음가짐에 변함은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사람을 더 많이 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저희가 입고 있는 이 옷의 무게 같기도 하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소방관으로는 "쓸쓸한 슈퍼맨인 것 같다. 현장에서는 모든 분들이 슈퍼맨이 되시지만 어떤 현장이든간에 돌아가신 분들을 안 볼 수 없다. 그런 걸 보면 쓸쓸한 슈퍼맨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진입한 화재 진압대 김명배 소방위가 등장했다. 29년 차 소방관인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날 아침 비번이라 오전에 퇴근해서 동료들과 테니스 치러 갔을 때였다. 비상 연락 문자를 받자마자 개인장비 챙겨서 현장으로 갔다. 동성로 일대는 연기가 온 시내를 다 덮고 동네는 아수라장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 도착하자마자 현장에서는 누구라도 먼저 들어가야 하니까 제가 들어가겠다 해서 대원 한 명과 같이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게 깜깜했다. 시신위에 넘어져 탈출을 못해서 계단 양쪽에 시신이 누워있었다. 마지막과 첫 열차에 집중적으로 시신이 많이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그 때 당일만 현장에 10여 회 들락날락 했다. 지하 1층만 가도 잘 못찾는데 지하 3층이니까 말도 못했다. 엔진에 불이 붙어있었고 차량에 진입해서 불을 끄고 외관으로 봤을 때 괜찮은 분들을 밖으로 옮겼다. 아마 모두 사망한 것으로 알고있다. 참혹하다고 판단도 못할 정도로 참혹했다"고 설명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이후 지하철을 안 탄다는 그는 "그 때 상황이 계속 생각나서 못 타겠더라"고 전했다. 아무리 많은 경험에도 화재 현장은 무서울 것 같다는 말에 그는 "당연히 무섭다. 하지만 불을 이기는 것은 딱 한 가지 있다. 동료하고 수관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의연하게 답했다. /mk3244@osen.co.kr
[사진]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