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벌려놓고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니 입을 닫는 모양새다. 프로배구 구단의 전직 코치이자 감독대행이란 사람이 무책임한 인터뷰로 배구판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IBK기업은행 김사니 감독대행은 지난 23일 인천 흥국생명전에서 자신이 시즌 도중 팀을 이탈한 것은 서남원 전 감독의 폭언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며 배구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김 대행은 “(서남원 감독이) 모든 스태프와 선수들이 있는 상황에서 화를 내면서 이 모든 걸 책임지고 나가라고 했다.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말과 폭언이 있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인터뷰를 접한 서 전 감독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욕설과 폭언은 결코 없었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오히려 코치와 선수가 자신의 질문에 일절 대응을 하지 않았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당시 코치였던 김 대행이 팀 복귀 후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배구계는 덕장으로 알려진 서 감독이 폭언을 했다는 주장에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했다.
27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기업은행과 GS칼텍스의 2라운드 맞대결. 그 동안 그토록 억울함을 호소했던 김 대행이기에 이날 사전인터뷰에서 서 전 감독의 주장을 재반박할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로 폭언을 했다면 이를 구체적으로 공개했을 때 피해를 보는 쪽은 서 전 감독이었다. 이에 토요일임에도 평소보다 많은 취재진이 화성을 찾아 김 대행의 사전인터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김 대행은 수습은 커녕 회피로 일관했다. 그는 “난 어느 정도 입장 표명을 했고, 지금은 시즌이라 더 이상 이런 부분을 말씀드리는 건 아닌 것 같다. 차후에 자리를 마련해서 말씀드리는 게 맞다. 지금은 팀과 선수들을 먼저 생각해야할 시기”라고 선을 그었다. 불과 닷새만에 입장이 확 바뀐 것. 서 전 감독의 폭언이 실제로 있었는지 의심될 정도로 인터뷰가 무책임했다.
“이번 내용이 거짓일 수도 있고 진실일 수도 있다”는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서 전 감독이 폭언을 했으면 실제 당시 들었던 폭언을 공개하면 되고, 그런 일이 없었다면 사과를 하면 되는 일을 애매모호한 말로 더욱 혼란에 빠트렸다. 얼마 전 폭언 주장으로 전 사령탑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뒤 여론이 불리해지자 슬쩍 발을 빼는 느낌이었다.
김 대행은 이번 사태의 핵심은 뒤로 하고 무단 이탈이라는 사실을 바로 잡는 데 급급했다. 그는 “정확하게 말하면 이탈이 아니었다. 사퇴를 표명했고 그게 수리 중인 가운데 감독님과 회사에 말씀을 드리고 나왔다. 난 무단으로 이탈하지 않았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모순이 있었다. 무단 이탈이 아니라면 김 대행은 이번 항명 사태에서 크게 책임질 부분이 없다.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기업은행 감성한 신임 단장은 “김 대행에 대해선 신임 감독이 선임되는 대로 규칙과 원칙에 따라 합당한 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구단도 지난 23일 입장문에서 “김대행의 책임에 상응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징계를 암시했다.
김 대행 역시 “무단 이탈은 아니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구단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니 아니라고 하기가 그렇다. 내가 절충을 해보겠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늘어놨다.
감독대행이란 자리는 말 그대로 한 구단의 수장인 감독을 대신하는 자리다. 감독과 마찬가지로 언행이 무거워야 하고, 자신의 한마디가 일으킬 파급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특히 “전 감독이 폭언을 했다”는 말은 더더욱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 아니면 갈 때까지 간다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진실을 밝혀내는 게 맞다. 그러나 김 대행의 이날 인터뷰는 무책임과 회피의 향연이었다.
결국 본인이 일을 벌렸으니 수습도 본인의 몫이 돼야 한다. 김 대행은 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도 “신임 감독이 올 경우 코치직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도자를 하기 위해서 한 가지 알아야할 사실이 있다. 항상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말이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