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4885 너지?" 스릴러의 거장 나홍진 감독은 2008년 2월 14일 '추격자'로 장편 상업영화 데뷔를 했다. 김윤석이 쫓고 하정우가 쫓기는 그 장면, 역대 최고의 추격신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무명의 나홍진은 첫 등장부터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금 스릴러 영화가 넘기 힘들었던 500만 관객 고지를 밟았다. 이후 '황해' '곡성'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연쇄살인마를 소재로 한 '추격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숨을 쥐어짜는 잔혹극이다. 한 겨울 엄동설한에 피 튀기는 스릴러 공포물을 보는 재미가 얼마나 짜릿했던지 한국 관객들에게 알렸다. 그해 1월말 용산 CGV 언론 시사회에서 '추격자'를 관람했던 기자는 (나홍진의 연출과 극본에)감동으로 머리가 띵하고 강추위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가운데 '추격자'의 스릴러 냉기에 가슴 속까지 얼어버린 기억이 아직까지 새롭다.
옆에서 영화를 함께 봤던 한 중견 감독은 긴 한숨만 내쉬었다. 그는 극장 밖 흡연공간으로 나가 담배를 얻어 피웠다. 금연한지 2년째였다. “저 친구, 신인 감독 맞습니까? 저렇게 잘 찍은 후배들이 나오는걸 보니 은퇴해야겠어요.” 짙은 한숨과 함께 역설적으로 최고의 찬사를 던지는 그의 표정에는 놀람과 기쁨, 그리고 비애가 교차해 지나갔었다.
시사회 후 제작사에 나 감독의 인터뷰부터 1번으로 청했다. 무명이고 신인이라 기회는 빨리 돌아왔다. 영화 분위기 그대로, 말수 적고 낯 가리던 나 감독과의 첫 만남도 꽤나 음산했다. 빛도 안들어오는 지하 월셋방에서 몇 달을 두문불출하며 '추격자' 시나리오를 썼더란다.
이 자리에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취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배급사 시사 후 엔딩 신의 갑작스런 교체였다. 신인 나 감독의 상상을 뛰어넘는 호러 액션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참고 또 참던 제작자와 배급사가 뒤로 자빠지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 영화판에서 닳고 닳은 이들조차 극장 개봉판 ‘추격자’와 전혀 다른, 나홍진만의 리얼한 잔혹 세상이 마음껏 펼쳐진 피바다에는 몸서리를 쳤다고 했다. 영화 내내 연쇄살인마 싸이코 패스에게 농락당하는 서영희는 죽어서조차 성하지 못했다. 김윤석과의 한판 승부, 엔딩 신 내내 촬영장을 굴러다닌 건 서영희의 사지 육신이고 김윤석과 하정우, 최후의 대결의 무기 또한 그녀의 신체 부위였다고 한다.
결국 이 엔딩은 나 감독의 항의와 상관없이 가위질을 당했고 개봉판 엔딩으로 바뀌어 상영됐다./mcgwir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