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준(박해일 분)은 강력계 다른 형사들과 달리, 범인을 검거하는 데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과 집요함을 갖춘 보기 드문 형사다. 후배 수완(고경표 분)은 그런 선배를 존경하지만 어떤 날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이견을 드러낸다.(*이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파른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즉사한 남성 등산객의 변사 사건 현장에 함께 출동한다.
극단적 선택인지, 살해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살인 범죄의 경우 80% 이상이 지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벌어진다는 통계 결과가 있기에 해준은 사망한 남성의 아내이자 중국 출신 방문요양보호사 서래(탕웨이 분)를 유력한 피의자로 의심해 소환 조사한다.
다른 사건을 수사할 때도 해준은 감시를 습관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살해자로 심증이 가는 서래의 집 앞에서 증거 포착을 위한 감시를 시작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마감하거나, 아이스크림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그녀의 일상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의심보다 점차 이성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 ‘아가씨’(2016)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연출작 ‘헤어질 결심’(제작 모호필름, 제공배급 CJ ENM)은 수사와 멜로가 뒤섞인 독특한 스타일의 로맨스 드라마다.
오프닝부터 시선을 압도하는 화려한 미장센으로 집중력을 모은다. 또한 서래와 해준의 집안 내부에도 음산한 톤과 산과 바다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 특유의 세트와 조명으로 특징 지어진 스타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각각의 캐릭터와 장소, 그리고 의상에 고루고루 동일한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다. 평범한 멜로 로맨스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영화는 형사 해준의 시점을 통해 남성을 살해한 범인이 누구인지 그 정체를 가리는 흐름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해준의 입장에서만 내러티브가 펼쳐지지 않고, 서래의 내면을 드러남과 동시에 시각적인 스타일을 곳곳에서 강조하기도 한다. 전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인물들의 동작이 이어지는 것을 눈여겨보는 것도 영화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다.
범인이 누군일지 짐작이 가긴 하지만, 서래의 생각과 마음 상태를 극 초반부터 쉽사리 예상하기 쉽지 않다. 인물들에 맡기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관객들이 지금껏 봐 온 이야기가 인물의 일면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예기치 않은 감동을 향해 무한히 나아간다. 보면 볼수록 다른 느낌이 들고, 좀 더 짙은 감정의 변이를 느낄 수 있을 터.
박찬욱 감독이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말한대로 “남녀가 감정을 참기 힘든데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 감정을 드러내려고 했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노출하는 정사신이 등장하지 않고도, 사랑을 나눈 남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박찬욱 월드’에 첫 입성한 박해일의 연기가 돋보인다. 순수하고 맑아 보이는 그의 눈빛과 말투가 캐릭터와 닮아서인지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다만 탕웨이의 한국어 대사가 어떤 장면에서는 굉장히 어색하다. 중국 출신 요양보호사라는 설정 덕분에 그녀가 맡은 서래에게 그나마 설득력이 부여된다. 사랑에 빠진 서래의 얼굴은 탕웨이가 가진 본연의 매력으로 배가돼 아름답게 빛난다.
‘헤어질 결심’은 6월 29일 극장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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