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탑고에서 MLB까지…김하성과 박효준의 안타까운 7년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3.01.14 09: 06

[OSEN=백종인 객원기자] 나름대로 괜찮은 유격수였다.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수비는 당연했다. 어깨가 탁월했다는 평이다. 여기에 타격까지 갖췄다. 고교 무대에 흔치 않은 기대주로 꼽혔다.
그런데 2학년부터 밀리기 시작한다. 유격수 자리를 뺏겼다. 2루, 3루로 돌아야 했다. 신입생 한 명 때문이다. 그에 대한 당시 감독의 평가다. “수비 범위나 능력, 송구와 푸트워크까지 유격수가 필요한 모든 것을 지닌 선수였다.” (야탑고 김성용 감독)
밀려난 선배는 김하성이다. 치고 들어온 후배는 박효준이다. 그는 1학년 때부터 천재로 불렸다. 고교 3년간 .355/.500/.607(타/출/장)을 기록했다. 통산 OPS가 1.107이다. 3학년 때만 따지면 더 대단하다. .392/.558/.824에 OPS는 무려 1.372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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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명성은 전국에 자자했다. 역대 고교 유격수 중 최고라는 평가도 있었다. 국내 뿐만이 아니다. 해외의 관심도 당연하다. 이미 소문은 파다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탐내고 있다는 수군거림이다.
연고팀(당시 SK)은 포기 상태였다. 아니나다를까. 이듬 해 공식 발표가 이뤄졌다.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화려한 입단 기자회견이 열렸다. 행선지는 뉴욕이었다. 명문 양키스행이 결정됐다. 사이닝 보너스가 116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1억원)나 됐다. 같은 유격수 이학주(2008년 컵스·72만5000달러)보다도 훨씬 높았다.
반면 1년 전 졸업한 김하성은 달랐다. KBO 드래프트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차 3라운드에서야 이름이 불렸다. 입단 계약금은 1억원이었다. 후배에 비해 1/10도 안되는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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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야탑고 선배는 샌디에이고 주민이 됐다. 어엿한 파드리스의 스타팅 멤버다. 입단 2년만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해는 풀타임으로 뛰었다. 포스트시즌 때도 눈부시게 활약했다. 유격수 붙박이였다. 탁월한 수비력을 인정받았다. 골드글러브 후보까지 올랐다.
쟁쟁한 경쟁에도 끄떡없다. 2루, 3루 멀티가 가능하다. 이미 고교 때부터 이력이 붙었다. 심지어 빅클럽으로 이적설도 돈다. 귀중한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되는 셈이다. (부상 이력은 있지만) 사이영상 수상자 크리스 세일의 맞교환 상대로도 거론된다.
반면 후배의 겨울은 춥다. 한달 동안 3번이나 팀을 옮겼다. 이름도 어려운 양도지명(DFA) 절차다. 방출 대기 조치를 당한 것이다. 피츠버그→보스턴→애틀랜타로 계속 이관됐다. 결국 27세 시즌은 다시 AAA에서 시작해야 한다.
해적선 탈 때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2년간 68게임 210타석이 전부다. .201/.291/.346에 그쳤다. 자기 자리도 없다. 2루수, 3루수, 유격수에 외야까지 커버했다. 매 경기가 시험 무대나 다름없다. 제대로 플레이 할 수 없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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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7~8년의 얘기다. 누가 열심히 했고, 누가 치열했는 지. 그걸 따지자는 건 무의미하다. 무엇이 더 효율적인 지, 적절한 지. 그걸 돌아봐야 한다는 뜻이다.
극명한 사례가 있다. 오타니 쇼헤이의 케이스다. 그도 고교 졸업 후 미국행을 선언했다. 지명한 팀(니혼햄)과는 만남조차 피했다. 그러던 중이다. 유명한 30페이지짜리 PPT가 등장한다. ‘오타니 군의 꿈에 대한 이정표(大谷翔平君 夢への道しるべ~)’라는 제목이었다.
어쩌면 세계 야구사를 바꾼 설득이다. ‘우리 구단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오타니 군의 꿈을 지지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적절한 방법을 함께 고민하겠다. 고려할 요소들은 ▶리그의 경기력 ▶육성 시스템 ▶코치, 훈련장 등 인프라 구성 등이다.’ 즉 일본의 1, 2군 시스템이 복잡한 마이너리그에 비해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결정적 데이터도 등장한다.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종합한 수치다. ‘(당시까지) 프로 출신의 경우 42명 중 29명(69%)이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비프로 출신은 108명 중 6명(5.6%)만 ML에 진출했다.’
결국 오타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NPB의 성공을 거쳐, 수퍼갑의 지위로 태평양을 건넜다. 야탑고의 경우도 비슷하다. 직행은 수고스럽다. 그리고 고달프다. 그런 과정이 7년 동안 입증됐다.
물론 도전의 용기는 훌륭하다. 그리고 아직 절망할 이유는 없다. 이제 27살, 한참 나이다. 터널의 끝은 반드시 있다. 환한 앞날이 열릴 것이다. 다만 시행착오는 반복되면 곤란하다. 안타깝고, 황금 같은 시간 아닌가.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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