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언제 또 마운드에서 던져보겠어요."
한화 내야수 강경학(28)이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지난 10일 대전 두산전에서 투수로 깜짝 등판, 최고 140km 빠른 공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기념구는 다음 투수로 나선 외야수 정진호가 챙겼지만 강경학은 마운드에 올라 140km를 던진 그 순간을 마음 속에 간직했다.
강경학의 투수 등판은 뜻하지 않게 발생했다. 한화가 8회까지 1-14로 크게 뒤져 패색이 짙은 상황. 불펜 필승조 소모를 막기 위해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야수들에게 “투수를 해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부분 투수를 한 지 오래돼 주저했지만 강경학은 “제가 던질 수 있습니다”라고 등판 의사를 나타냈다.
9회초 시작과 함께 3루수에서 투수로 옮긴 강경학. 첫 타자 장승현을 중견수 뜬공 잡은 뒤 권민석을 2루 땅볼 처리하며 투아웃까지 순조롭게 갔다. 그러나 이후 안타 3개와 사사구 3개로 4실점했다. 2사 만루에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의 펜스 앞 타구를 우익수 임종찬이 놓친 게 아쉬웠다. 결국 이닝을 끝내지 못한 채 투구수 28개에서 정진호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11일 두산전을 앞두고 취재진을 만난 강경학은 "저는 타자인데…“라며 인터뷰 요청에 살짝 민망해했다. 이어 “수베로 감독님께서 투수로 던질 수 있냐고 물어보셔서 할 수 있다고 했다. 점수 차이가 많이 났고, 팀이 투수를 아껴야 다음 경기를 이길 수 있으니 제가 하고 싶다고 했다. 팀에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마무리를 제대로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강경학이 마지막으로 공을 던진 건 중학교 시절. 혹시 모를 부상 걱정을 한 수베로 감독이 “무리하지 말고 가운데로 가볍게 스트라이크로 던져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마운드를 내려온 뒤 수베로 감독은 “다음에 또 던지면 그렇게 세게 던질 필요없다”고 또 말했다.
강경학이 4실점하면서 스코어는 1-18로 더 크게 벌어졌다. 일각에선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수베로 감독의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경학은 “제가 마무리를 잘했으면 탈이 없었을 것이다. 저 때문에 경기가 더 길어지고, 괜히 민폐가 된 것 같아 팀에 미안하다”고 자책하면서 “최고 구속이 140km나 나올 줄 몰랐다. 120km 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공 하나 던질 때마다 선수들이 ‘워어~’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낸 것 같다. 그래도 무리해서 던진 건 아니다. 몸 상태는 멀쩡하다”며 웃어보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운드 위 고독한 존재, 투수의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투수의 마음이 어떤지 알게 됐다. 야수들이 타구를 제발 좀 잡아주길 바랐다. 앞으로 수비를 나가면 더욱 집중하겠다. 투수들을 편하게 해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강경학에 이어 투수로 나온 외야수 정진호는 110km대 느린 공 4개로 신성현을 우익수 뜬공 처리하며 이닝을 끝냈다. 정진호는 아웃 잡은 공을 손에 넣었다.
강경학은 “진호형은 기념구를 챙겼더라. 이닝을 마무리한 건 진호형이기 때문에 진호형이 챙기는 게 맞다”며 “전 챙기지 않았다. 140km 나온 것에 만족한다. 언제 또 이렇게 140km를 던져볼 기회가 있겠나.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타자로 올게요”라는 말을 남긴 채 인터뷰실을 떠났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