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규리가 '카이로스'의 종영을 앞둔 소회를 전했다.
남규리는 최근 서면으로 진행한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연출 박승우, 극본 이수현) 종영 기념 인터뷰에서 "아직 종영이 실감 나지 않는다. 며칠 후에 촬영장으로 불려 나갈 것만 같다. 끝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섭섭할 것 같다. 그냥 또 하나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보고 싶을 때 꺼내어 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카이로스'는 유괴된 어린 딸을 되찾아야 하는 미래의 남자 서진(신성록)과 잃어버린 엄마를 구해야 하는 과거의 여자 애리(이세영)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가로질러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타임 크로싱 스릴러로, 오늘(22일) 16부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극 중 남규리는 추악하고 어두운 과거를 숨기고 거짓으로 치장한 삶을 살아가는 바이올리니스트 강현채 역을 맡았다. 강현채는 김서진(신성록)의 자랑스러운 아내이자 김다빈(심혜연)의 다정한 엄마로, 결점 하나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그러나 스피디한 전개 속 드러난 남규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소시오패스였다.
남규리는 '카이로스'를 통해 아이를 잃은 엄마, 바이올리니스트, 소시오패스까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에 도전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남규리에게 '카이로스'는 제목처럼 기회의 신처럼 다가왔다.
"선택이 아니라 도전이었어요. ‘내가 배우로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인물에 다양성을 담을 수 있는 강현채라는 캐릭터에 매료됐어요. 드라마에서 처음 등장하는 여성 소시오패스 캐릭터라 신선했어요. 여성이 주체적인 캐릭터였거든요. 그리고 악역에 대한 묘한 갈망이 있었어요. ‘타임크로싱’이란 소재도 심장에 쿵 하고 박히는 것 같았어요. 제목부터 기회의 신 ‘카이로스’라는 단어가 제 배우 인생에 기회의 신이 있다면 함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어요."
남규리는 소시오패스인 강현채를 이해하기 위해 캐릭터의 서사를 만들고,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스스로 현채라는 캐릭터를 합리화시키고 설득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현채는 사랑 없이 자란 인물이에요. 그래서 사랑도 모르고, 나쁜 게 나쁜 건 줄도 모르는. 현채가 되기 위해 현채의 서사를 만들었어요. 저렇게까지 살게 된 이유, 불쌍한 여자, 삶을 대하는 방법도 무엇이 맞고, 진심인 건지도 모르는 여자예요. 또한 제 자신을 누구보다 믿었어야 했어요. 자존감이 높아야 두려움 없이 강현채로 살 수 있겠다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목적이 뚜렷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너무나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며 가끔은 일상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접했어요. '저의 다양한 면을 꺼내서 하고 싶은 연기의 70%만 하자'라고 생각했죠. 너무나 정상적일 것 같은 여자가 악행을 저지르니까 정말 나쁜 악역으로 다가간 것 같아요."
하지만 소시오패스 캐릭터를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역할에 깊게 몰입한 뒤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든 일이었다.
"현채의 광기에 어느 날은 쾌감을 느끼고, 어느 날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런 날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현채 역에 너무 빠져있어서 남규리로 돌아오는 게 힘들었어요. 결국 응급실을 세 번이나 다녀왔고, 몸무게도 너무 많이 빠졌어요.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어요. 그래도 제겐 너무 소중하고, 값진 작업이었어요. 공들이지 않은 감정선이 없었어요."
강현채는 서사가 있기에 매력적인 빌런이었다. 선악으로만 나누자면 한없이 악에 가까운 인물. 그럼에도 남규리는 강현채를 통해 배운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저에겐 강현채 같은 자존감은 좀 색달랐어요. 저는 저를 많이 채찍질하고 자책하는 편인데, 보이지 않게 긴장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아요. 강현채를 연기하면서 소시오패스적인 면모보단 여성의 주체적인 단단함에 매력을 느꼈어요. 제가 만난 강현채는 제 안의 세상에서 스토리가 많은 캐릭터예요. 현채의 모든 것에 개연성을 만들었어요. 현채를 연기하며 다채로움을 배운 것 같아요."
남규리는 그간 울고 웃으며 함께해온 강현채를 떠나보내면서, 그를 향해 애정 어린 격려를 건네기도 했다.
“처음부터 네가 선택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해. 어디서든 진짜 사랑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진심을 이길 수 있는 건 없어. 네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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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남규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