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KBO의 시대착오적인 문신-효력 없는 경기 중 침 뱉기-선수 간 친목 도모 행위 금지 규제, 어떻게 해야 하나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2.04.18 07: 11

천운영 작가의 데뷔작인 단편소설 ‘바늘’은 ‘문신(文身)’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살에 꽂는 첫 땀. 나는 이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숨을 죽이고 살갗에 첫 땀을 뜨면 순간적으로 그 틈에 피가 맺힌다. 우리는 그것을 첫 이슬이라고 부른다. 첫 이슬이 맺힘과 동시에 명주실이 품고 있던 잉크가 바늘을 따라 천천히 흘러 내려온다. 붉은색 잉크는 바늘 끝에 이르러 살갗에 난 작은 틈 속으로 빠르게 스며든다.……”
‘바늘’에 나오는 문신 시술의 한 장면이다. 이 소설은 문신 시술을 감각적이고도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 치밀하게 묘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문신(Tattoo)은 1769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해서 최초로 소개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은 남태평양 타히티 섬의 언어 가운데 ‘예술적’이라는 뜻을 지닌 ‘tatau’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스티브 길버트는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원제. Tatoo History: A Source Book)』에서 문신을 ‘치기 어린 장난’이 아니라 ‘규격화된 몸으로부터 해방’으로 규정했다. (배대균 『한국인의 문신』 참조)
문신은 이제 우리네 일상에서 그리 낯설지 않고 오히려 익숙해졌다. 프로야구 선수들 가운데 여태껏 외국인 선수들 말고는 한국 선수들은 극소수였으나 요즘에는 주로 팔뚝 부위에 문신한 선수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문신의 이미지는 다양하나 여전히 아름다움과 위압감, 또는 혐오감 같은 이미지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다. 근년 들어 한국프로야구 선수들 사이에서 조용히 번져가고 있는 문신 풍조, 이 ‘자발적 낙인’을 일시적인 유행병으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치졸한 자기 최면’이나 ‘제 몸의 훈장’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리 내키지 않는다.
KBO는 지난 2011년부터 리그규정(애초에는 대회 요강) ‘경기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이하 행동 지침)’에 선수들의 금지 행위를 명기해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2022년 KBO리그 규정’에 따르면, ‘행동 지침’ 중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대표적인 조항이 바로 문신 규정이다.
명문화돼 있는 11가지 행동 지침 가운데 ‘욕설, 침 뱉는 행위 금지(2항), 경기 중 심판, 상대 구단 선수단에게 친목 행위 금지(5항), 과도한 문신의 외부 노출 금지(11항)’ 등 3가지가 규정과 실제 현장 사이에서 붕 떠 있다.
KBO가 이런 금지 조항을 명문화해 놓은 것은 위화감이나 혐오, 불쾌감을 자아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문신 풍조를 이런 유약한 금지 조항으로 방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선수들은 이런 금지 조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대로 절박한 성취 욕구나 비장감, 자신만의 염원, 식구들에 대한 사랑의 표식 등의 이유로 다양한 문신을 서슴없이 하는 형편이다.
당초 이 조항은 실행위원회(단장회의)를 통해 확정, 규정에 올려놓은 것이지만 KBO나 구단이 소속 선수들의 문신을 제지하거나 징계를 내린 사례는 아직 없다.
KBO는 “일반적으로 작은 문신은 괜찮지만 TV 중계 때문에 눈에 띄거나 교육상 안 좋을 경우, 여름에도 긴 팔 상의를 입고 나오도록 구단이 권유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강제력이 희박한 ‘요청’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다.
문신이 옹호와 배척 사이에 아직도 거리가 있긴 하지만 이젠 예전과는 달리 사회 전반에 개인적 취향으로 만연해 있는 마당에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을 내세워 KBO가 선수들을 규제하기도 쉽지 않다.
문신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경기 도중에 침을 뱉는 행위나 누상에 나가 상대 선수를 툭툭 치며 무언가 말을 섞는, 친목을 도모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일들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사실상 이런 ‘행동 지침’이 허울 좋은 규정으로 남아 있는지 오래다. 그런데도, 여전히 KBO 리그 규정에는 타성, 관성적으로 버젓이 실려 있다.
‘눈썹 성형이나 머리카락 염색, 문신이 다를 게 뭐 있나’라는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규제가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고려하더라도 외설적, 폭력적인 내용이 담긴 문신을 방치하는 것은 안 된다는 의견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세상의 어느 곳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가 어느 곳에서는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이 세상살이긴 하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1982년) 40년 고개를 넘어섰다. ‘행동 지침’을 준수하려면 엄격히 규정을 지키도록 독려하고 위반 시는 제재를 하던가, 아니면 불합리, 불필요한 조항은 면밀한 검토를 거쳐 이제는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노사협정처럼 선수들에게 ‘상업 로고가 들어가 있는 타투를 금지한다’는 식으로 규정을 세밀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KBO리그가 문신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은 분명하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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