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가 2년 6개월의 공백을 깨고 돌아왔다. 인터뷰 테이블에 들어선 그는 '수리남' 홍보 멘트나 작품 소개보다 사과의 말부터 꺼냈다.
앞서 하정우는 2019년 1월부터 9월까지 서울 강남구의 한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의혹을 받았다. 당초 검찰은 벌금 1000만 원으로 약식 기소 처분을 내렸으나,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다시 정식 재판에 회부됐다. 1심에서 벌금 3000만 원을 비롯해 추징금 8만 8749원을 선고했다.
실제 하정우는 "얼굴의 여드름 흉터 치료가 목적이었으며, 약물 남용은 없었다"며 첫 공판부터 모든 공소 사실을 인정했다. 최후 진술에서도 "제가 얼마나 주의 깊지 못하고 경솔했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고 깊이 반성한다. 많은 관심을 받는 대중 배우가 좀 더 신중하게 생활하고 모범을 보였어야 했는데, 제 잘못으로 동료와 가족에게 심려를 끼치고 피해를 준 점을 고개 숙여 깊이 사죄한다"며 "법원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앞으로 더 책임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도록 노력하겠다"며 거듭 사과의 뜻을 드러냈다.
배우 하정우는 최근 진행된 OSEN과의 만남에서 넷플릭스 '수리남'의 촬영 과정 및 비하인드 등을 공개했는데, 본격적인 인터뷰 직전 "사실 제작발표회 때 일련의 사건에 대해 사죄 말씀을 그 자리에서 드렸어야 했는데.."라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가능하면 (기자님들을) 직접 뵙고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그날은 그 부분에 대해 언급과 사죄의 말씀을 못 드렸다"며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날 많이 응원해 주시고, 아껴주신 모든 팬분들과 많은 대중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정우는 "복귀작이 '수리남'이 될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2년 반 만에 인사를 드리게 됐다"며 "2005년 처음 본격적으로 작품을 하면서 맞이했던 시간이었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2년의 시간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시간이었다. 단순히 2년 반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짧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많은 부분을 반성하고 깨닫고 돌아보는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020년 2월 선보인 '클로젯'을 끝으로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보낸 하정우. 한국을 대표하는 다작 배우의 오랜 공백기로 인해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았다.
하정우는 "드라마는 극장보단 시청하고 관람할 수 있는 문턱이 낮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윤종빈 감독과 내가 처음 촬영을 시작하고 준비하면서 했던 얘기가 있다. 윤 감독과 내가 한국 영화계에 큰 기회를 얻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게끔 사랑을 받았고, 분명히 시청자들과 관객분들이 있었다. 정말 파이팅을 외쳤던 건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6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어서 선물 같은 작품이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한 "힘든 일도 있었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거 하나 보고 끝까지 완성한 것 같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재밌게 시리즈를 즐겨주셨으면 한다"며 "개인적으론 날 아껴주시고 응원해 주는 모든 분들에게 찍었던 작품이나 앞으로 찍을 작품을 통해서 보답하고 (주셨던 사랑을 다시) 온전히 드리고 싶다. 조금씩 인사 드리고 찾아뵙고 싶다"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표했다.
하정우의 복귀작 '수리남'(각본감독 윤종빈, 제작 (주)영화사 월광·(주)퍼펙트스톰필름)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수리남에서 대규모 마약 밀매 조직을 운영한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6부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마약 대부 전요환(황정민 분)으로 인해 누명을 쓴 한 민간인 강인구(하정우 분)가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하정우는 극 중 어릴 때부터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마다한 일이 없는 민간인 사업가 강인구로 분해 열연했다. 큰돈을 벌 기회를 찾아 나선 낯선 땅 수리남에서 친구와 함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지만, 마약 범죄에 휘말리게 되는 인물이다. 하정우가 연기한 강인구 또한 실존 인물이다.
하정우는 '수리남'에서 오랜 절친이자 영화적 동지 윤종빈 감독, 그리고 존경하던 선배 황정민과 첫 호흡을 맞춰 시너지를 발휘했다. 2007년 MBC '히트' 이후 15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셈이다.
