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간다.”
폭스바겐그룹이 전기차 생산공장에서 보여준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은 기업의 정체성 설정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달 말, 독일 중북부 니더작센 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폭스바겐 R&D 부문 e-모빌리티 테스팅 센터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폭스바겐그룹의 임원은 주저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전환”을 말했다.
그룹의 전략이 확고하게 서 있기에 가능한 천명이었다. 대전환의 전략적 토대는 2021년 발표한 ‘뉴 오토(New Auto)’에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뉴 오토 전략을 기반으로 2030년까지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폭스바겐그룹은 2021년부터 5년간 계획한 총 투자 규모(1,590억 유로)의 56%에 달하는 890억 유로(약 120조 원)를 전동화와 디지털화 등 미래기술에 배정했다. 소프트웨어 주도형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술적 토대로 메카트로닉스, 소프트웨어, 배터리 및 충전, 모빌리티 솔루션 등 4개 기술 플랫폼에 집중하기로 했다.
폭스바겐그룹이 말하는 ‘소프트웨어’는 전기차의 운영체제(OS, Operating System)에 머무르지 않는다. OS를 뛰어넘어 자율주행이 실현되는 미래 모빌리티 환경을 포괄한다. 개념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다르고 데이터도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폭스바겐그룹은 아예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해 대응하고 있다. 바로 카리아드(CARIAD)다.
카리아드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본진이다. 2020년 그룹 내 자동차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독립해 전 세계 5,000여 명의 개발자와 엔지니어, 그리고 디자이너들의 지식과 역량을 모으고 있다.
독일 남중부 바이에른 주 잉골슈타트에 있는 카리아드 사무실은 취재진이 찾았을 때 정중동의 전형적인 연구소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동시에 묘한 긴장감도 흘렀다. 2025년까지 가시적인 성과물이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2025년 적용을 목표로 폭스바겐 그룹내 모든 자동차를 위한 하나의 소프트웨어 백본(backbone)을 준비하고 있었다. 백본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 소형 회선들로부터 데이터를 모아 의미 있는 데이터로 가공한 뒤 재전송할 수 있는 대규모 전송회선을 말한다.
취재진이 카리아드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브리핑의 핵심도 데이터의 수집과 가공이었다. 데이터 수집은 차량에 부착된 레이더, 라이다, 카메라가 담당한다. 이 곳으로 들어온 다량의 데이터는 클라우드로 모아져 분석과 선택, 적용의 과정을 거친다. 클라우드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 머신러닝과 딥러닝이 쉴 새 없이 이뤄진다.
2025년 카리아드가 선보일 단일 소프트웨어 플랫폼 이름은 ‘E³ 2.0’이다. E³ 2.0은 폭스바겐그룹 산하 모든 브랜드 차량에 적용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운전자가 스티어링휠 제어를 차량에 완전히 넘겨줄 수 있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도 지원할 예정이다. 폭스바겐그룹이 생산하는 자동차 중에서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가 들어가 있는 차량은 현재 10% 수준이다. 2025년이 되면 이 비중도 60%로 늘어난다.
이런 계획을 확인하고 나면 폭스바겐그룹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대전환’이라고 말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장차 ‘카리아드’가 폭스바겐그룹의 중추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쉽게 할 수 있다.
안드레아스 월링겐(Andreas Walingen) 폭스바겐 승용차 브랜드 부문 최고전략책임자(CSO)의 말에서는 확고한 전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폭스바겐 R&D 부문 e-모빌리티 테스팅 센터에서 만난 월링겐 CSO는 “2030년까지 카리아드가 주도하는 시스템이 완성되고 나면 폭스바겐은 전통적인 자동차 세일즈 회사에서 이상적인 소프트웨어를 서비스하는 회사가 된다. 잘 갖춰진 소프트웨어는 보통의 내 차도 금방 드림카로 만들어 준다. 2025년 이후 ‘트랜스폼 2025 플러스’ 단계로 접어들면 그룹은 소프트웨어와 프로세서, 그리고 서비스에 집중하는 기업으로 변해가고 것이다”고 말했다.
폭스바겐그룹에는 전기차 플랫폼이 이미 4개나 있다. 2020년과 2021년 아우디 e-트론을 만들어 낸 ‘MLB 에보(evo)’와 ‘J1’이 있었고, 순수전기차 ID.3와 전기 SUV ‘ID.4’, 아우디 ‘Q4 e-트론’의 토대가 되는 모듈형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 (Modular Electric Drive Toolkit)’, 그리고 프리미엄 전기차 전용 ‘PPE’가 있다.
그런데 폭스바겐그룹은 또 새로운 플랫폼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2026년 완성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는 확장형 시스템 플랫폼(SSP, Scalable Systems Platform)이다.
왜 이렇게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걸까? 그 답은 ‘카리아드’에 있었다. SSP로 생산 라인을 하나의 체제로 통합한 뒤 카리아드로 종합적 관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그리고 있었다. 폭스바겐그룹이 꿈꾸는 소프트웨어 기업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차는 소프트웨어가 수행되는 매개일 뿐이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