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걸음마 뗐죠. (중략). '진실한 배우'이고 싶어요". 배우 하준이 '잔칫날'로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극장가에 '힐링'과 '위로'를 건넨다.
하준은 30일 오전 영화 '잔칫날'(감독 김록경, 제공제작 스토리텔러 픽처스, 배급 트리플픽처스)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온라인을 통해 국내 취재진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잔칫날'은 무명 MC 경만(하준 분)이 아버지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슬픈 날 아이러니하게도 잔칫집을 찾아 웃어야 하는 3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장르의 영화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가가 침체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시사회에서 호평을 받은 가운데 12월 2일 개봉을 앞두고 있어 영화계 이목을 끌고 있다.
"이야기가 가볍지 않다"고 운을 뗀 하준은 작품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대부분의 분들이 한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라 진실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캐릭터의 많은 부분이 감독님과 닮은 것 같아 집중해서 봤다. 최대한 나를 내려놓고 꾸며진 게 아니라 진실성이 최우선이라 생각하며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어 "저예산 영화인 만큼 개봉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것 같다. 예산이 많은 영화들에 비해 저예산 영화들의 개봉 기회가 흔치 않다. 그 와중에 개봉할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결코 가볍지 않고 메시지가 분명한 이 작품에 하준은 오디션으로 지원했다. 그는 "제가 선택했다기 보다는 저도 선택을 받았다"며 "그럼에도 대본 완본을 받았을 때 제일 끌린 이야기는 배우들은 누구나 감정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연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거다. 그런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도 않는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설렘과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이걸 가짜로 하지 않고 진짜로 표현해야 하는데, 잘하고 싶었다. 내 안에 있는 걸 다 토해내고 싶은 마음이 같이 있었다. 어떻게든 잘 버티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아까 말씀드린 것의 반복인데 저예산 영화다 보니 하루하루가 산 넘어 산이었다. 우리 스태프, 동생들 모두 다같이 으쌰으쌰해서 다같이 잘 버티는 마음이었다. 내가 어쨌거나 타이틀 롤로 끌고 가야 하는 게 있으니 중심을 잡아서 힘을 주고 잘 버티자는 다짐을 했다. 그 외에는 진실성에 대한 걸 절대 놓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는 "삼천포에서 로케이션을 했다. 저는 처음 가봤다. 장소 자체가 저에게 주는 '힐링’이 있었다. 촬영이 끝나면 저희 숙소 앞에 바닷가가 있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영화관도 있더라. 그래서 많이 걸어 다니고, 해 지는 모습도 보고 추스르고 스스로 다스렸다. 스스로한테 질문도 많이 하고 많이 다독였다. 삼천포라는 공간 자체가 저한테 위로를 줘서 힘들거나 괴롭진 않았다"고도 했다.
힘든 장면도 있었다. 염을 하는 장면을 실제 장소에서 촬영했다는 것. 하준은 "장소가 주는 압박이 있었다. 시간 제약이 있어서 제한된 시간에서 내가 표현해야 하는 감정이 정해져 있어 부담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또 "잔치 장면이 통제할 수 있는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제가 쉴 때 틈틈이 실제로 어르신들 앞에서 사회를 봐드렸다"고 했다.
이처럼 몰입한 덕분일까. 하준은 이번 작품을 통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살면서 상을 많이 안 받아봤다. 군 부대 있을 때 신병 때 상 받은 것 말고는 받아본 적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며 "아직도 상이라고 하면 얼떨떨하고 사실 좀 멋쩍다. 더 잘해야겠구나 하는 부담감도 있다. 연기하면서 표면적인 상을 받는 것도 좋지만 개봉을 앞두고 많은 분들의 반응이나 이야기를 듣는 게 제일 큰 상이라고 느낀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호평과 기대 어린 반응과 달리 '잔칫날'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시사회 당일 기자간담회가 갑작스럽게 취소된 것. 하준과 함께 경만의 동생 경미 역으로 호흡한 배우 소주연이 타 현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1차 접촉자가 될 가능성이 생기며 만약을 대비해 기자간담회를 취소하기로 한 것이었다. 다행히 소주연은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아 일단락 됐다.
하준은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고백하며 "속상한 마음도 분명히 있다"고 털어놨다. 다만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며 "이건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냥 속상한 마음인 거다. 그렇다고 '이건 누구 탓’이라는 마음은 전혀 없다. 속상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라고 했다.
이어 "영화를 홍보할 기회는 줄었지만 스태프 분들께 말씀드린 건데 영화를 보신 분들께서 우리 영화에 담은 진심을 알아주시면 그 또한 파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 바람이 이뤄진 듯 많은 분들이 좋은 말들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욕심은 갈수록 쌓이지만 작은 거 하나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이 와중에 개봉을 할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로 송구스럽고 감사하다"고 했다.
