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실패한 선수, 그래도 등번호 한 번도 안 바꾼 이유는..." 14년 롯데맨, 진심을 남기고 떠난다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22.11.12 06: 02

"난 실패한 선수다. 그래도 등번호 한 번도 안 바꾼 이유는..."
롯데 자이언츠 전 투수 진명호(33)가 지난 11일, 자신의 SNS를 통해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올 시즌이 끝나고 지난 10월 19일 방출 통보를 받았지만 이후 다른 팀에서 현역 연장 없이 롯데에서의 14년 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한다. 
SNS에 팬들에게 받은 편지를 사진으로 올린 진명호는 "제게 부산, 롯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선수를 하는 건 절대 의미가 없다. 은퇴를 결정한 건 오래 됐지만 제 거취가 정해지지 않아 팬 분들에게 감사 인사가 늦었다"라면서 "14~15년 정말 긴 시간을 부산에서 보냈고, 소중한 저희 가족도 얻은 곳이다"고 팬들에 고마움을 전하며 현역 은퇴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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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닿은 진명호는 "사실 올해 시즌을 치르면서 방출이 될 줄도 알았고 야구를 그만 둬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라고 운을 뗀 뒤, 성민규 단장과의 첫 만남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2019년 성민규 단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 단장님이 '다른 팀에서 너를 좋아하고 트레이드 문의가 너무 많이 들어온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트레이드는 단장님 영역이지만 그렇다면 저는 은퇴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성민규 단장은 나름의 방식으로 진명호의 가능성과 가치를 설명한 것이었지만 진명호는 이에 진심으로 답한 것.
이어 "시즌이 끝나고 단장님과 면담을 할 때도 2019년의 얘기를 꺼냈다. 단장님도 기억을 하시더라. 그래서 '저는 롯데가 아니면 야구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출된 날이 은퇴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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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는 "왜 벌써 그만 두냐"는 얘기가 많았다고. 하지만 진명호는 SNS에서 언급했듯이 부산, 롯데가 아닌 곳에서의 선수생활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방출 소식이 알려진 뒤 타 구단에서의 영입 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는 "주위에서 아쉬워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요즘 제일 많이 만나는 사람이 삼성 (강)민호 형인데 제일 많이 아쉽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저도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라면서 "올해도 어깨와 허리가 계속 좋지 않았다. 선수 생활 2~3년 더 한다고 한더라도 그때 가서 야구 말고 제2의 인생을 생각해야 했는데 그냥 기분 좋게 롯데에서 마무리 하고 싶었다. 제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지만 다른 팀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한 팀에서 오래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라고 소회를 전했다.
또한 "이제 야구선수로서 받는 스트레스를 더는 감당할 수 없겠더라. 선수로 살아가면 또 예민하게 준비해야 하고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먹게 되니까 쉽게 바뀌지는 않더라"라면서 현역에 대한 마음을 접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할 수밖에 없다. 야구선수 진명호를 아낌없이 후원하고 내조했던 아내는 "야구선수 진명호를 바라봐 준 아내는 엄청 많이 울었다. 큰 아들(이현)은 내가 야구선수인 것을 안다. 하지만 둘째(이겸)는 아빠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를 것이고 야구 하는 것도 많이 못 보여줬다. 그래서 미안하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진명호의 진심은 팬들을 향해 있었다. "야구를 못해서 팬들에게 죄송한 것보다 더 죄송한 것이 어디있겠나"라는 그다. 효천고 출신으로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로 롯데에 지명된 진명호는 통산 271경기 13승14패 1세이브 24홀드 평균자책점 4.84의 기록을 남겼다. 팀 성적이 무너졌던 2018~2019년, 2년 연속 60경기를 출장하며 18홀드를 쌓으며 팀의 마당쇠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롯데 마운드의 기둥이었다. 하지만 그는 "난 실패한 선수다. 꾸준하게 활약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라고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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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수술, 팔꿈치 통증 등의 시련도 이겨냈지만 스스로를 낮췄다. SNS에서도 그는 저는 100% 노력형이었고, 노력으로만 전부 되지 않았기에 상심도 많았다. 야구 선수로서 힘들다는 어깨 수술도 하고, 힘들게 복귀도 해봤기에 후회는 없다. 힘드니까 인생이고, 힘내야 사는 게 인생이기에 야구 선수 진명호로서 그냥 열심히 산 것 같다”라고 적었다.
현역 은퇴를 일찌감치 결정했지만 인생의 '제2막'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는 고민이 컸다. "저는 이제 사회 초년생이다. 야구 말고는 아는 게 없다"라고 멋쩍게 웃은 뒤 "아카데미를 열거나 지도자 제안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는 실패한 선수였다. 저 처럼 실패하지 않기 위해 어린 선수들을 가르쳐주고 싶다. 물론 가르치는 게 적성에 안 맞을 수는 있겠지만, 이제 한 가정의 가장 노릇을 하면서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며 준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면서 입단 이후 한 번도 등번호를 바꾸진 않았던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저는 잘 한 게 없는 선수다. 그래도 제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등번호(48번)를 바꾸지 않은 이유는 제 유니폼을 사셨을 한 분이든 다섯 분이든 그 팬들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며 "사주도 보면서 등번호 바꿀까 고민도 했지만 바꾸지 않은 이유는 팬들 때문이었다. 아직도 야구장 오셔서 제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응원해주셨던 팬들이 기억 난다. 그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어 "롯데 팬들이 저 때문에 답답한 야구를 보시느라 마음도 쓰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야구를 못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이제 후배들 응원하면서 푸셨으면 좋겠다. 우리 롯데 후배들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jhra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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