14일 넷플릭스 TOP10 웹사이트에 따르면, '수리남'은 공개 3일 만에 누적 시청 시간 2천 60만을 기록하고 한국, 홍콩, 싱가포르, 케냐 등 13개국의 TOP10 리스트에 오르며 뜨거운 반응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OTT 콘텐츠 순위 집계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는 542 포인트를 얻어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3위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나타냈다.
'수리남'은 하정우가 먼저 실화 스토리를 접한 뒤, 윤종빈 감독에게 작품을 하자고 제안하면서 탄생하게 됐다.
그는 "소재나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웠고, 윤종빈 감독은 워낙 자주 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는 연출자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처음에는 거절하더니 '공작'을 찍더라.(웃음) 애초 영화로 제작하려고 했는데 아마도 감독님이 그때 당시에는 '이건 2시간짜리 영화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판단해 거절한 것 같다. '공작'을 찍고 와서 시리즈물로 만들면 가능하겠다는 결론이 나와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며 윤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은 중앙대 선후배 사이로 인연을 맺었다.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 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2005)를 시작으로,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군도: 민란의 시대'(2014) 등에서 감독과 배우로 호흡을 맞춰왔다. 이 외에도 윤종빈 감독은 하정우가 연출이나 주연은 맡은 영화 '허삼관', '클로젯'의 각색과 제작에 참여하는 등 두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정우는 윤종빈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종빈 감독에 대해 하정우는 "평상시에는 모든 걸 다 귀찮아한다.(웃음) 근데 촬영장에선 작은 장면도 끝까지 찍어낸다. 한 번 생각한 테이크는 끝까지 가져가서 이뤄낸다. 같은 걸 계속 시키면 배우 입장에선 힘들지만(웃음) 감독으로서 그게 참 대단하다"며 칭찬과 존경심을 표했다.
무엇보다 하정우는 친하다고 대충하지 않는다며, "아무리 친해도 현장에선 완벽히 하는 게 더 좋다. '윤종빈과 하정우가 친해서 서로 뭐 봐주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고, 예를 들면 특별하다고 볼 수도 있다"며 "하지만 '비스티 보이즈' 등 어릴 때부터 '더 잘 소화해 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준비를 많이 했다. 기본적인 것들을 다른 사람들한테 오해 사지 않고 잘 해나가야겠다고 느꼈다. 또 다른 책임감이 있어서 다른 현장보다 더 어렵다"고 고백했다.
하정우는 "'수리남'을 찍으면서 드라마 같은 느낌을 못 받았다. 모든 제작진이나 스태프, 감독님까지 영화를 하시는 분들이었고, 현장 분위기도 그냥 평소 작업하는 영화 느낌이었다"며 "너무나 웃긴 게 '히트'를 찍은 뒤 어느 인터뷰에서 농담으로 '너무 힘들어서 앞으로 15년간은 드라마를 못 찍을 것 같다'고 했었다. 엄살을 부리는 워딩이었는데 실제로 계산해 보니까 15년 만에 찍었다"며 웃었다.
지인들의 반응에 대해선 "오랜만에 내 작품을 봐서 그런지 주변 분들은 재밌게 봤다고 해줬다. 뭔가 응원의 느낌이 강했다"며 "1화부터 6화까지 각자 느낌이 다르겠지만, 쉼 없이 몰입력 있게 봤다고 하더라. 충분히 만족할 만한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댓글도 봤다고 하던데 기억에 남는 게 있나?"라는 질문에 "댓글을 보면서 상처받은 것도 있고, 답답했던 것도 있었다"며 "내 마음과 계획을 몰라주는 게 있더라.(웃음) 그래서 오만 감정이 오갔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하정우는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지금 인터뷰하는 자리부터 모든 게 낯설다. 그간 있었던 내 필모그래피를 포함해 영화를 찍고 무대인사를 했던 것들이 하나도 없이 다 사라지고 리셋된 것 같더라"며 "'수리남' 제작발표회 했을 때 데뷔하고 첫 제발회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 조금씩 적응해가야죠"라고 덧붙였다.
한편 '수리남'은 지난 9일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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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