소주연과 하준의 관계 또한 티격태격하는 '현실 남매' 같았단다. 실제 하준이 여동생을 둔 오빠이기도 한 터. 하준은 "잔소리 많은 오빠"라며 웃었다. 그는 "저보다 동생이 17살 어리다. 잔소리도 많이 하고 '엄마 네 친구 아니다. 엄마도 여자다. 엄마한테 막 대하지 마라’라거나 그 외에는 간간히 용돈 준다. 요즘에 조금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제 코가 석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해주고 있다. 그냥 든든한 오빠이고 싶다. 평상시에 '네가 어떻게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든든하게 뒤에 오빠가 있을 테니까 착하고 진실하고 당당하게 살라’고 한다. 그런데 당사자가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준은 경만과 얼마나 닮았을까. "저는 경만보다는 마음이 여린 편이라 도중에 울면서 경미한테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웃은 그는 "깨닫거나 느낀 부분은 마지막에 경만이 경미한테 하는 대사인데 '누구나 후회는 하겠지. 그런데 이왕이면 후회를 덜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족에게 애정표현을 많이 한다. 통화 중에도 엄마, 아빠, 동생과 통화할 때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낯 간지러울 수도 있는데 말을 뱉어버릇 해야 자연스럽다. 순간 자체에 그 사람이 소중하다는 걸 우리는 망각한다. 표현은 할 수 있을 때 많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찍고 나서도 '더 표현을 자주 해야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준은 실제 자신의 성격과 관련해 "누구나 그럴 거다. 입신양명을 해서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거다. 아직 가족들은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가족들이 제 작품을 보고 좋아해주는 게 제일 행복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특히나 이 영화는 어머니, 아버지, 가족들한테 조금 더 진실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했다. 경만만큼 저도 가족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게 비슷한 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그는 극 중 경만처럼 힘든 걸 참고 버틴 순간에 대해 "늘 있다. 촬영이 쉬웠던 적은 없었다"고 말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다만 그는 "그런데 저는 배우기를 그렇게 배웠다. '감정 씬이 있어가 예민해야 하는 씬을 찍을 때 제 부담감이나 예민함으로 인해서 현장에 있는 주변 스태프한테 피해를 주지 말라’고 배웠다. 왜냐하면 그걸 표현해야 하는 건 주변의 숙제이지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보게 하지 말라고 강하게 배웠다"고 했다.
그는 "그럴 때 외로워진다. 힘든 건 힘든 건데 내가 힘든 걸 주위도 힘들게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끝나고 돌아갈 때 느낀다. 사실 배우의 삶 자체가 '배우는 이래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사회생활 하는 모든 분들이 힘든 걸 밖으로 표현하는 게 많지 않지 않나. 꼭 배우라서 그렇다기 보다 우리네 사회생활이 다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저는 직업이 배우라 그걸 조금 더 확장해서 표현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저는 제가 살면서 말못할 고충이나 속앓이 하는 부분들이 생길 때에도 그게 너무 힘들지만 그게 내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하면 그게 어떤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처럼 진지한 성찰이 모여 하준은 최근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 이후 '배드파파', '미씽' 등 다양한 드라마로 시청자도 만나고 있는 터다. '잔칫날'과 함께 '범죄도시2' 촬영을 마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의 성장에 대해 "이제 걸음마를 뗀 것 같다"고 자평했다.
더불어 "다만 성장했다면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다. 현장에서나 사람들을 만날 때나 제가 시야가 넓어져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컨디션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 예전보다는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건방진 말일 수도 있다. 이제 걸음마를 뗀 것 같다"며 웃었다.
'잔칫날'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은 칭찬과 반응에 대해서도 그는 "너무 황송한 칭찬을 받았다"며 "정말 아이같은 마음으로 좋았던 게 호아킨 피닉스 같다고 해주셔서 정말 좋았다. 비교할 수 없는 대상과 견주어 칭찬해 주셔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 시국에 '잔칫날’을 꼭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어떤 위로를 드릴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마냥 위로가 아니라 재미있게 위로를 드릴 수 있다. 영화가 사실 재미있다. 영화 시작부터 이건 많은 분들께 위로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영화다. 시국이 힘들기 때문에 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못해준 미안함을 가진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다. 또 그런 경험이 없더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연말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번 돌이키면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전화 한 통 할 수 있는 영화다. 엄마나, 아빠한테 전화해서 고향에 있는 부모님한테 '그냥 전화했다. 목소리 듣고 싶어서’라고 하다가 전화 끊기 전에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영화"라고 힘주어 말했다.
무엇보다 하준은 이번 작품으로 받고 싶은 평가에 대해 "진실한 배우"라고 밝혔다. 그는 "'저 배우가 나에게 위로를 줬어’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게 제일 큰 상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늘 쉽지 않다. 어떤 감정의 깊이 상태를 만들려면 준비 상태에서 힘든 게 있다. 가끔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운이 좋아서 관객들과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관객 분들이 내 다짐을 알아주실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진실하고 좋은 배우', '갓 걸음마 뗀 예쁜 아이'? 그런 말을 듣고 싶다"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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