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허정민이 두 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고 토로했다. 그의 작심 발언 이후 작품 측의 ‘갑질’인지, 매니지먼트와 소통 ‘부재’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작품 측이 입장을 밝히며 유감을 표현하고 허정민이 이를 겸허히 수용하면서 일단락됐지만 30년 가까이 활동하는 배우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배우’라는 직업에 명과 암이 조명되고 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린 허정민이 작심하고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두 달 동안 준비했다. 그런데 작가님께서 허정민 배우가 싫다고 까버리신다. 얼굴도 못 뵈었는데 왜... 내가 못생겨서인가, 싸가지가 없어서인가. 연기를 못하나”라고 토로했다.
허정민은 “내 준비 기간 2개월과 앞으로 나날들은 어떻게 되나. 나 참으려다가 발설해요. 세상 변했어요. ‘효심이네 각자도생’, KBS ‘주말드라마’ 흥하십쇼. 닥치라고 하지마. 나 이바닥에 더 이상 흥미없어 꼰대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허정민은 “깔 때는 적절한 해명과 이유, 사과가 있어야 하는거야. 이 꼰대들아. 이 바닥에서 제명시키겠다 부들대겠지. 그럼 너 진짜 XX 꼰대 인증. 안녕”이라며 작심한 듯 비판했다.
‘효심이네 각자도생’ 측은 해명에 나섰다. ‘효심이네 각자도생’ 측에 따르면 김형일 감독과 허정민은 3월 말 한 차례 미팅을 가졌고, 제작진은 논의 결과 극 중 캐릭터와 배우의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2주 후인 4월 중순 매니지먼트에 이를 알렸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캐스팅 관여는 없었다고 밝혔다.
‘효심이네 각자도생’ 측이 허정민의 글에 유감을 표했지만 허정민은 “나한테도 이러는데 신인 꼬맹이들한테는 무슨 짓들을 할까. 너구리 트라우마 생기게 괴롭힐거야. 또 지우지 뭐. 이민 가자 주섬주섬”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부당함을 주장한 허정민은 “난 겁쟁이랍니다”라며 갑자기 제작진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정리를 하자면 처음에는 캐스팅이 됐는데 작가님의 개입은 없었고 그냥 제작진의 판단으로 캐스팅을 무산시킨거고 저는 뒤늦게 통보를 받고 XX놈처럼 글 올리고 난리 부르스를 친 거네요. 제작진 배우 분들에게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제가 많이 모자랐습니다. 드라마의 성공을 기원하며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제작진의 깊은 유감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안녕하시길”이라고 적었다.
허정민 사태로 인해 드라마 캐스팅과 관련한 배우들의 위치가 드러났다. 일부 톱스타들을 제외하고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인 배우들로서는 한 작품, 한 캐릭터가 소중하다. 이를 조율하고자 미팅을 가지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기 마련이며, 대본 리딩에 들어간 후에도 배우가 교체되는 일이 많다. 때문에 확실해지기 전까지 캐스팅에 대해 단언할 수는 없다.
다수의 인터뷰에서 배우들은 자신들을 ‘선택 받는 직업’이라고 표현한다. 선택 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다는 건 영광이지만,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지만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은 그들이 ‘갑’이 아닌 ‘을’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톱배우들이 아닌 이상 스스로 작품을 ‘선택’할 수 없고,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부분은 늘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로 데뷔한 허정민은 다수의 작품에 참여했고, 최근까지도 활발히 활동했다. 데뷔 30년차를 앞두고 있는 허정민마저 캐스팅과 관련해 이런 사태를 겪을 만큼 배우라는 직업은 녹록치 않다. 동시에 캐스팅을 진행하는 작품들에 있어서도 조심스러운 접근과 배려, 소통이 필요하며, 특히 불발이 될 경우에는 그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