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은 ‘야구의 날’이었다.
2008년 8월 23일 제29회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야구가 금메달을 따냈다. 야구의 날은 그 감격을 길이 기리기 위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KBO가 공동으로 만든 날이다.
KBO리그는 베이징올림픽 우승을 계기로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 2008년에 사상 처음으로 관중 500만 명 선을 넘어선 데 이어 해마다 꾸준한 증가를 했고 2017년에는 역대 최다인 840만 명을 기록했다. 그때를 정점으로 한국프로야구는 관중이 줄어들기 시작, 2019년에는 700만 명대로 내려앉았고 급기야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야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외부요인이라고 하겠지만 프로야구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일부 선수들의 끊임없는 일탈과 방종, 이를테면 도박, 무분별한 음주(운전), 학원폭력, 약물복용 등으로 민심 이반을 부채질했다.
예년 같으면 야구의 날에 구단들이 하다못해 이런저런 이벤트를 기획, 팬서비스라도 했지만 올해는 흐지부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잊힌 날이 돼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야구가 동메달은커녕 ‘참사’라고 불러 마땅할 초라한 성적을 남긴 덕분에 더군다나 팬들의 외면을 받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베이징올림픽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경문 야구대표팀 감독이 도쿄올림픽 도중에 성적도 성적이려니와 사려 깊지 못한, 팬들의 염장을 줴지르는 발언으로 울화를 돋우었던 일이 가뜩이나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KBO리그에 얼음물을 쏟아부은 격이 됐다.
김응룡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은 도쿄 참사와 관련, 사석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혀를 찼으나 김경문 감독은 공식적으로 대표팀 감독 사퇴 의사를 아직도 밝히지 않았다.
KBO에 따르면 김경문 감독의 임기는 올해 10월 31일까지다. KBO 측은 올림픽을 끝으로 감독(코칭스태프 포함) 임기가 사실상 끝난 것이지만 뒤처리 문제 등으로 10월 말까지로 했다는 얘기다. 글쎄, 아직도 처리해야 할 무슨 일이 남은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도쿄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2022년 9월 10~25일)이 일 년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아시안게임은(물론 형식상으론 올림픽도 포함) 선수단 구성의 전권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쥐고 있다. 올림픽은 편의상 KBO 기술위원회가 감독과 선수들을 구성했지만 이제 그 권한을 본디 자리도 되돌려놓아야 한다.
KBO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뒤 “아시안게임 때는 KBO리그 중단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KBO리그에 충실하겠다는 공언이었지만 아시안게임이 병역 미필 프로야구 선수들의 각축장으로 변질한 것에 대한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의식한 조치였다.
이제 한국야구는 전환점에 서 있다. 한국야구의 도쿄올림픽 참사는 ‘앞으로 국제무대에 선수단을 어떻게 구성해서 파견할 것인가’라는 물음도 던졌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시(선운사에서)처럼 많은 야구선수가 프로 1군 무대에 서기까지는 ‘멀고 험한 길’을 거쳐야 한다. 막상 자리를 잡았다손 치더라도 온갖 유혹이 똬리를 틀고 그들의 앞길에 도사리고 있다. 그 유혹에 견디지 못하고 넘어가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제 길에서 정진한다면 그야말로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데도 어느결에 한눈을 팔게 되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한번 올라타면 그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다.
한국야구의 옛 영화는 이미 스러졌다. 뼈저린 반성이 없는, 일그러진 한국프로야구, 어디로 가는가.
/글.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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