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의 메시지 “인간의 가치는 인간이 만들고 지킨다”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1.11.24 15: 54

*해당 기사에는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OSEN=김재동 객원기자]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이 지난 22일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를 회복했다.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옥'은 공개 직후인 20일, 첫날 1위라는 기염을 토한 후 21일 하루 2위로 밀렸다가 다시 하루만에 1위를 탈환했다.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미지의 존재들이 불특정 인간들의 죽음을 고지하고 그 고지 시점에 마치 차원을 넘어온 듯한 괴물들이 그 인간을 처참하게 살해한다는 것이 스토리의 골격이다.
아마도 첫 고지를 받았을 정진수(유아인 분)는 ‘새진리회’라는 것을 만들어 고지의 주체를 ‘천사’라고 지칭하며 천사를 보낸 신의 의도를 탐구하고 세상에 경고한다.
정진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의도다. 화재 현장에서 인명을 구하고 흉기난동범을 설득하는 등 선행은 했을지언정 한 번도 세상의 종교가 경계한 금기를 어긴 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자신이 지옥으로 끌려갈 것이라는 ‘고지’를 내린 신의 의도를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다. 대신 자신의 바람인 ‘정의로운 세상’을 종교적 해석으로 내세워 그 불가해한 현상에 덧칠하기로 한다.
도심 한복판 카페에 있던 남자가 백주대낮에 홀연히 나타난 괴물들에게 린치당하고 다 타버린 재만 남기고 죽었을 때, 그리고 그 현장이 스마트폰을 통해 생중계됐을 때 정진수는 ‘정의로운 세상’ 구현의 때가 왔음을 깨닫고 그것이 인간의 죄를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한 신의 처벌이라고 주장한다. 때맞춰 고지를 받은 박정자(김신록 분)를 회유해 그 끔찍한 시연 장면을 생중계하며 죄에 대한 공포를 모든 이에게 심어주려 한다.
하지만 박정자에겐 뚜렷한 죄의 혐의가 없다. 이에 정진수는 진경훈(양익준 분) 형사의 아내를 살해하고 출소한 마약사범을 진형사의 딸 희정 (이레)을 끌어들여 살해한 후 소각, 명백한 범죄자에 대한 신의 심판을 연출한다. 그가 저지른 최초의 범죄다.
여기에 20년 전에 고지된 자신의 죽음은 대중에 알려져선 안된다. 가치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정진수는 사이비 목사 김정칠(이동희 분)에게 자신의 계획에 비판적인 박정자의 변호사 민혜진(김현주 분)과 관련된 조건으로 새진리회 2대 의장자리를 넘기고 사라진다. 그의 최후의 범죄다.
정진수는 사라지고 새진리회가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 광신도 그룹인 화살촉의 사적 폭행은 도를 더해가고 고지를 받은 자 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죄인으로 대중의 수모를 감수하는 현실의 지옥, 인간이 만든 지옥이 도래했다.
정진수의 아집이나 김정칠의 권력욕, 화살촉 무리의 맹신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 마실수록 갈증만 더해간다. ‘고지’니 ‘시연’이니 하는 불가해·불가항력적인 부분은 그냥 태풍이나 해일처럼 나변의 문제일 뿐이고 인간의 문제만 남는다.
고지를 받은 자들은 자신의 가족이 당할 피해를 우려해 증발하는 와중에 방송국 PD인 배영재(박정민 분)와 송소현(원진아 분)의 갓 태어난 아들에게 신생아실에 등장한 예의 천사가 지옥행을 고지한다.
신생아가 죄를 지어 지옥에 간다고? 신생아의 지옥행은 새진리회가 주장해온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이란 교리를 뒤흔들 결정적 증거다.
신으로 추정되는 불가항력의 존재가 유희처럼 퍼붓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 맹신과 마녀사냥 등 나약하게 망가져 가는 것도 인간이고 끝끝내 가치를 지켜내는 것도 인간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지불인, 이만물이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而爲芻狗)’,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 만물을 쓰고 버리는 짚강아지처럼 여긴다고 말했다.
천지는 인격적 존재가 아니다. 만물을 특별히 아끼지도 꺼리지도 않으므로 쓸모가 다하면 없어지는 게 당연하다. 번개가 사람 가려 내리치지도 않고 지진이나 홍수의 피해가 악한 이들만 골라 집중되지도 않는다. 기복의 의미는 자기 위안 정도에 그칠 뿐이다.
태초에 번개가 만든 유기물에서 비롯된 인간의 존재 자체는 전적으로 우연의 소산이다. 신이 됐건 자연이 됐건 그 우연의 소산을 살뜰히 돌볼 이유는 없다. 종말의 순간이 오더라도 그저 인간의 일은 인간들만 관심 있고 인간들만이 주관해나갈 뿐이다. 드라마가 전하고픈 메시지로 보인다.
뚜렷한 메시지, 짜임새 있는 구성에 더해 만화같은 생뚱맞은 상상력에 현실성을 부여한 김현주·유아인·김신록·양익준·박정민 등의 연기가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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