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x김태리x진선규x유해진 '승리호', 부성애 코드 없었으면 어땠을까[김보라의 뒷담화]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1.02.07 18: 33

 넷플릭스를 통해 이달 5일 공개된 조성희 감독의 신작 ‘승리호’는 과학적 엄밀함보다 캐릭터와 이야기에 더 신경을 쓴 스페이스 오페라다. 대표적인 할리우드 인기영화로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 ‘스타트렉’ 시리즈 등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승리호’가 우주 SF를 실현했다. 수요가 확실한 팝콘무비인데 코로나 여파로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따름.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제작 영화사비단길)는 우주 공간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은 것은 물론 곳곳을 빠르게 누비고 다니는 ‘본격 우주 SF'다. 때는 2092년 환경오염으로 토양이 산성화되고, 지구에서는 더이상 동식물들이 살 수 없다. 이에 우주개발기업 UTS는 병든 지구를 떠나 위성궤도에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든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UTS는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떠올랐지만 특권을 가진, 인류의 단 5%만이 거주할 수 있다. 나머지 95%는 산소 호흡기를 쓰고 황폐화된 하늘 아래 삶을 연명한다. 각자의 이유로 지구를 떠났지만 출신이 다른 승리호 멤버들은 위성 궤도 부근에 떠다니는 쓰레기를 치우고, 그에 따른 값을 벌며 근근이 살아간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승리호를 굴릴 때마다 빚만 늘어 오늘도 채우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리는 중. 

영화 스틸사진

영화 스틸사진
한편 UTS 창시자 제임스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은 UTS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신격화된 인물. 그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완벽하게 ‘빌런’인 설리반 회장은 지구를 망가뜨리고, 선택된 사람들과 화성에서 새로운 터전을 일구고자 한다. 돈만 좇던 승리호 멤버들은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박예린 분)와 위험에 빠진 지구를 동시에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친다. 
설리반은 승리호의 반대편에서 거짓과 폭력을 상징하는 악의 축으로 그려졌다. 그의 본질은, 그를 자꾸 귀찮게 하는 기자의 재등장이 지나고 나면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설리반 회장은 ‘빌런의 공식’을 따르며 극적 재미를 안긴다. 그간 나온 할리우드식 액션 SF 장르의 예상 가능한 이야기의 흐름으로 안정성을 챙긴 것이다. 
1000여 명의 VFX 전문가들이 참여한 ‘승리호’는 지금껏 국내에서 본 적 없는 화려한 우주 비주얼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게 담았다. 우주를 배경으로, 성공적으로 마친 국내 첫 우주 활극이지만 일부 시청자들이 신파라고 거론한 이유는 김태호(송중기 분)의 부성애를 중심으로 흘러가서다. 태호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당연히 장 선장(김태리 분), 타이거 박(진선규 분), 업동이(유해진 분)에 비해 캐릭터가 돋보이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태호의 선형적 서사 구조로 흘러가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영화 스틸사진
태호는 자신의 부주의로 딸 순이(오지율 분)를 잃어버린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캐릭터. 곧 궤도 밖으로 떨어질 순이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 보는 이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또한 딸을 만나는 듯한 애절한 장면을 끼워넣어 가슴 아픈 아버지의 이야기로 마무리 했다.
신파가 기피해야할 나쁜 장르극은 아니나, 도식적인 이야기를 보고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2049 주요 관객층 사이에서는 냉소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부성애가 강조된 결정적인 순간은 엔딩이다. 아마도 어떤 관객은 김태호와 순이가 만나는 장면을 보고 탄식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딸의 서사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이 미묘하게 속삭인다. 승리호 멤버들과 도로시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만으로도 ‘승리호’를 굴러가게 하는 연료는 충분하다.
영화 스틸사진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한 영화를 아우르는 송중기의 존재감은 폭발적이다. 극의 중심에 선 태호를 소화하는 송중기는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며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한 최대치로 캐릭터를 그렸다. 송중기가 표현할 수 있는 태호의 감정선은 현재로선 여기까지다. 캐릭터가 왠지 아쉽다면 송중기의 연기력이 부족한 탓이다.
흥미진진한 우주 배경만큼 다른 배우들의 연기 또한 ‘승리호’의 주요 핵심이다. 진선규가 타이거 박의 대사를 ‘밀당’하며 중간중간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조폭 출신 타이거 박은 알고 보면 마음이 약한 남자인데, 진선규가 파격적인 레게 스타일을 소화하며 초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고 도로시를 만나 그의 진짜 성격을 연기로 적절하게 그려냈다. 김태호의 서사보다 타이거 박과 장 선장의 전사(前史)가 더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영화 스틸사진
김태리는 장 선장 캐릭터를 통해 시원하고 야성적인, 거친 여성을 그리며 또 한 번 변신했다. 로봇 업동이로 분한 유해진도 특유의 말투와 대사 톤으로 진화된 휴머노이드를 완성했다. 그의 얼굴이 나타나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본다면, 분량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해진의 선택은 전적으로 옳았다. 
영화 ‘늑대소년’(2012)으로 조성희 감독과 인연이 있는 배우 김향기는 특별 출연으로 예상 밖 재미를 안겼다. 
결과적으로 승리호 멤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반대 세력인 UTS 창시자가 화성에 제2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도로시를 지키지 못한다면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전개를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게 안정화된 공식을 따랐다. 러닝타임 1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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