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있어 배우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수백 명의 노력이 필요하다.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사고 없이 완주하면 배우의 커리어에도 중요하지만, 이는 시청자들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계약 불발, 생방송 드라마의 한계, 감독과의 불화설, 성폭행, 음주운전, 학교 폭력 등의 사건으로 방영 도중 갑자기 주연 배우가 교체되는 일이 발생할 때도 있다. 애청자들 입장에서는 황당 그 자체이자 몰입감이 깨질 수밖에 없다.
최근 K-드라마의 제작 환경이 개선되고 사전 제작 작품이 늘어나고 있지만, 주연 배우 리스크는 늘 존재한다.
# KBS2 '명성황후' 이미연→최명길
2000년대 주인공이 교체한 드라마를 꼽으라면 KBS2 '명성황후'를 빼놓을 수 없다. '명성황후'는 2001년 5월 첫 방송돼 총 124부작을 선보인 사극이다. 당초 이미연이 1회부터 주연 명성황후를 맡아 극을 이끌었고, 드라마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방송국과 제작진 측이 높은 시청률을 아쉬워하면서 80회 종영이 아닌 40회 연장을 요청했고, 이미연 측은 출연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해당 연장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서로 갈등이 생겼고, 결국 이미연은 79회에서 하차했다. 이후 최명길이 급하게 투입돼 124회 종영까지 마무리했다.
박주미는 2012년 방송된 KBS1 '대왕의 꿈'에서 선덕여왕 역할에 캐스팅됐지만,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사는 4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내놨고 드라마도 결방했지만, 마냥 기다릴 수 없었기에 박주미가 중도 하차하고 홍은희가 대신 투입됐다.
이는 모두 생방송 시스템이 팽배했던 과거 한국 드라마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KBS2 '달이 뜨는 강' 지수→나인우
지수는 2021년 3월 연예계에 '학폭 미투'가 쏟아질 때, 중학교 동창이 자신이 직접 겪었다며, 입에 담기도 힘든 피해를 고백했다. 이를 계기로 지수와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동창들의 학폭 폭로가 줄을 이었다.
학폭을 인정한 지수는 SNS를 통해 "과거에 저지른 비행에 대해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 용서 받을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며 "연기자로 활동하는 제 모습을 보며 긴 시간동안 고통 받으셨을 분들께 깊이 속죄하고, 평생 씻지 못할 저의 과거를 반성하고 뉘우치겠다. 저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무릎꿇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사과하면서 사실상 배우 생활을 은퇴했다.
지수는 KBS2 드라마 '달이 뜨는 강'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분량을 삭제하고 재편집하는 수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제작진은 상의 끝에 9회부터 하차한 지수 대신 나인우를 교체 투입했고, 전면 재촬영에 들어갔다. 드라마 제작사인 빅토리콘텐츠는 지수의 소속사를 상대로 약 3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지수는 그해 10월 연예계 생활을 정리하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복무를 시작했다. 동시에 법무법인을 통해 폭로글 작성자를 형사고소했으나, 최초 폭로글과 댓글 작성자에 대한 불기소처분(혐의없음)이 내려진 사실이 알려졌다.
# SBS '날아라 개천용' 배성우→정우성
배성우는 2020년 11월 음주운전으로 입건됐으며, 당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지인과 술을 마신 뒤 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08%.
하지만 이 사실은 한 달 뒤인 그해 12월 공개됐고, '날아라 개천용'이 방송하고 있을 때 보도돼 더욱 일파만파 퍼졌다. 음주운전 사실을 숨긴 채 연예 활동을 해왔다는 괘씸죄가 더해져 네티즌들의 따가운 질타를 받은 것.
배성우는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를 통해 "모든 질책을 받아들이고 깊이 뉘우치고 반성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방면에서 신중하고 조심하며 자숙하도록 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배성우는 '날아라 개천용'에서 하차했고, 소속사 대표이자 동료 배우 정우성이 대체 투입돼 드라마를 끝냈다.
# SBS '리턴' 고현정→박진희
'리턴' 고현정과 제작진 사이에는 불화설을 비롯해 고현정의 '주동민 PD 폭행설'이 강력하게 떠돌면서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해 제작진은 "고현정과 큰 갈등이 생겼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후임 배우를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고현정 측 역시 하차 통보는 받아들였지만, '폭행설'에 대해선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후에도 양측의 폭로전은 계속됐고,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던 '리턴'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던 중 고현정의 빈 자리를 채울 배우로 박진희가 물망에 올랐고, 제작진의 간곡한 부탁을 수락하면서 고현정의 후임으로 '리턴'에 합류했다.
박진희는 "제작진의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스러웠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제작진의 간곡함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리턴'이 시청자의 사랑을 끝까지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전하면서 종영까지 이끌었다.
# TV조선 '조선생존기' 강지환→서지석
강지환은 2019년 7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자택에서 '조선생존기' 스태프들과 회식을 열었고, 이 과정에서 외주 여성 스태프 2명을 강제추행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준강간 혐의로 긴급체포된 것. 이후 대법원을 거쳐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당시 강지환은 경찰 초기 조사에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률대리인을 통해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 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 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이번 일로 심려를 끼친 많은 분들께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죄값을 달게 받고 속죄하며 살겠다"며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조선생존기' 주연으로 출연한 강지환은 총 20회 중, 12회까지 촬영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러나 성폭행 사건이 알려진 직후 곧바로 중도 하차가 결정됐으며, 강지환이 구속되자 나머지 분량은 서지석이 대체 투입됐다. 드라마는 4회가 축소된 16회로 조기 종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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