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숨어 봐. 내가 못 찾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는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을 둘러싼 다양한 악역들이 등장한다. 이른바 '고데기'로 표현되는 이들은 어린시절 동은에게 학교폭력을 가했던 인물들로, 동은은 가해자인 박연진(임지연 분), 전재준(박성훈 분), 이사라(김히어라 분), 최혜정(차주영 분), 손명오(김건우 분)를 비롯해 자신을 궁지로 내몰았던 담임선생님 김종문(박윤희 분) 등에게 차근차근 복수를 행한다.
하지만 이 외에도 어린시절부터 동은을 괴롭혔던 또 다른 '고데기'가 존재했다. 그는 다름아닌 동은의 엄마 정미희(박지아 분). 동은이 철저한 계획 아래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자 연진은 동은의 아킬레스건인 엄마를 돈으로 매수하는 방식으로 반격을 꾀한다.
미희는 과거에도 동은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학교폭력을 당하던 딸에게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동은이 고등학교를 자퇴하던 당시 자퇴 사유로 학교폭력을 고발하려 했지만, 담임 김종문과 박연진의 엄마 홍영애(윤다경 분)의 회유로 거금의 합의금을 받고 자퇴사유를 '부적응'으로 바꾸는 데 동의했다. 뿐만아니라 동은을 버리고 합의금을 들고 야반도주까지 했던 바.
오랜 시간이 지나 교사가 된 동은의 앞에 나타난 미희는 여전히 최악의 행보를 이어갔다. 연진의 의도대로 동은의 일상을 휘저으며 그 무엇보다도 동은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동은 역시 슬픈 표정을 지으며 "성공했네 박연진, 날 상대할 고데기를 두 개나 찾았어"라고 독백할 정도. 항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동은이 "어떻게 날 또 버려? 죽어도 그것만큼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렇게 웃지 마!"라며 절규하도록 만든 존재 역시 미희가 유일했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향한 복수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동은이었지만,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가족이라는 족쇄였다. 엄마를 "내 첫 가해자"라고 표현한 동은의 말과, "나 니 엄마야. 핏줄이 그렇게 쉽게 끊어지니?"라는 미희의 말처럼 학교폭력보다 더 깊고 오래된 그의 존재는 약 35년이라는 시간동안 끊어내지 못한 채 동은의 뒤를 따라와 괴롭혔다. "가족이 제일 큰 가해자"라는 연진의 말이 일부는 맞아 떨어진 셈이다.
이에 '더글로리'를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학교폭력 가해자인 박연진 무리보다 더욱 분노를 유발하는 인물로 동은의 친모인 정미희를 꼽는 이들도 적지 않다. "동사무소 가서 떼봤다", "숨는다고 숨어지는줄 아냐"며 쉽게 동은의 주소지를 알아내 집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미희의 모습에 진심으로 공포를 느꼈다는 평도 쏟아졌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도망조차 치지 못하는, 실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현실이 피부로 와닿았다는 것. 엄마를 향한 복수를 했지만, 끝끝내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했던 동은의 모습은 현실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이처럼 장미희가 '더 글로리' 최고의 악역으로 꼽히기까지는 박지아의 역할이 가장 컸다. 캐릭터가 가진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굵직한 인상을 남겼을법 한데, 박지아의 살벌한 연기력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없던 트라우마도 생겨날 지경이다.
파트2에서 동은과 재회한 미희는 피해망상, 분노 조절 장애, 알콜 사용 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인물. 산발이된 머리카락에 초점 없이 풀린 눈, 굽은 등과 휘청대는 걸음걸이, 알콜중독으로 인한 부정확한 발음까지 완벽히 캐릭터와 동화된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현실 욕'을 유발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한층 높였다.
특히 동은이 미희에게 울분을 토하는 장면, 광기에 찬 미희가 "죄송하다고 빌어"라며 난동을 부리는 장면에서 펼쳐지는 두 배우의 연기대결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장미희를 보는내내 "답답하고 짜증났다"는 반응은 그만큼 박지아가 깊은 연기 내공으로 캐릭터를 실제처럼 그려냈기에 들을 수 있는 찬사였다.
한편 박지아는 지난 2002년 영화 '해안선'으로 정식 데뷔, OCN '신의퀴즈4',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 tvN '굿와이프', OCN '손 the guest', KBS2 '붉은단심', JTBC '클리닝업' 외에도 영화 '기담', '광해, 왕이 된 남자', '석조저택 살인사건', '창궐', '클로젯' 등에 출연했다. 과거 '기담'을 통해 큰 임팩트를 남긴 데 이어 이번 '더 글로리'에서 또 한번 인생연기를 펼친 그의 활약에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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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