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1년을 기다린 끝에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에서 가을야구가 열렸다. 오래 기다린 만큼 오래 경기했지만 단 하루로 끝났다. 그것도 18이닝 무득점이라는 역대급 빈타로 허무한 결말이 나왔다.
시애틀은 1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T-모바일파크에서 치러진 2022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ALDS) 3차전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연장 18회 접전 끝에 0-1로 패했다.
포스트시즌 최초로 17회까지 무득점 경기가 이어진 가운데 18회 휴스턴 신인 유격수 제레미 페냐에게 결승 홈런을 맞고 무릎 꿇었다. 시리즈 전적 3전 전패로 스윕을 당하며 올 가을을 아쉽게 마무리했다.
시애틀의 홈에서 포스트시즌이 열린 건 지난 2001년 10월19일 뉴욕 양키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 이후 21년 만이었다. 일수로는 7667일 만으로 그 사이 시애틀은 2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암흑기를 보냈다.
하지만 올해 젊은 선발투수 로건 길버트, 조지 커비의 성장과 FA 영입한 로비 레이의 활약으로 마운드가 안정되고, 신인 외야수 훌리오 로드리게스의 화려한 데뷔로 팀 재건에 성공했다.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2위, 5번 시드로 가을야구 티켓을 거머쥔 시애틀은 4번 시드의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원정에서 2연승으로 제압하며 디비전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아메리칸리그 최다 106승을 거둔 휴스턴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정 1~2차전에서 휴스턴에 1~2점차로 아깝게 지며 벼랑 끝 상황에 몰렸다. 하지만 21년 만에 시애틀에서 열린 가을야구는 경기 전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T-모바일파크에는 4만7690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암흑기 에이스였던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시구자로 나서 분위기를 띄웠다.
에르난데스의 기를 받았는지 신인 선발 커비가 7이닝 6피안타 2사구 5탈삼진 무실점으로 휴스턴 강타선을 잠재우며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최고 97.8마일(157.4km) 강속구로 15개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타선이 터지지 않았다. 휴스턴 선발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에게 6회까지 막혔고, 7회부터는 불펜을 공략하지 못했다. 2회 무사 1,2루, 8회 1사 2루, 9회 1사 1,2루 득점권 찬스가 있었지만 기다렸던 적시타 한 방이 없었다. 연장으로 넘어간 뒤에도 13회 2사 2루 끝내기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17회까지 0의 행진이 이어졌다.
결국 18회초 구원 펜 머피가 페냐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다. 계속된 1사 1루에서 선발 로비 레이가 팀의 10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지만 18회말 공격이 삼자범퇴로 끝나면서 시애틀이 0-1로 패했다. 18이닝 동안 안타를 7개 치는 데 그쳤고, 득점권에서 8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며 잔루 10개를 남겼다. 간판 타자 훌리오 로드리게스가 8회 펜스 직격 2루타를 치긴 했지만 7타수 1안타 3삼진에 그쳤다. 7~8번 아담 프레이저와 제러드 켈닉은 나란히 7타수 무안타로 출루조차 하지 못했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8분 낮에 시작된 경기는 저녁 7시30분에 끝났다. 무려 6시간22분이 걸린 혈전. 18회까지 단 1점도 내지 못한 지루한 승부였지만 시애틀 관중 대부분이 경기 중반부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 채로 계속 박수를 보내며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아줬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레츠 고 매리너스!”를 연호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단 하루,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21년 만의 가을야구였다.
비록 가을야구는 여기서 멈췄지만 20년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의 암흑기를 끝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해였다. 경기 후 스캇 서비스 시애틀 감독은 “이번 시리즈 경험이 앞으로 우리 많은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올 시즌 팀으로서 큰 걸음을 내딛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드리게스는 “올해 팀 전체가 큰 발전을 이뤘고,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시작이 될 것이다”고 자신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