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시즌 KBO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연장전 포함 3시간21분에 달한다. 시즌 초반이지만 지난해(3시간13분)보다 무려 8분이 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볼넷 증가. '볼볼볼' 야구가 이어지면서 역대 최대의 볼넷 시즌이 되고 있다.
볼넷은 투수에게 불행의 씨앗으로 비유되곤 한다. 공짜로 한 베이스를 그냥 줄뿐만 아니라 4개 이상의 공을 던지며 헛심을 쓰게 된다. 지도자들은 정면 승부를 해서 안타를 맞는 게 낫다고 입을 모은다. 제구가 되지 않는 볼넷은 지켜보는 이들도 하여금 지루하게 만든다. 경기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리는 요인이기도 하다.
지난 19일까지 올 시즌 66경기에서 니온 볼넷은 총 573개. 경기당 평균 8.68개의 볼넷이 속출하고 있다. 리그 평균 9이닝당 볼넷은 4.38개. 지난 2001년 4.15개를 넘어 리그 역대 최다 기록이다. 어느 때보다 많은 볼넷으로 경기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숨을 짓게 한다.
두산 아리엘 미란다는 평균자책점 0.73에도 불구하고 12⅓이닝 10볼넷으로 제구가 말을 안 듣는다. NC 김영규는 지난 8일 창원 롯데전에서 3회 5타자 연속 볼넷을 허용해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을 썼다. 한화 박주홍은 13일 대구 삼성전에서 1이닝 6볼넷으로 조기 강판됐다.
롯데 앤더슨 프랑코는 16일 사직 삼성전에서 1회에만 볼넷 3개 포함 역대 한 이닝 최다 61개의 공을 던졌다. 한화, 두산, 롯데는 두 자릿수 볼넷 허용이 각각 1경기씩 있었다. 지난 9일 잠실 SSG-LG전에선 양 팀이 나란히 10개씩, 도합 20사사구를 합작하는 졸전을 벌이기도 했다.
볼넷뿐만이 아니다. 타자의 머리를 맞힌 헤드샷 사구도 벌써 3번이나 나왔다. NC 송명기, LG 김대유, 키움 장재영 등 3명의 투수가 헤드샷 퇴장을 당했다. KBO는 2014년부터 선수 보호를 위해 헤드샷 자동 퇴장 규정을 만들었는데 2015년에 8번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5번밖에 안 나온 헤드샷 퇴장이 올 시즌은 개막 한 달도 안 돼 벌써 3번 속출했다.
투수들의 제구가 어느 때보다 '엉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코로나 영향으로 10개팀 모두 날이 추운 국내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른 영향이란 분석이 나온다. 따뜻한 곳에서 몸을 만들지 못한 투수들이 실전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촉박했고, 밸런스를 찾지 못하면서 제구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꽃샘 추위까지 더해지면서 투수들에게는 힘겨운 봄날이 되고 있다.
그러나 리그 평균자책점은 지난해(4.77)보다 올해(4.35) 낮아졌다. 투수들의 성적이 크게 나쁘지 않은데 유독 볼넷이 많다. 타자들의 대응법이 달라진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 타자들은 타율을 자존심으로 여기며 쳐서 나가는 데 집중했지만 요즘은 출루율, 선구안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배트를 쉽게 내지 않는다. 최대한 공을 보는 타자들이 많이 늘어났다.
'퇴근존' 논란이 불거진 후 지난주 경기당 볼넷이 8.97개로 종전(8.44개)보다 수치가 늘어난 것도 시기상 공교롭다. 심판들의 스트라이크존이 심리적으로 좁아졌을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정규리그 전체 일정의 9.2%를 소화한 초반이다. 현재까지 기록은 '스몰 샘플'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흐름으로 끝날 수도 있다. 리그 수준 향상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