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배구계는 지난 2월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의 학교 폭력 가해 논란으로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피해자에게 법적 대응을 하는 등 파렴치한 행동으로 공분을 샀다.
쌍둥이 자매의 학폭 논란으로 여자 배구계의 인기가 식어버리는 듯 했지만 도쿄 올림픽 대표팀이 4강 진출의 감동 스토리를 선사하며 다시 한번 흥행 몰이에 나섰다. 여자 배구 인기를 되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개막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이 시점에 예상치 못한 악재가 발생했다.
최하위 IBK 기업은행이 주전 세터 조송화의 무단 이탈로 팀 분위기에 최악에 이르렀고 감독과 단장이 동시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조송화는 서남원 감독과의 불화로 지난 12일 KGC 인삼공사전 이후 팀을 이탈한 뒤 구단의 설득으로 다시 복귀했다. 하지만 16일 페퍼저축은행전이 끝난 뒤 숙소를 나가버렸다. 김사니 세터 코치 또한 구단 측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걷잡을 수 없는 파국에 놓인 기업은행은 21일 입장문을 내고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을 동시에 경질하기로 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 모두 성적 부진과 팀내 불화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감독과 단장을 동시 경질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구단 측은 "최근 불거진 사건에 대해 구단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선수와 코치 면담 등을 통해 진상을 조사해왔으며 이에 따른 팀 쇄신 방안을 마련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서남원 감독과 배구단 단장을 동시 경질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팀을 이탈한 조송화 선수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탈 선수 문제 등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사직 의사를 밝힌 김사니 코치에 대해서는 사의를 반려하고 팀의 정상화를 위해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김사니 코치가 서남원 감독 대신 임시 지휘봉을 잡는다.
나름대로 해결책이라고 내놨지만 악수에 가깝다. 누가 봐도 조송화에게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들어 여자배구의 인기가 치솟으며 일부 선수들의 도 넘은 행동이 논란이 되고 있다. 팀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걸 스스로 알기에 이를 무기 삼아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다. 구단 측의 어처구니 없는 대처는 앞으로 더 큰 화를 부를 것이다. 일부 주축 선수들이 목소리를 내면 감독 또는 단장 쯤이야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의 감독 및 단장의 동시 경질은 '신뢰와 실력을 바탕으로 고객과 함께 성장하겠습니다'라는 기업은행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조송화도 팀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액 연봉 선수라면 그에 걸맞은 실력과 품격을 갖춰야 한다. 프로 배구단은 동네 헬스장이 아니다. 제 마음대로 드나드는 그런 만만한 곳이 아니다.
또 이미 조송화는 지난해 '국셔틀'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후배들에게 억압적으로 행동했던 주인공이 여전히 새로운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IBK기업은행은 특별한 언급없이 유튜브 내용 삭제로 논란을 지워버렸다.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이 물러났으니 조송화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혹여나 주축 선수라고 감싸 안을 생각은 애초에 안 하는 게 좋다. 지켜보는 눈이 너무나 많아졌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