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김상수(31)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향한 애틋함 마음을 실은 글로 잔잔한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김상수는 지난 3월 7일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가톨릭 서울대교구 주보 ‘말씀의 이삭’ 난에 글을 싣고 있다. ‘친구 같은 하느님’(3월 7일 치),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3월 14일 치), ‘아버지의 장례미사’(3월 21일 치)를 차례로 연재했다. 일종의 신앙고백 같은 글이다.
그 가운데 ‘아버지의 장례미사’ 편에 김상수는 “작년 8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제 인생의 길잡이셨습니다. 야구를 시작한 것도 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면서 부친이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러나 애틋한 마음을 듬뿍 담아 기술하고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김상수는 “(하느님은)모든 일에 감사함을 알게 해 주는 존재”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김상수의 아버지(고 김영범)는 실업야구 농협에서 유격수로 활동했던 야구인으로 그에게는 아버지이자 훌륭한 스승이었다.
김상수는 “야구선수였던 아버지께서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제게는 무척 멋져 보였고,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야구 글러브를 장난삼아 놀던 제가 야구를 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고 야구선수가 된 계기를 돌아봤다.
그는 “야구가 잘 안 풀릴 때면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했고 그러면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면서 “아버지의 투병 중 저는 어떻게든 한 경기라도 더 뛰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도 부상으로 힘들 때였지만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야구선수 아들’ 모습을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고 회상했다.
김상수의 부친은 57세의 아까운 나이에 간암으로 작고했다. 투병을 지켜본 아들이 그런 아버지를 위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기 위해 나름대로 간절하게 노력을 했다는 얘기다.
그는 “아버지는 삶의 마지막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내셨는데, 지켜보던 저와 어머니가 감탄할 정도로 평화롭게 떠나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아버지의 마지막 며칠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시즌 중이었지만 제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4, 5일 쉬는 기간이었고, 덕분에 선종하시던 날은 제가 아버지 옆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시간이었습니다.”고 돌아봤다.
“야구는 저의 전부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저의 전부를 쏟아부었습니다”고 고백한 김상수는 올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팀의 재도약을 이끌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주위의 전언에 따르면, 김상수는 평소 후배들을 잘 챙기는 품이 너른 선수다. 기량면도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고, 누구보다 팀 분위기를 잘 이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2019년에 이학주에게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2루수로 옮긴 김상수는 붙박이 유격수 자리를 내준 데 대해 서운해할 법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오히려 수비 자리를 넓힌 것을 자신의 장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김상수의 별명은 ‘연쇄 사인마’다. 표현이 살벌하지만, 김상수가 하도 주위에 사인을 잘 해 준 데서 붙은 애칭이다. 심지어 눈만 마주쳐도 사인을 해 준다는 얘기가 있을 지경이다.
김상수의 이름은 그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다. 한자 이름(相竪)은 김상수 말로는 ‘서로 상, 세울 수’라고 했는데, 수(竪)는 더벅머리라는 뜻도 있다. 마치 그의 머리칼을 연상시킨다. 그가 더벅머리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보고 싶다.
글/홍윤표 OSEN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