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이 주는 위로는 강했다. 묵직한 김혜수의 연기가, 이정은의 섬세한 눈빛이 관객들을 온기 있게 감싼다. 이들에게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값진 시간으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남편과의 이혼 소송과 업무 중 당한 사고로 절망에 빠진 현수(김혜수 분)는 그럼에도 공백을 깨고 형사로 복직하려고 한다. 복직을 앞두고 여고생 세진(노정의 분)의 실종 사건을 잘 마무리 짓기로 한다. 세진은 아버지가 얽힌 사건의 중요한 증인으로 보호라는 명목 하에 외딴 섬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태풍이 몰아치던 밤 유서 한 장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현수는 세진의 흔적을 쫓다가 순천댁(이정은 분)을 만나게 되고, 낯선 이들에게서 위로를 얻는다.
현수는 믿고 있던 남편의 배신과 업무 중 발생한 사고로 절망에 빠진 인물이다.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힘겹게 복직을 하려고 나서는 현수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런 현수는 복직을 위해 행적을 쫓던 세진이 자신과 묘하게 닮아 있음을 느끼고, 외딴 섬에서 세진이 홀로 느꼈을 외로움과 고통에 공감한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뜻밖의 위로를 얻는다. 현수는 자신과 닮아 있는 세진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그리고 홀로 외로웠던 세진을 붙잡고 위로해줬던 순천댁을 만나면서 말 없는 온기를 얻었고 위로받았다. 관객들 역시 현수의 감정에 이입하게 되면서 이들이 서로에게 전하는 온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라’라는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지금 꼭 듣고 싶은, 그래서 더 필요한 위로를 건넨다.
박지완 감독은 각기 다른 사연으로 절망에 있던 현수와 순천댁, 세진이 서로 건네는 위로를 담담하게 담아냈다. 오버하는 감정 없이 자연스럽고 군더더기 없이 담아낸 이들의 감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깊이 있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담담한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었다. 절망감에 빠진 형사 현수 역을 맡은 김혜수는 묵직한 열연으로 영화를 이끌었다. 무언가 빠져 있는 듯한 공허한 눈빛부터 점점 더 깊어지는 표정, 그리고 마지막 얼굴까지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냈다. 김혜수는 복잡하고 변화하는 현수의 내면을 심도 있게 그려내며 흡입력 있는 열연을 펼쳤다.
무언의 목격자 순천댁을 연기한 이정은 역시 감탄이 나올만 하다. 목소리로 대사를 소화할 수 없는 만큼 눈빛과 몸짓, 손짓으로 순천댁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현실감 있는 연기로, 세심한 표정으로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그리고 김혜수와 이정은 배우의 시너지는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내가 죽던 날’은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의 진실을 추적하는 수사극 형식을 빌렸지만, 그보다 드라마가 가진 힘이 강한 작품이다. 그 강한 힘으로 관객들에게도 현수가 받았던 위로와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준다. 다른 누군가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따뜻함이 남는 위로의 시간이다.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seon@osen.co.kr
[사진]영화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