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줘야 할 선수다”
높은 연봉과 연차가 쌓인 ‘베테랑’을 향한 KBO리그 사령탑들의 공통된 멘트다. 베테랑을 향한 기대와 믿음, 그리고 의무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줘야 할 선수’가 해주지 못하면 경기는 꼬인다. 당연함이라는 현장과 팬들의 시선을 견디고 해줘야 하는 것이 2021년 KBO리그 베테랑들의 차가운 현실이다. 그리고 그 당연함과 상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몇몇이 야구판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연패 터널을 지나 지난 15일 후반기 첫 승을 신고한 SSG. 한유섬의 만루포로 승기를 가져오기 까지 불혹의 베테랑 추신수-김강민이 버텨줬다. 해줘야 할 선수의 묵묵한 활약이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
연승으로 기세를 올린 KIA를 홈 3연전에서 만나 금요일 첫 경기도 내준 SSG는 14일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특급루키’ 이의리를 선발로 만났다. 1회 선두타자를 상대로 삼구삼진을 이끌며 피치를 올린 이의리. 거침없는 루키를 상대해 번뜩이는 스윙을 펼쳐 담장 밖으로 기세를 날려버린 건 산전수전 다 겪은 추신수였다. 직구를 그대로 잡아당겨 선제 우월 솔로포. 이날 추신수는 이의리를 상대로 3타수 2안타 1볼넷,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앞에서 끈 추신수가 있으면 뒤에서 민 김강민이 있었다. 7회 1-1 박빙 상황 수비 강화를 위해 중견수 대수비로 김강민 카드를 꺼낸 SSG 김원형 감독. 귀신같이 위기가 찾아와 1사 2, 3루를 맞이했다. 희생플라이 하나면 역전을 당하는 상황. KIA 대타 최정용의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 김강민 쪽으로 향했다. 기존 수비 위치보다 왼쪽으로 치우쳤던 김강민은 빠른 판단으로 오른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타구를 잡으며 직선타 아웃을 이끌었다. 이어진 물 흐르는 듯한 중계플레이로 홈 태그업을 시도한 3루주자까지 잡아냈다. 순식간에 2아웃을 잡아내며 실점없이 이닝 종료.
김강민의 9회말 동점 좌월 솔로포는 화룡정점이었다. 8회 역전 솔로포를 허용해 한 점 뒤지는 상황에서 KIA 마무리 정해영이 경기를 마무리지으려 출격했다. 연승의 기세가 무르익어가고 연패의 그림자가 랜더스필드에 드리워지는 듯 했다. 대수비 이후 9회말 첫 타석에 들어선 김강민. 정해영의 기세 좋은 직구를 놓치지 않고 때려 패배를 담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추신수-김강민의 활약이 패배를 무승부로 바꿔놨다. 포기를 모르는 베테랑의 기운이 다음날 SSG의 대승과 연패 탈출, 후반기 첫 승이라는 달콤한 열매의 양분이 됐다.
감독의 계산에 최소 변수는 베테랑이고 최대 변수는 루키다. ‘긁지 않은 복권’ 같은 루키가 터지면 팬들은 열광한다. 예측할 수 없어 팬들은 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변수를 줄이려는 현장은 속이 까맣게 탄다. 한치 앞이 안보이는 요즘이라 루키들의 활약이 더 와닿을지 모른다. 하지만 SSG 추신수-김강민처럼 계산이 서는 베테랑이 있어야 공이 굴러가고, 삶도 굴러간다. 베테랑의 경험, 선배들의 지혜를 거울 삼아 루키도, 우리도 이만큼 자라왔다. /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