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30분량을 두 사람만의 대화로 가득 채우는 드라마가 또 있을까.
역시 임성한(피비)이다. 호불호는 두 번째 문제다. 드라마 하루 분량을 둘 사람만의 대화로 구성한 배짱은 임성한 작가이기에 가능한 면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2인극 난상토론을 만든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행복했지만 불륜으로 신뢰가 깨진 부부. 아내는 이혼을 원하고 16살 연하와 불륜을 저지른 남편은 이혼만은 안 된다고 대립한다. 둘 사이의 불꽃튀는 신경전, 갈등과 증오, 원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사랑과 연민 등이 대화를 통해 물 흐르듯 드러났다. 감정은 바다와 같이 끊임없이 파도가 일면서 종종 소용돌이와 폭풍이 몰아쳤고, 대사는 중언부언이 이어졌지만 이혼을 두고 싸우는 부부의 현실감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18일 방송된 TV CHOSUN 주말미니시리즈 ‘결혼작사 이혼작곡2’ 이태곤과 박주미는 이 같은 2인극을 충실하게 연기했다. 원테이크는 아니었지만 쪼개진 컷들 속에서도 이 두 사람이 얼마나 감정선을 밀도있게 유지하며 연기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환자인 아미(송지인)과 바람핀 정신과 의사 신유신(이태곤)은 아내 사피영(박주미)에게 무릎을 꿇은 채 살면서 모든 죗값을 치루겠다고 빌었다. 재산도 다 포기할 것이라며 "용서해줘. 죽을 죄 지었어”라고 비는 신유신에게 그러나 사피영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거 봤어? 엄마가 만약 무덤에서 살아 돌아오시면 없던 일루 할게”라며 차갑게 응수했다.
하지만 신유신은 지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다가도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 원래 남자라는 동물이 그렇다", "장난감 좋아하듯 (불륜녀를) 좋아한 것", "지구에 아름다운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존재하듯이 소우주인 사람도 그렇다. 완벽할 수 없다" 등의 회유와 궤변도 늘어놓았다. 불륜녀가 생부를 몰라 자신에게 부정을 느낀 것이고, 자신도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에 사피영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신유신이 불륜녀와 끝내려고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걸린 것' 때문인 점. 그간 바람과 관련해 거짓말이 능수능란했던 점 등을 열거했다. 겉으로는 세상 좋은 남편과 아빠인 척 하면서 뒤로는 이기적인 욕망에 충실했던 그를 두고 '양아치'라고도 불렀다. 아이가 여러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을 자신의 불륜에 비유한 것을 두고는 "그럼 장난감과 결혼한거야?"라고 날카롭게 묻기도 했다.
위기에 몰린 신유신은 사피영의 '가정'까지 건드렸다. 세상을 떠난 사피영의 엄마 모서향(이효춘)이 남편의 불륜을 참지 못했던 것을 거론하며 “이혼한 엄마 평생 원망해놓고, 본인두 같은 결정하는 거”라는 선 넘는 발언과 함께 딸의 앞날을 걱정했다. 또 "내 몸 갖구 내 맘대루 좀 했어. 당신한테 피해 돌아간 거 없고", "외제차(불륜녀에게 한 선물)는 (생활비 건들지 않고) 내 돈으로 한 것" 등 뒷목잡는 발언을 이어갔다. 정작 남편의 불륜 때문에 어머니를 임종 당시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했던 사피영은 이에 분노하며 "피울래면 바람 일찍 피던가. 그럼 엄마랑 일찍 화해했잖아”라며 통곡했다.
신유신 역시 “엄마한테 충분한 사랑을 못 받았잖아. 김여사가 아무리 잘한들 낳아준 친엄마 사랑에 비해? 제대루 못 받아 봤지만 아버진 워낙 병원 일에 정신 없으셨구. 그런 ‘사랑의 부재’ ‘애정결핍’ 때문이구나 싶었어”라고 트라우마를 고백하며 누구에게나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빚어진, 자신의 문제라고 자책했다.
열띤 대화 끝 신유신은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사피영 뿐이야.. 영원히. 한 번씩 만나서 밥은 먹을 수 있는 거지? 그것두 안돼?”란 말을 남겼다. 이에 사피영은 "알았어.."라고 대답, 두 사람이 결국 이혼함을 암시했다.
이 같은 두 사람은 대화는 보는 이의 가슴을 파고들기에 충분했다. 누군가는 신유신의 대화에서 가스라이팅을 발견했지만 누군가는 그의 말에 설득당했다. 반면 사피영에게도 그의 남편을 향한 '절대 용서 불가'를 두고 공감과 안타까움이 공존했다. 보는 이에 따라 지루하고 '한 회를 두 사람만으로 채우다니 머선 129'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시청자들이 존재했지만, 실험적이면서도 뛰어난 심리극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다음 예고편에서는 신유신이 불륜녀 아미를 집에 들였고, 이를 목격한 김동미(김보연)이 분노한 모습이 전파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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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결사곡'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