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졸업→미국 직행…그 엄격해야 할 접근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2.04.28 10: 08

[OSEN=백종인 객원기자] 10년 전 일이다. 10월이면 삿포로는 초겨울이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움츠러든다. 게다가 긴장감도 팽팽하다. 드래프트를 며칠 앞둔 탓이다. 당연한 1지명이 눈 앞에 있다. 그런데 그가 속을 썩인다. “저 찍지 마세요. 무조건 미국 갈 거예요.” 당돌하게도 이미 공언했다. 여론의 지지도 절대적이다. 18세의 도전을 압도적으로 응원한다. 앞길을 막았다가 욕 먹을 게 뻔하다.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 3학년 오타니 쇼헤이, 그리고 니혼햄 파이터즈의 얘기다.
야마다 마사오 GM(단장)이 결단을 내린다. “돌아가는 법은 없다. 좋은 선수가 있으면 지명해야 한다. 교섭은 그 다음 일이다.” 드래프트 이틀 전이다. 내부 결정은 내려졌다. “단장님 괜찮으시겠어요?” 직원들이 한걱정이다. 작년 실패 때문이다. 스가노 도모유키의 거부로 지명권 1번을 날렸다. (스가노는 1년 재수 후 원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입단했다.)

2012년 9월 8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 2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5-6위 전에서 일본 선발 오타니가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OSEN=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구단의 발표는 사과문이나 다름없다. “오타니 군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지명은 강행됐다. 당사자의 답은 싸늘하다. “약간 놀랐습니다. 그러나 달라질 건 없습니다. 평가는 감사하지만, 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후는 고달픈 짝사랑이다. 먼저 학교를 찾아갔다. 70을 바라보는 야마다 GM이 고개를 조아린다. 교장과 야구 감독이 멋쩍게 맞는다. 당사자가 몸을 피했기 때문이다. 별 수 없이 집까지 찾아갔다. 차 한 잔을 놓고 부모와 인사했다. 지명한 지 일주일 만이다. “설명이라도 할 기회를 주십시요.” 간곡한 청에 자리가 마련됐다.
이 때부터다. 구단 프런트에 비상이 걸렸다. 전 직원이 매달렸다. 며칠의 밤샘 작업이 이어졌다. 30페이지짜리 PPT가 완성됐다. 제목이 서정적이다. ‘오타니 쇼헤이 군의 꿈에 대한 이정표(大谷翔平君 夢への道しるべ~). 훗날 극찬을 받은 파일이다. 가능성 제로를 바꾼 프레젠테이션이었다. 한동안 구단 홈페이지에 전문이 공개됐다.
전개되는 논리는 이렇다. ‘우리 구단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오타니 군의 꿈을 지지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고 적절한 지 함께 고민하겠다.’ 그런 내용들이다. 고려할 요소들로는 ▶리그의 경기력 ▶육성 시스템 ▶코치, 훈련장 등 인프라 구성 등이다. 즉 일본의 1,2군 시스템이 미국의 복잡한 마이너리그 시스템에 비해 생존에 유리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하지만 그 정도야 각오하지 않았겠나. 이역만리 낯선 곳의 고생 쯤이야. 피 끓는 열정이 멈출 리 없다. 그런데 그 다음이 결정적이다. 훗날 당사자의 고백이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교롭게도 11번째 페이지다. 그가 달고 싶어했던 등번호와 같은 숫자다. 롤모델로 여기던 다르빗슈의 백넘버다. (실제 입단 후 11번을 받았다.)
니혼햄 화이터스 <오타니 꿈에 대한 이정표> 중에서
11페이지는 이런 항목이다. ‘챕터 2, 7부 – 한국과 일본 야구 메이저(리그)에 대한 활약상황 중점 정리.’ 그러니까 그 때까지 두 나라에서 건너간 야구 선수들의 통계를 요약한 내용이다. 표 하나로 깔끔하게 해결된다.
①     (일본) 프로 출신 ML 진출 : 42명 중 29명 = 69.0%
②     (한ㆍ일) 비프로 출신 ML 진출 : 108명 중 6명 = 5.6%
비프로 출신에 대한(2번 항목) 구체적인 설명이 추가된다. 한국은 48명 중 5명(10.4%), 일본은 60명 중 1명(1.7%)이 메이저리그에 올라갔다. 유일한 1명은 매리너스에서 잠시 뛴 투수 맥 스즈키였다.
게다가 이 무렵은 류현진의 포스팅, 다저스 계약이 이뤄진 시점이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실제로 등장한 것이다.
“의욕이 너무 앞선 것 같습니다.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첫 해부터 활약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잔류 선언이 나온 날은 2012년 12월 9일이다. 바로 류현진이 다저스와 사인한 날이다.
애리조나주 템피에서 열린 LA에인절스 스프링캠프. 오타니 쇼헤이가 훈련에 앞서 진행된 포토데이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jpnews@osen.co.kr
고교 무대가 활발하다. 대어급들이 유난히 많다. 유망주들이 맹활약 중이다. 한국 야구의 희망이 쑥쑥 자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관심도 높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굵직한 뉴스들도 등장한다. ‘신분조회’ ‘세계적 에이전시와 계약’ 같은 키워드로 장식됐다. 하지만 빛나는 단어는 늘 눈을 부시게 한다. 엄격하고,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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