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반전’ 왼 엄지 수술→포수 좌절→투수 전환…1라운더 신인 ‘투타 겸업’ 불씨 되다
OSEN 한용섭 기자
발행 2023.02.14 20: 01

 운명의 장난인 건가. 좌절의 위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 길은 포수에서 투수 그리고 ‘투타 겸업’으로 이끌었다.
키움 히어로즈의 신인 김건희는 1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포수로 지명을 받았으나, 프로에서는 투수로 출발한다. 그리고 팀 선배 장재영과 함께 투타 겸업을 시도하며 주목받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솔트 리버 필드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김건희는 풋풋함과 유쾌함이 가득한 인상이었다. 신인답지 않은 침착함, 멘탈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큰 좌절을 겪은 것이 도움이 됐다.

키움 김건희가 불펜 피칭을 하고 있다. 2023.02.05 /jpnews@osen.co.kr

투타 겸업의 끈은 아마추어 때부터 미약하게 이어져 왔다. 김건희는 “중학교 때 투수를 몇 번 해 봐서 고교에서 투수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있었어요. 그런데 북일고에서 투수를 추천하지는 않았고, 한 포지션만 하라고 했어요. 원주고로 전학을 와서도 포수에 더 집중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했어요. 투수에 마음은 좀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키움 김건희가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 2023.02.07 /jpnews@osen.co.kr
고3 때 주자와 홈 충돌 때 왼손 엄지 부상을 당했다. 날벼락이었다. 김건희는 “5월에 다쳤어요. 원주와 서울 병원 2곳을 갔는데, 인대 파열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재활에 3개월이 걸린다고 해서 멘붕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고3으로 프로 지명을 앞둔 시점. 치명적이었다. 김건희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유급을 해야 할 상황인데 유급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방황을 하고 있었는데 감독님과 코치님이 상의하셔서 ‘투수를 해 볼 의향이 있냐’고 하셨어요. 해보겠다고 했어요. 6월부터 투수를 시작했어요”라고 말했다.
수술 받은 왼손 엄지를 재활 받으면서 다른 포지션은 불가능했지만, 딱 투수만 가능했다. 투수 훈련을 하면서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김건희는 좌절하지 않고 투수 훈련을 열심히 했다.
그는 “투수를 하다 보니까 오히려 저의 장점을 찾은 느낌이었요. 다치기 전에는 방망이도 잘 못 치고 있었는데, 감독 코치님이 계속 끌어올려주셔서 방망이도 잘 치게 됐어요”라고 되돌아봤다.
키움 김건희가 불펜 피칭을 하고 있다. 2023.02.05 /jpnews@osen.co.kr
그렇게 불의의 부상과 수술은 포수에서 투수로 길을 바꿨다. 김건희는 “상상도 못했다”라고 했다. 부상이 운명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는 “다쳤을 때 제 스스로 깎아먹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때마침 투수를 하게 됐고, 앞으로도 힘든 일, 시련이 와도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니까 잘 넘겨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야구나 야구 외적으로 실패를 겪어도 잘 극복해내야 하는구나. 힘들어도 버틸 수 있어야 하고, 멘탈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라고 말했다.
지나고 보니 마음도 달라졌다. 김건희는 “그 때 나를 다치게 한 주자도 밉고 했는데, 성숙해진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열정적인 플레이를 하다보면 생길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나를 더 성장하게 해줘서 부정적으로 생각 안 한다. 다만 태그 하다가 손이 살짝 꺾인 상태였는데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2학년 후배였는데, 사과를 안 해서 조금 맘 상했다”고 털어놨다.
김건희는 투수와 1루수 겸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프로에 와서 투타 겸업으로 꼭 성공해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구단에서 감독, 코치님께서 투타 겸업을 찬성해주셔서, 구단에서 먼저 제안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1루수는 고교 때 해본 적이 없다. 아직 서툴다. 김건희는 “내야 수비할 때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뜻대로 안 돼 채종범 코치님께 여쭤봤더니, “누가 처음부터 잘하냐”고 말씀하셨다. 기본기 충실하고 열심히 배우면 실력이 늘 수 있다고 하시더라. 수비, 투수, 방망이 모두 하느라 급했던 것 같다.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천천히 끌어올리자는 생각이다.
가장 오래 해 온 포수의 아쉬움은 없을까. 김건희는 “아쉬움이 있죠.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4학년부터 포수를 했어요. 고 3까지. 지금 1루수 연습할 때 드는 생각이 ‘아, 내 포지션일 때가 제일 편하구나’에요. 1루수는 모든 것을 새롭게 익혀야 해서, 선배들에게 많이 딸리지만 그래도 한 번 부딪혀 봐야죠”라고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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