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가 길어도 리시브가 불안해도 ‘배구여제’ 김연경(33·흥국생명)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를 향한 집념이 ‘왼손 스파이크’라는 묘기를 만들어냈다.
흥국생명은 지난 19일 홈구장인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플레이오프 IBK기업은행과의 1차전에서 3-1로 승리했다.
승리의 주역은 김연경이었다. 이날 양 팀 최다인 29점을 책임지며 플레이오프 기선제압을 이끌었다. 2008-2009시즌 이후 무려 12년 만에 밟는 V리그 포스트시즌 무대였지만, 긴장은 없었다. 정규리그 득점 토종 1위(648점), 공격성공률 전체 1위(45.92%)의 위용을 유감없이 뽐내며 무려 60%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했다.
김연경은 경기 후 “어려운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해 준비를 많이 했는데 그런 것들이 잘 나와서 승리할 수 있었다. 모든 선수들이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잘해준 덕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연경은 이날 다양한 방법으로 29개의 득점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강타, 연타의 수준이 아니었다. ‘배구여제’, ‘월드스타’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화려한 개인 기량으로 배구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 중 백미는 왼손 스파이크였다.
1-1로 맞선 3세트 19-16 리드 상황. 좌측에 있는 김연경을 향한 신인 세터 박혜진의 토스가 다소 길게 이뤄졌다. 김연경이 이미 오른손으로는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 왼손을 이용한 가벼운 밀어넣기가 예상됐다. 그러나 배구여제는 왼팔을 쭉 뻗어 공에 힘을 실었다. 이는 리베로 신연경을 지나 우측 코트 가장자리 안쪽에 정확히 떨어졌다. 득점이었다. 마치 만화 같은 배구에 선수단 전체가 열광했고, 이는 3, 4세트 연이은 승리의 디딤돌로 작용했다.
김연경은 “사인대로 공격을 하러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공이 길게 왔다. 오른손 처리는 무리였다”며 “상대가 잡을 것 같아 왼손으로 강하게 때려봤는데 운 좋게 들어갔다”고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김연경은 겸손하게 설명했지만, 이는 승리를 향한 집념이 만들어낸 득점이기도 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서 본능적으로 나온 왼손 스파이크였다.
4라운드까지 17승 3패의 압도적 승률을 기록하며 1위를 질주했던 흥국생명. 그러나 이재영-이다영 쌍둥이자매의 이탈로 인해 5라운드부터 ‘절대 1강’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제대로 났다. 에이스이자 캡틴 김연경이 백업 선수들을 끌고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GS칼텍스에게 정규리그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챔프전 우승을 위해 봄배구에서는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이에 플레이오프에 앞서 선수단을 소집한 주장 김연경은 “선수들을 향해 여기서 우리가 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각자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의지를 불태웠다. 간절한 마음, 이기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잘 된 것 같다”고 전했다.
1차전 승리로 챔피언결정전 진출 확률 100%를 거머쥔 흥국생명. 그러나 배구여제에게 방심은 없다. 2차전에서도 똑같이 공을 향한 집념을 갖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김연경은 “100%라는 수치가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끝나야 다 끝난 것”이라고 강조하며 “1차전 준비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 2차전도 그렇게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